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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중국 새 5개년 계획 키워드는 ‘해외 기업 끌어들이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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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020년 3월 18일 드론으로 항공 촬영한 상하이 양산항 컨테이너 부두. [신화사]

지난 2020년 3월 18일 드론으로 항공 촬영한 상하이 양산항 컨테이너 부두. [신화사]

지난 20일 32.5㎞의 중국 동해 대교. 상하이 푸둥(浦東) 신구 끝자락의 톨게이트에서 양산 심수항(洋山深水港)까지 자동차로 건너는 데만 30여분이 걸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컨테이너 트럭 행렬이 바다 위를 가르고 있었다. 양산항 부두는 지난해 하루 5만5000개, 분당 38개꼴로 연간 2000만TEU(20피트 표준 컨테이너)라는 물동량을 처리했다. 양산항을 포함한 상하이 항구는 지난해 총 4350만TEU를 처리했다. 2019년 4330만 건보다 소폭 상승했다.

상하이 푸둥(浦東) 신구와 양산 심수항(洋山深水港)을 잇는 32.5㎞ 길이의 중국 동해대교 위를 컨테이너 트럭들이 지나고 있다. 신경진 기자

상하이 푸둥(浦東) 신구와 양산 심수항(洋山深水港)을 잇는 32.5㎞ 길이의 중국 동해대교 위를 컨테이너 트럭들이 지나고 있다. 신경진 기자

양산항은 중국 내에선 ‘강대한 중력장(引力場·인력장)’을 상징한다. 중력장은 ‘중국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4차 5개년 계획과 2035년 장기 목표 요강(綱要·강요, 이하 14·5 계획)’의 핵심 키워드다.
지난 11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중국은 내수 시장을 키워 자신을 발전시키고, 외국 자본·제품과 서비스에도 거대한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시장을 무기로 삼아 외국의 자본·제품·서비스를 불러들이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이게 ‘중력장’ 개념이다.
14·5 계획에는 “국내경제 순환 시스템에 의탁해 글로벌 요소(원료, 부품)의 ‘강대한 중력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장이 담겼다. 중국은 미·중 분쟁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고, 대외 투자는 어려워졌으며, 고도기술 제품의 수입이 막히고, 첨단 산업의 외자 유치가 차단당했다. 그러자 중국은 엄청난 국내 시장이라는 반격 카드를 꺼냈다. 나가는 게 차단당하면 들어오는 거로 메꾸겠다는 계산법이다. 중국 시장에 매력을 느낀 외국 기업이 스스로 중국을 찾아오도록 독려한다는 전략이다.

미국 차단에 중국 거대 시장으로 반격 #해외 자본,기술 끌어들여 주도권 유지 #AI·양자·뇌과학 등 핵심 기술 돌파 #2035년 GDP, 1인당 소득 2배 목표 #한국, 중 발전에 올라탈 전략 시급

왕이밍(王一鳴)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은 “2019년 중국의 소비재 매출 총액은 6조 달러로 미국의 6.2조 달러에 육박했다”며 “중국은 이미 120여개 국가의 최대 무역 국가이자 글로벌 제조업 비중이 27%를 차지할 정도로 ‘중력장’을 만들어낼 조건을 갖췄다”고 말한다.
‘중력장’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처음 꺼낸 개념이다. 지난해 8월 11일 경제사회영역 전문가 좌담회에서다. “다른 나라에 제공하는 시장 기회가 더욱 확대되면 국제 상품과 요소 자원을 끌어들일 ‘거대한 중력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쌍순환 개념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쌍순환 개념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또 다른 14·5 키워드는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10년 동안 칼을 갈았다)”이다.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지은 ‘검객(劍客)’의 첫 구절을 리커창 총리가 인용했다. 리 총리는 “기초연구는 과학기술 혁신의 원천”이라며 “‘십년마일검’의 정신으로 관건 핵심 영역에서 중대한 돌파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중국이 10년 동안 칼을 갈 핵심 영역은 14·5 계획 제4장에 상세히 나와 있다. 차세대 인공지능, 양자정보, 집적회로, 뇌과학 및 유사뇌(Brain-Like Intelligence Technology) 연구, 유전자 및 바이오테크, 임상의학과 건강, 우주·지하·심해·극지 탐사 등 7대 영역을 제시했다. 칼날을 가는 숫돌은 디지털 경제다. 지난해 7.8%였던 디지털 경제의 중국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2025년 목표치에선 10%로 상향됐다. 연구개발(R&D)에는 연평균 GDP 7% 이상을 투자한다. 8대 중점 산업 분야도 나왔다. 희토류 등 첨단 신소재, 고속철 등 대형기술장비, 스마트 제조 및 로봇기술, 항공기 엔진, 위성 항법 시스템, 신에너지 자동차 및 스마트카, 첨단의료장비 및 신약, 농업 기계장비다.
한시 ‘검객’은 “서리 같은 칼날을 아직 시험하지 못했다/ 오늘 이 칼을 그대에게 주노니/ 누가 바르지 못한 일을 하리오”로 이어진다. 14·5 계획을 완수한 중국이 세계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는 장면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7만5000자 요강, 102개 프로젝트 담아
중국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0일 14·5 계획 탄생기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기사는 19편 65장 192절 총 7만 5000여자의 미래 청사진은 “중요한 전략적 기회의 시기(戰略機遇期)를 맞아, 변화의 국면(變局)에서 새로운 국면(新局)을 여는 전략적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5개년 계획 수립 중 처음으로 네티즌 의견을 모집했다. 101만8000건의 건의가 쏟아졌다. 지난해 10월 소집된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는 ‘14·5 계획 건의’를 통과시켰다. 건의를 건네받은 국무원(정부)은 5차례 전체 회의를 열고 102건의 대형 프로젝트를 담은 ‘14·5 계획 요강’을 만들었다. 지난 5일 개막한 전인대가 심의 후 확정했다.
중국은 2035년 장기 목표로 “경제 총량과 도시와 농촌 주민 평균 수입에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다시 매진한다”고 했다. 2035년까지 GDP 총량 200조 위안, 1인당 GDP 2만 달러 만들기다.

14·5 기간 중국이란 ‘중력장’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현태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현재 G1 국가인 미국의 경제는 서비스업 위주다. 제조업 기반인 한국과 충돌이 적지만 제조업 위주의 중국이 G1이 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며 “중국 현지 투자와 수출 위주의 직선적 전략 대신 일본의 소프트뱅크처럼 중국 발전에 조용히 올라타는 새로운 협력 모델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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