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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3월 수상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장원〉


-권선애

노모와 아들이 식어가는 햇볕을 센다
아가야 밥물은 손가락 세 마디까지
쉰 아들 몸만 불리고 멈춰 있는 다섯 살

밥통에 걱정을 앉혀 처음으로 밥하는 날
취사 버튼 먼저일까 보온 버튼 먼저일까
머리를 갸웃거리니 먼발치는 한숨이다

김 빠지는 소리에 걱정은 뜸이 들어
눈앞에 뜨거운 웃음 골고루 퍼지면
하루해 지탱한 관절 쭉 뻗고 한술 뜬다

◆권선애

장원 권선애

장원 권선애

충북 음성 출생. 시란 동인.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중앙시조백일장 2018년 차상, 2020년 장원.

〈차상〉

입춘
-조현미

촘촘 누빈 무명옷 솔기 그예 터졌는지
나목들 초리마다 목화송이 분분하다
햇살 휜 지느러미에 언 강도 길을 풀어

먼 북쪽 돌아오는, 그 발바닥이 가렵겠다
아랫녘 산 절집엔 잎이 버는 홍매화
붓두껍 밀어 올린다 입춘방을 적는다

〈차하〉

간격 
-류용곤

언제부터 가던 길 서리가 자라나고
무심코 바람 불어 메말라 흩어지면
앉고 또 일어난 곳엔 그늘이 서늘했다.

좁혔다 벌어졌다 조급하게 가던 세상
움츠려 몸 사리고 털어 낸 시간 속에
조금씩 다독여 가며 다시 서는 그 자리.

 〈이달의 심사평〉

새봄 새 학기 등 시작의 달 3월. 새봄의 투고 작품들을 펼치는 손길도 더불어 설렜다. 장원으로 권선애의 ‘뜸’을 올린다. 지적장애를 가진 쉰 살 근처의 아들과 그 아들을 돌보는 노모의 안타깝고 애틋한 상황을 잘 녹여냈다. 자칫 뻔하고 작위적인 설정이 될 수 있음에도 감정의 과잉이나 무리 없는 전개로 안정감을 확보했다. 사람 냄새가 잔잔하게 묻어나는 영상을 감상하는 느낌이랄까. 시조라는 정형의 틀에 이만한 내용을 앉히기까지는 오랜 습작의 과정을 거쳤음을 확인케 했다. 세상의 ‘걱정’들을 ‘웃음’과 ‘관절 쭉 뻗’는 긍정의 밥으로 승화시켜 줄 ‘뜸’이라는 뭉긋한 삶의 과정이 문득 그립다.

차상은 조현미의 ‘입춘’이다. 봄을 기다리는 깨끗한 설렘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잡아냈다. 특히 ‘터졌다’ ‘분분하다’ ‘푼다’ ‘가렵다’ ‘번다’ ‘밀어 올린다’ 같은 생동감 있는 동사와 형용사를 각 장마다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선명성을 내세운 점이 돋보였다.

차하 작품인 류용곤의 ‘간격’은 추상적인 제재를 관념화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사유로 녹여내어 내면화에 가까이 간 작품이다. 다만, 보다 구체적인 대상을 잡아서 썼더라면 제목의 추상성과 결합하여 시적 완성도를 더 높였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아직도 시조의 겉멋만 알고 쉽게 접근한 작품들이 많았다. 시조는 글자 수만 맞추는 시가 아닌, 대상을 내면화하는 시적 역량 위에서 정형의 가락을 자연스럽게 부려야 할 것이다. 한영권의 ‘파리보살’같은 해학 넘치는 작품과 배순금, 박꽃실, 이대규 씨 등의 작품들을 눈여겨보았다.

심사위원: 김삼환·서숙희(대표집필 서숙희)

〈초대시조〉

씀바귀
-이태순

소태 씹은 것 같은

그런 날

그 떫은 날

그냥 꿀꺽 삼켰지

태생이 흙인지라

목구멍
비집고 피는
씀바귀 꽃 지천이라

◆이태순

이태순

이태순

경북 문경 출생, 200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오늘의시조시인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시조집 『경건한 집』 『한 끼의 시』, 현대시조100인선 『북장을 지나며』.

모진 겨울의 땅을 뿌리로만 견뎌낸 봄나물. 그 여리면서 억센 것들이 요즘 지천이다. 이때를 기다려 등을 따스한 햇살에 맡긴 사람들이 산에서 들에서 이것들을 캐고 뜯는다. 모처럼 밥상에 기운이 돈다. 온몸에 기운이 돈다. 그중 씀바귀는 사포닌이 가득한 영양보고. 쌉싸래한 잎사귀도 일품이지만 땅속에서만 지낸 뿌리가 ‘찐’이다. 그곳이 얼마가 가혹했는지 몇 시간을 물에 담가 놓아도 좀체 그 떫고 쓴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 그 뒤끝이 달다.

“소태 씹은 것 같은 / 그런 날”이 이어지고 있다. 3월이 다 가는데도 을씨년스럽다. 지긋지긋한 코로나에 황사까지 덮쳐 많은 사람들은 봄이 와도 어깨를 펴지 못한다. 꿈이 피지 못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아직 겨울의 땅속에 묻혀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꿈은 우리의 뿌리, 뿌리는 쉽게 죽지 않는다. 더 질기고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다. 땅속 박테리아와 싸워 이기고 자신의 세포를 분열하면서 더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꿈이 어둠 속에 던져져 있다고 절망하면 안 된다. 주인의 절망을 눈치 채면 꿈도 좌절할 것이다. 꿈이 절망하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태생이 흙인지라” 물고기가 물에서 한 생을 살 듯 사람은 흙속에서 피고 진다. 흙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 하니 불현듯 “목구멍/ 비집고” 피어오르리라. 햇살 눈부신 날 저마다의 언덕에서 웃음으로 자지러질 씀바귀 꽃이여!

강현덕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응모편수 제한 없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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