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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식목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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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24부디렉터(EYE)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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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울산시 울주군 야산에 ‘제76회 식목일 기념 나무 심기’가 진행됐다. 산불로 피해를 본 숲에 공무원·시민 100여명이 모여 산벚나무 1500그루를 심었다. 식목일 맞이 행사라는데, 18일이나 앞서 열렸다. 살펴보니 더 이른 곳도 많다. 18일엔 경남 하동군, 17일엔 전남 영광군에서 지자체 주관 행사가 열렸다. 전남 신안군은 지난달 24일 나무 심기를 했고, 중부권인 충남은 13일부터 도 차원에서 나무 심기를 시작했다.

이달 초 산림청은 내년부터 식목일을 3월 중순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수차례 논의만 하다 무산됐지만, 이번엔 산림청이 ‘총대’를 멘 만큼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배경은 기후 온난화다. 1946년 제정 당시보다 요즘 식목일 기온이 지역에 따라 2도에서 4도까지 올랐다. 봄 기온이 1도 오르면 잎눈 틔는 시기가 5~7일 당겨져, 그만큼 묘목을 옮겨심는 시기도 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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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론도 나온다. 어차피 ‘빨간 날(공휴일)’도 아닌, 상징적인 날인데 굳이 바꿔야 하냐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식목일의 ‘원조’격인 미국도 50개 주 중 20여개 주가 연방정부가 정한 날(4월 마지막 금요일) 대신 다른 날을 식목일로 정했다. 남부의 플로리다는 1월, 서부의 캘리포니아는 3월, 알래스카는 5월, 무덥고 건조한 텍사스는 아예 가을(11월 첫 금요일)이다.

그래도 식목일 변경으로 숲에 대한 관심을 재고하자는 취지는 그럴듯하다. 국내 산림의 온실가스 흡수량(연 4560톤·2018년)은 한국이 배출하는 총량의 6.3%다. 전체 배출량에 비해 크진 않아도, 현재로썬 나무의 광합성이 이미 대기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땅으로 되돌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50~70년대 집중적으로 조성한 산림의 노령화 문제도 있다. 그대로 두면 2050년 산림의 탄소흡수량이 연간 1400톤으로 준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도 있다. 온난화로 인한 파국, 기후 난민 문제는 알래스카의 북극곰, 남태평양의 섬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이미 제주도에선 구상나무, 동해에선 ‘국민 생선’ 명태가 사라지고 있다. 진지한 대안 모색도 절실하다. 태양광을 늘리자고 멀쩡한 숲을 밀어내고, 외국에선 탄소 중립 차원에서 재검토하는 원전을 무작정 폐쇄하려 드는 정부·정치권의 행태도 고쳐야 한다.

어제(3월 21일)는 유엔이 정한 세계 산림의 날이다. 산림청이 식목일을 옮기려는 ‘후보’ 중 하나다. 성사되면 한국은 해외에 ‘기후 변화로 식목일을 바꾼 나라’로 소개될지 모르겠다. 거기에 ‘탄소 감축 모범 국가로 변모했다’는 설명이 붙을지, ‘그런데도 변화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달릴지 궁금하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