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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이름도 생소한 베타글루칸, 만병통치약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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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98)

베타글루칸이 무엇이기에 만병통치로 통하지? 인터넷에 찾아보니 찬사가 온통 도배했다. 나만 몰랐나 하고 억울할(?) 정도다. 백혈구 수치를 올려주고 염증을 줄이며 면역기능을 활성화, NK세포를 자극해 암세포를 공격, 만병의 근원인 활성산소를 억제해 뇌기능활성화, 체지방을 줄이고 체중을 감소, 혈압 및 혈당강하, 피부재생 및 노화방지, 콜레스테롤 저하, 기억력회복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효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명약이 있었는데 사람들 왜 병들어 죽지? 왜 약으로 나오지 않고 고작 건강식품으로만 팔지? 의아했다. 우선 이름부터 생소하다. 원어로 쓰니 뭔가 신비해 보일지 모르나 그냥 그렇고 그런 일종의 탄수화물에 불과하다. 무엇인지 따져보자.

먼저 베타(β), β는 그리스어(α∼ω)로 영어알파벳(a∼z)의 b에 해당한다. 알파, 오메가 등은 가끔 물질의 구조를 나타내는데 쓰이며 예로 오메가지방산, 알파아미노산, 베타아미노산 등이 있다. 다음으로 글루칸(glucan). 글루칸은 글루코스(glucose)의 ‘gluc’와 다당류를 의미하는 ‘an’을 결합한 합성어이다. 이를테면 포도당으로 구성된 다당류를 글루칸(glucan), 과당(fructose)이면 프락탄(fructan), 만노스(mannose)이면 만난(mannan), 갈락토스(galactose)이면 갈락탄(galactan)이라는 식이다. 예로서 전분(starch)은 알파글루칸, 섬유소(cellulose)는 베타글루칸이고, 이눌린(돼지감자)은 프락탄, 곤약은 만난, 한천은 갈락탄이 된다.

여기서 베타는 어떤 의미일까. 물질 간의 이성체(isomer)를 구별하는 학술용어다. 그림의 포도당 구조에서 1번 탄소에 붙어있는 OH의 방향에 따라 알파포도당 혹은 베타포도당이라 구별한다, 이중 어느 쪽 포도당이 다당류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알파글루칸 혹은 베타글루칸이 된다. 또 포도당끼리 서로 결합할 때 6개의 탄소 중 인접한 포도당의 어느 탄소와 결합했느냐를 나타낸 것이 번호 ‘1-4, ‘1-3’ 등이다. 예로 들면 전분(녹말)은 포도당이 알파(α)1-4결합한 것이고, 섬유소(셀룰로오스)는 베타(β)1-4결합한 다당류이다. 해서 전자는 알파글루칸, 후자를 베타글루칸이라 부른다. 이 두 종류는 포도당이 1-4 결합한 것은 같지만 단순히 알파냐 베타냐에 따라 극적인 물성 차이를 보이고 우리에게 소화의 유무도 갈린다.

포도당의 알파, 베타이성체와 그 구성 다당류의 종류. [자료 이태호]

포도당의 알파, 베타이성체와 그 구성 다당류의 종류. [자료 이태호]

그러면 섬유소도 같은 베타글루칸인데 건강식품으로 나와 있는 것과는 어떻게 다르지? 당연히 그들이 상찬하는 베타글루칸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베타형 포도당이 1-3으로 결합한 주쇄(主鎖)에 1-4 혹은 1-6결합이 섞여 있는 복잡한 구조의 다당류가 바로 그것(그림참조). 고작(?) 이런 다당류에 그런 어마 무시한 약효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베타글루칸에도 많은 종류가 있지만 유독 빵효모(yeast), 버섯(fungal), 세균, 시리얼(oat 등) 등의 세포벽에 소량 들어있는 베타글루칸에만 열광한다.

