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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인권 압박 가세한 EU, 北 정경택·이영길·중앙검찰소 제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럽연합(EU)이 22일(현지시간) 북한의 정경택 국가보위상과 이영길 사회안전상, 중앙검찰소를 인권 유린을 이유로 제재하기로 결정했다. EU 27개 회원국 정부를 대표하는 기구인 EU 이사회는 이날 북한, 중국, 러시아, 리비아, 에리트레아, 남수단 등 6개국의 개인 11명과 4개 단체를 대상으로 인권 유린을 이유로 제재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U(유럽연합) 제재 대상에 오른 정경택 북한 국가보위상과 이영길 북한 사회안전상.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북한 인권 공세에 유럽연합까지 가담한 모양새가 됐다. [연합뉴스]

EU(유럽연합) 제재 대상에 오른 정경택 북한 국가보위상과 이영길 북한 사회안전상.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북한 인권 공세에 유럽연합까지 가담한 모양새가 됐다. [연합뉴스]

이날 제재 대상에 오른 정경택 국가보위상과 이영길 사회안전상은 각각 비밀 경찰 또는 정보기관 역할을 하는 국가보위성과, 한국의 경찰청 격인 사회안전성의 수장이다. 또 중앙검찰소는 대검찰청과 유사한 기관이다. EU는 정경택과 이영길, 중앙검찰소가 북한 내의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처벌 및 고문을 비롯한 비인간적 대우 등 심각한 인권 유린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2018년 12월 검열 활동과 인권 유린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 정경택을 인권 유린을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올렸다. 당시 미 국무부는 “정경택이 정치범 수용소의 고문, 굶기기, 강제노동, 성폭행 같은 심각한 인권 유린을 지시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北 인권결의안' 앞둔 EU 인권 공세 

이날 EU의 제재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현지시간 23일)을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EU는 지난 11일 유엔에 제출한 대북인권 결의안 초안에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는 제도적이며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하고, 지금까지 채택된 모든 북한 인권 결의안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평소 인권 문제를 중시했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출범 두 달 만에 국제사회의 협공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미국이 말레이시아가 체포한 문철명(56)의 신병을 인수해 직접 조사에 나선 데 이어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 압박이 거세지면서 북한의 고립이 심화할 전망이다. 북한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 외무성은 21일 “인종차별범죄사건들을 안고있는 서방이 국제무대에서 뻐젓이 《인권옹호》타령을 떠들어대고 다른 나라들의 제도전복을 노린 지명공격, 악법채택을 자행하면서 인권문제의 정치화, 이중기준, 선택성을 고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인종차별행위는 다름 아닌 서방에 국한되는 심각한 인권유린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EU 제재 대상에 북한 중앙검찰소를 비롯해 권력의 핵심 부서 책임자들이 포함됐다는 점은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EU(유럽연합) 차원의 압박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권 문제를 중심축으로 대북정책을 설계하겠다는 점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EU 역시 미국의 ‘가치 외교’에 동참하는 행보에 나선 것이다.

'북한 인권' 딜레마 빠진 文 정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지적하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지적하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북한 인권 문제가 수차례 수면에 오르며 한국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남은 임기 동안의 핵심 목표로 설정한 문재인 정부로선 북한 인권 상황을 적극 규탄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한국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여전히 이름을 올리지 않는 등 북한 인권과 관련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에도 인권과 관련한 동일한 잣대를 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 직후 SBS와의 인터뷰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미국 외교 정책 중심에 다시 놓는 것은 선택적 기조(selective basis)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선택적 기조’를 반대한다는 메시지는 인권 문제가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의미로, 동맹 관계인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EU는 이날 제재 대상에 신장 자치구의 이슬람 소수민족 위구르족 탄압에 책임이 있는 중국 관리 4명과 단체 1곳을 포함했다. AFP통신은 EU가 인권 유린과 관련해 중국을 제재하는 것은 198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 사태 후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한 이래 처음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에선 체첸공화국 내 인권 유린과 관련된 인사들이 제재 명단에 올랐다. 이번 제재에는 EU가 전 세계 인권 유린을 제재하기 위해 지난해 채택한 새로운 제도가 사용된다. 제재 대상에는 EU 내 자산 동결, 입국 금지가 적용된다. EU 내 개인과 기관이 이번 제재 대상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을 대는 것도 금지된다.

EU는 앞서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구속 수감한 데 대응해 지난달 고위 러시아 관리 4명을 상대로 이 제도를 처음 적용했다. EU는 이날 이와는 별도로 군사 쿠데타와 시위대 강경 진압에 책임이 있는 미얀마 군부의 관리 11명에 대해서도 자산 동결, 입국 금지의 제재를 부과했다.

정용수·임선영·정진우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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