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친구의 도피 결혼, ‘대프리카’…스토리 풍성한 대구

중앙일보

입력 2021.03.22 11:00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1)

낯선 여행지, 오래되거나 새로운 것, 인상 깊었던 작품…. 이렇게 살아가면서 보는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찾아가는 길이나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아요. 그런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차고 넘치거든요. 친절한 안내는 없지만, 낯설거나 익숙한 혹은 특별한 것을 볼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소소하고 다양한 감정을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

틈나는 대로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다녀보다 보니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도시마다 나름의 분위기와 색깔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안동은 조용하게 옛것을 지키는 도시였다. 무언가 좀 더 개발하고 가꾸는 대신, 옛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조건 개발하고 새단장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 그도 나쁘지 않다.

반면, 예산은 작은 이야기들로도 스토리를 잘 짜고 적극적으로 관광에 힘을 쏟은 모양새였다. 설화 하나로도 크고 볼거리 있는 공원을 만들어냈고, 관광지는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구는 스토리가 잘 짜여진 도시였다. 근대 골목투어가 잘 정비돼 있어 혼자서, 혹은 가족이 코스를 따라 투어하기 좋다. [사진 pixabay]

대구는 스토리가 잘 짜여진 도시였다. 근대 골목투어가 잘 정비돼 있어 혼자서, 혹은 가족이 코스를 따라 투어하기 좋다. [사진 pixabay]

그리고 대구. 나는 대구에 두 번 가봤다. 예전 아주 오래전 동성동본 혼인 금지 시절 친한 친구는 동성동본 아가씨와 사랑을 했고, 반대하는 부모를 피해 연고 하나 없는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절친 열 명쯤이 참석한, 요즘 말로 하면 스몰 웨딩이었다. 친구 부모가 아는 날엔 참석한 우리도 모두 불려 가게 생겼구나 웃었지만 범죄를 공모하는 스릴도 있었고, 영화 한 편 찍는 것 같은 로맨틱함도 느꼈던 이십 대의 일이다.

그 이후 처음 대구에 갔다. 한동안 대구는 사랑의 도피 결혼을 했던 친구의 로맨틱함으로 기억되었지만, 그 외에도 대구의 이미지는 다양하다. 지하철 참사의 아픈 뉴스, 여름이면 너무 더워 골목길에 사람이 없다는 믿거나 말거나 ‘대프리카’ 이야기, 그리고 코로나 초기 흉흉했던 분위기.

대구를 실제로 돌아본 느낌은, 스토리가 잘 짜여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근대 골목투어가 잘 정비돼 있어 혼자서, 혹은 가족이 코스를 따라 투어하고 있었다. 곳곳에 안내문도 잘 배치되어 있어 도보로 돌아보기도 좋았다.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 고택은 빈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작은 마당, 고택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 잠시 타임머신을 탄 듯했다.

바로 이웃엔 그 유명한 국채보상운동으로 기억되는 독립운동가 서상돈의 고택도 있었다. 대구에는 국채보상운동거리도 있고, 공원도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아름답고 웅장한 계산 대성당에선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럽에서 보았던 성당을 떠올렸다. 간혹 외국인의 모습도 보였는데, 그들도 우리나라 대성당을 보며 고향의 풍경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대구 10 미’라는 음식거리가 여럿 있다. 대구라고 하면 막창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 외에도 찜갈비 골목, 무침회 골목 이런 식이다.

우리는 원조라는 중화반점에서 야끼우동을 먹었고, 빵집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삼송 빵집 본점에도 들어갔다. 빵을 고르며, 도쿄에 갔을 때 단팥빵으로 역사가 오래된 빵집 기무라야 소혼 텐을 찾아가던 이야기를 했다. 긴자 거리에 차 다니지 않는 일요일 그 빵집을 찾아갔던 일을 떠올렸다. 그와 다르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여행자이니 말이다.

대구에서 내가 본 것은 소소하지만, 짧게 보고 느끼고 맛본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본 대구를 오래도록 좋은 느낌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공원에는 홍매화가 피고 있었다. [사진 pixabay]

대구에서 내가 본 것은 소소하지만, 짧게 보고 느끼고 맛본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본 대구를 오래도록 좋은 느낌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공원에는 홍매화가 피고 있었다. [사진 pixabay]

TV에도 나와 유명한 중앙 떡볶이. 한 테이블씩 주문을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테이블에 앉기 전 번호표를 뽑고, 그렇게 테이블이 모두 채워지면 번호대로 주문을 받고 바로 음식을 내주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나름 효율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4시가 좀 넘자 더 이상 대기줄을 세우지 않았다. 재료 소진이었다. 뒤에서 서울에서 온 듯한 아가씨 둘이 속닥속닥했다. “11시 반에 문을 열어 4시면 재료가 소진돼 문 닫는다니, 서울 같으면 10시엔 열고 밤늦게까지 할 텐데 여기 워라밸 끝내준다.” 아가씨들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사장님이 진짜 워라밸을 누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나, 일생을 일하며 얻은 것일 테니 분점도 내지 않고, 재료 소진하면 칼같이 영업을 접는 이런 인생도 있어야지 않겠나 싶었다.

예전에 여행을 가면 여기까지 오려고 어렵게 낸 시간인데 한번 왔을 때 정말 많이, 쉴 틈 없이 보고 갈 테다 했다. 루트를 짜면서부터 덜어내기가 힘들었다. 도착해선 부지런히 하루 종일 걷고, 걸었다. 이제는 달리 여행한다. 어차피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볼 수 있는 만큼만 봐야지 한다. 다 못 본 것은 다음에 한 번 더 와서 보겠다고도 하지 않는다.

활기 찼고, 옛것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낯선 이를 위한 배려도 친절했던 대구였다. 대구의 여러 곳 중 내가 본 것은 소소하지만, 짧게 보고 느끼고 맛본 것으로 충분하다. 기회가 되어 또다시 와보게 된다면 그도 좋은 일이나, 일부 역시 전체의 한 부분이므로 내가 본 대구를 오래도록 좋은 느낌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경상감영 공원에는 홍매화가 피고 있었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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