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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진주 귀걸이를 한 ‘북유럽의 모나리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2)

 예술은 당대 사람들의 정서를 담으며 변화하고 발전하지요. 음악과 미술도 시대의 사조를 동시에 반영하기도, 시차를 두고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오페라를 접하다 보면 사조와 무관하게 떠오르는 화가나 작품이 있곤 합니다. 별을 노래하는 아리아에서 별을 그린 화가가 떠오르는 식으로요. 그런 작품을 모아 르네상스부터 입체주의까지 미술사를 풀어냅니다. 〈편집자〉

유럽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의 문화의 원천을 찾아서, 또는 경제적인 필요에서 동방을 꿈꿨으며 탐험했습니다. 그 중심에 페르시아와 인도가 있었고, 인도양의 섬들은  순수 세계의 파라다이스 또는 환상적인 전설이 넘치는 신들의 천국이기도 했습니다. 1863년 발표된 조르주 비제(1838~1875)의 ‘진주조개잡이’는 이국적인 인도양의 실론 섬을 배경으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사랑과 우정을 다루고 있지요.

비제가 활동할 당시에도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다양한 영감으로 이국의 신비로움을 표현하고자 했지요. 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몽상에 빠진 듯한 이 작품에서 그는 진주 빛깔 영롱함을 실론 섬 바닷가의 달빛처럼 반짝이게 표현했답니다.

오래전에 아름다운 여인 레일라를 만난 절친인 나디르와 주르가는 사랑 대신에 변함없는 우정을 맹세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여인은 사제가 되고, 주르가는 족장이 되어 세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만납니다. 우정을 지키는 주르가와 달리, 방황하던 나디르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 레일라를 잊지 못하는 상태랍니다. 안타까운 것은 레일라도 나디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직 레일라가 신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마을에 도착한 사실을 모르는 나디르는 자신이 잊지 못하고 방황하며 꿈에서도 그리워하는 그녀를 생각하며,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을 부르면서 잠이 듭니다.

신전에서 기도를 드리는 레일라의 노래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에 나디르가 깜짝 놀라 잠이 깨지요. 두 사람은 서로의 노래만 듣고도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마침내 나디르가 신전을 찾아와 해후한 뒤 서로 뜨겁게 포옹합니다. 하지만 제사장에 의해 그들은 신전을 더럽힌 죄로 체포되지요.

주르가를 만나 나디르를 구명하는 레일라. 그녀가 사랑하는 나디르를 위해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하자, 오히려 주르가의 질투심이 활활 불타오릅니다. 그는 레일라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서, “나도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영원히 없애버릴 거라며, 그녀의 간청을 냉정히 거절하지요. 주르가는 배신감과 질투심에 휩싸여 두 사람을 신을 모독한 혐의로 처형할 것을 명합니다.

기도를 드리는 사제 레일라. [사진 국립오페라단]

기도를 드리는 사제 레일라. [사진 국립오페라단]

처형 직전에 레일라의 진주목걸이를 발견한 주르가는 오래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소녀에게 그 답례로 자신이 선물한 목걸이임을 알아채고, 결국 은인과 친구인 두 사람을 구해주고 도망치게 해준답니다.

여러 가지 보석 중 진주는 독특한 성분으로 이뤄졌답니다. 조개가 내부에 들어온 이물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감싼 유기물 덩어리지요. 색이 은은하고 광택도 부드러워서 화려함보다 우아함과 은근한 멋을 내기에 딱 좋은 보석이에요. 풍요로움을 과시할 때 쓰이기도 하는데, 로마의 삼두정치를 이끈 안토니우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진주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일화도 전해진답니다. 진주는 순수와 순결 그리고 신뢰를 상징하지요.

미국 역사상 첫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에 당선된 카멜라 해리스는 당선이 확인된 순간의 기자회견장에도 진주 귀걸이를 했답니다. 엘로우 골드로 진주를 둘러싼 디자인에 스터드 스타일의 귀걸이를요. 그녀를 더욱 은은하고 우아하게 드러내 준 것이 바로 진주귀걸이였던 것이지요.

여기 그 은은하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목걸이와 진주귀걸이를 그린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부드럽고 따사로운 빛을 비추며 정교하고 섬세한 인물화를 그린 화가 페르메이르(1632~1675)입니다. 빛의 강렬한 대비를 활용하던 바로크시대에 활동했지만, 그는 온화한 빛을 그리며 대상을 살포시 끌어안았답니다. 관람자도 화가와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게 그렸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화폭 안으로 시선이 쑤욱 빨려 들어가게 된답니다. 그는 인간의 삶과 영혼, 감정 묘사에 특히 탁월했던 것 같아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65경), 페르메이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65경), 페르메이르.

이 작품은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기도 하는데, 화가인 페르메이르의 이름은 몰라도 이 그림은 꽤 유명하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다른 어떤 작품과도 차별되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그의 거의 모든 다른 작품에 있는 배경이 이 그림에서는 사라졌거든요. 배경은 그저 어두울 뿐, 아무런 스토리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왼쪽 위에서는 역시나 밝은 빛이 온화하게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데, 우선 그녀의 파란 색상의 터번이 눈에 띄네요. 당시에 이런 파란색은 보석인 청금석을 갈아 쓴 귀한 소재였답니다. 그런데, 그녀의 두건이나 의상을 보면 신분이 귀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지요. 종교화가 사라진 당시의 네덜란드 화가들이 주로 부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생계를 유지했는데, 왜 화가는 신분이 낮은 소녀를 그렸을까요, 혹시 그의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뮤즈였을까요?

그녀의 촉촉한 듯한 눈과 매끈한 코, 그리고 입술과 부드러운 턱 아래의 목선을 따라가다 진주귀걸이에서 우리의 시선이 멈춥니다. 소녀의 귀에서 흔들거리는 진주귀걸이는 흰자위가 드러난 두 눈, 그리고 촉촉한 아랫입술과 함께 잘 어우러지며 반짝이지요.

영롱한 진주귀걸이와 함께 그녀의 시선, 살짝 벌어진 입술 등 신묘한 아름다움에 매혹된 사람들은, 동명의 소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까지 만들었답니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는 그의 고향 텔프트의 풍경을 그림인 듯 사실처럼 화면에 담았고, 색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는 소녀가 귀한 청금석을 갈아 파란색을 내고 물감을 섞으며 화가를 돕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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