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시엔에 "동해 바다" 울린다…'기적' 일군 교토국제학교

중앙일보

입력 2021.03.22 15:11

업데이트 2021.03.22 18:20

“좋았어! 뛰어!”

전교생 130명 한국계 학교, 첫 고시엔 진출
입학생 줄자 야구부 창단…지역 명문고 부상
24일 첫 경기…日각지서 교민 응원단 꾸려

지난 17일 교토(京都) 국제고교 야구장. 훈련 중이던 야구부 부원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소리가 운동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면서 옆 사람과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 부원은 “고시엔 구장은 여기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일부러 큰 목소리를 내려 연습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외야가 없는 작은 운동장에서 야구 연습 중인 교토국제학교 야구부 선수들. 산을 깎아 만든 좁은 운동장에는 외야가 거의 없다. 윤설영 특파원.

외야가 없는 작은 운동장에서 야구 연습 중인 교토국제학교 야구부 선수들. 산을 깎아 만든 좁은 운동장에는 외야가 거의 없다. 윤설영 특파원.

그제야 둘러본 운동장엔 외야가 없었다. 3루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고마키 노리쓰구(小牧憲継·37) 감독은 “그동안 내야수·외야수 연계 실책으로 경기에서 지거나, 외야 플라이를 못 막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이미지로밖에 연습할 수밖에 없지만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국계 학교인 교토 국제고등학교가 일본고교야구대회(고시엔·甲子園)에 진출했다. 일본에선 ‘꿈의 야구대회’라 불리는 고시엔 무대에 외국계 학교가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4000여개 학교가 경쟁하는 고교선발야구대회(봄 고시엔)에서 상위 32개 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전교생 130명 규모의 ‘미니 학교’가 일으킨 기적이다. 지역 언론들도 “교토 국제고가 선풍을 일으킬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첫 경기는 24일 센다이(仙台)시의 시바타 고교와 치른다. 상대 역시 고시엔에 처음 출전한 학교여서 “해 볼 만하다”는 게 선수단의 얘기다. 박경수 교장은 “선수들의 몸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기량을 100% 발휘하면 승패를 떠나 감동을 주는 시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국제학교 박경수 교장이 야구부의 고시엔 첫 출전을 축하하는 포스터 앞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교토국제학교 박경수 교장이 야구부의 고시엔 첫 출전을 축하하는 포스터 앞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1999년 창단했다. 1947년 재일교포들이 민족교육의 필요성 취지에 공감해 세웠으나, 학령인구 감소에 신입생을 모집하기 어려워졌다. 야구부를 만든 건 학교를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처음 출전한 시합에선 0대 34로 대패했다. 하지만 점차 경험과 기량이 쌓이면서 2016년 고교야구 지역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는 등 신흥 야구 명문고로 부상했다. 두산 베어스 신성현 선수가 이 학교 출신이고, 이후로도 8명이 일본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했다. 인근에서 ‘야구 유학’을 오는 학생도 생겼다.

야구부 주장인 야마구치 긴타(山口吟太) 선수는 “고시엔은 고교 야구선수라면 꼭 가고 싶은 곳이다.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고시엔에 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는데, 첫 출전을 하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이라고 말했다.

교가는 개교 이래 한국어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일본의 옛 이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교가가 고시엔 구장에서 울려 퍼지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은 NHK로 일본 전역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올해 대회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난해 경기가 취소된 뒤 2년 만에 열리는 터라 일본 내에서도 관심이 많다.

다만 NHK는 우익의 공격 등을 우려해 동해(東海)의 자막을 ‘동쪽의 바다(東の海)’로 바꿔 표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박 교장은 “한국어로 녹음한 CD를 주최 측에 전달했고, 번역에 대해선 어떤 통보도 없었다”면서 “교가 가사 문제가 더이상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국적의 선수들도 개의치 않고 한국어 교가를 당당하게 부를 계획이다.

일본의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일본의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진출에 교민사회도 온통 축제 분위기다. 대회 당일 교토뿐 아니라 오사카, 도쿄 등에서 응원단이 전세 버스를 타고 와 경기장 응원석을 채울 예정이다. 간사이 지역의 다른 한국계 학교인 금강학교, 건국학교도 공동 응원전을 펼친다. 박 교장은 “조선시대 일본에 문물을 전달한 조선통신사처럼, 야구를 통해 한·일 학생들이 교류할 수 있는 통신사 같은 역할을 교토국제고가 했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교토=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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