당연히 이런 베타글루칸의 효능을 찬양하는 논문은 과거에 많았다. 하지만 논문이란 게 다 그렇고 그런 것. 내가 실험해 보니 그러하다는 것. 가설이거나 동물에 적용해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정도, 믿거나 말거나다. 그런데 논문이 나온 지 벌써 수십 년이 됐는데도 아직 약으로 개발되지 않은 것은 왜일까. 그렇게 좋다면 신약개발에 명운을 거는 유수 제약회사는 왜 손 놓고 있었지, 왜 건강식품으로만 팔고 무당 같은 잡설로만 소비자를 현혹하지? 이상하지 않나.

나의 디스가 너무 심하다 생각하겠지만 아직 이걸 먹고 암이 나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과거에 영지, 상황, 차가버섯, 동충하초 등에 항암작용이 있다는 주장이 바로 이 베타글루칸 때문이었다. 요즘은 열기가 식어 이젠 효모, (이름도 요상한)노루궁둥이버섯 등이 그 바통을 이어받은 듯하다. 이렇게 흔하디 흔하고 소화도 흡수도 되지 않는 물질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물건도 이젠 진화를 거듭해 항생제처럼 3세대 제품까지 나왔다. 1세대는 그냥 베타글루칸이 들어있음 직한 식품을, 2세대는 식품에서 추출해 함량을 높인 것, 3세대는 미생물 발효로 만든 것이라 했다. 발효? 소비자가 좋아하는 단어라 그런가 본데, 실은 다름 아닌 빵효모를 키워 세포벽에 조금 있는 베타글루칸만을 뽑아내 순도를 높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효모를 손수 키운 게 아니라 맥주 공장에서 나오는, 많아서 지천인 것을 얻어다(?) 썼을 가능성이 높다. 이 효모를 건조해 영양제로 만들면 원기소나 에비오제가 되고, 추출하면 요즘 인기인 효모추출물, 즉 효모(이스트) 엑기스가 된다.

과거에 영지, 상황, 차가버섯, 동충하초 등에 항암작용이 있다는 주장은 베타글루칸 때문이었다. [사진 pixabay]

과거에 영지, 상황, 차가버섯, 동충하초 등에 항암작용이 있다는 주장은 베타글루칸 때문이었다. [사진 pixabay]

과거 막걸리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난리 친 적이 있다. 이도 다름 아닌 막걸리의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찌꺼기) 속 효모의 시체(?)였다. 이 시체에는 파네졸이라는 성분과 문제의 베타글루칸이 들어있어 그렇게 좋다는 거였다. 국책연구소의 모 박사가 자기가 처음 찾아냈다면서 온갖 폼을 다 잡았지만 일시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단지 그 덕분에 죽어가던 생탁의 인기가 잠깐 재부상하는 듯은 했지만.

혹시나 해서 사 먹는 건 상관없지만 암 등에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혹하면 치료 시기를 놓쳐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가격도 만만찮아 권장할 만한 건강식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굳게 믿고 먹으면 간혹 플라시보(위약)효과는 있을지 모르니 더 뜯어말리지는 않겠지만.

건강식품은 종류도 다양하고 많이도 부침을 거듭했다. 과거 아니, 지금도 수많은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좋다던 것이 왜 유행을 타고 없어지는 걸까. 왜 약으로는 개발되지 않지? 이 코로나 시국에 면역력 향상에 그렇게 좋다면 지금 부작용을 걱정하는 백신 대신에 왜 쓰지는 않지? 이상하지 않은가. 별난 이는 먹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단 베타글루칸은 소화가 되지 않고 대변량만 늘리니 통변에는 참 좋을 듯하다. 그럴만한 양을 먹으려면 돈 감당이 안 되겠지만. 이젠 소비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건강식품, 왕창 한탕 해 먹고 먹튀하는, 의사는 권하고 홈쇼핑은 파는 그런 의심스러운 행태를 차츰 눈치채기 시작했다. 이것도 상부상조인가?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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