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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장관 홍남기와 기재부의 시간은 반대로 간다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경제부총리이자 역대 두 번째로 장수한 기획재정부 장관. 방역 당국 관료도 아니지만, 그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선봉장으로 나섰다. ‘방역이 곧 경제’라고 해도 경제 당국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만 해도 59년 만에 한 해 네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고, 6번의 부동산 대책을 주도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이끄는 정예병은 점점 지쳐만 갔다.

2018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야기다. 2018년 12월 11일 취임한 홍 부총리는 20일 기준 831일째를 맞았다. 이대로라면 다음 달 1일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842일간 일한 윤증현 전 장관의 기록을 넘어서며 최장수 장관에 등극한다.

전쟁 중이라 장수 안 바꿨나

지난해 기재부는 코로나 경제 위기와의 대결보다 정치권과의 힘겨루기에서 더 큰 패배를 봤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작년부터 직원들은 정치권에서 기재부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설마 또’ 하며 걱정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여당의 주도권에 정부가 끌려다니는 동안 기재부 공무원은 자신의 수장이 백기를 드는 모습을 여러 번 봐야 했다.

그때마다 홍 부총리가 역대 최장수는커녕 두 번째, 세 번째 장수 장관도 되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지난해 긴급재난지원금을 하위 50%에만 지급하자던 홍 부총리에게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해임 건의를 검토할 것”이라며 압박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그해 말에는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강화 방침이 보류되자 홍 부총리 스스로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에는 야당이 “(홍 부총리가) 여권의 사주를 받아 국가 재정을 정치적 목적으로 거래하는 예산안에 동조했다”고 주장하며 탄핵소추안을 낸 적도 있다.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 뒤 이동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 뒤 이동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홍 부총리의 거취와 관련한 논란이 수차례 이어졌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게 최장수 장관 타이틀을 달아 줬다. 결과적으로는 정치권에 연전연패했지만, 코로나 시국인 데다 경제 당국의 입장을 최대한 고수하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과 ‘거리두기’ 어려워

인사청문회 당시만 해도 ‘예스맨’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그는 취임 이후 여당과 겪은 10여 차례의 정책 충돌을 겪었다. 9패 끝에 거둔 1승은 최근 4차 재난지원금의 지급 방식에 보편 지원 방안을 끼워 넣은 여당에 반기를 든 결과였다. 홍 부총리는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방향을 앞장서 수호했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의 확대 시행에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강원도 춘천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차출될 것이란 설이 돌았을 정도로 정치권과 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살아남은 유일한 정무직 공무원이다. 박근혜 정부 말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으로 일하던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되며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당시 국무총리)의 신임을 얻었다.

기재부 위상 회복이 과제

이 위원장과 홍 부총리의 상하관계는 이 위원장이 민주당 대표에 오른 뒤에도 이어졌다. 기재부가 곳간지기만 한다고 폄하된 것도 이때쯤이다. 4차 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에서 당시 이낙연 대표가 홍 부총리에게 “소상공인이 저렇게 힘든데 재정 걱정을 하고 있다”며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질타하기까지 했다.

홍 부총리는 최장수 장관이 되지만, 반대로 기재부의 위상은 바닥에 가까워졌다. 전직 관료는 기획재정부가 이름 그대로 국가의 큰 그림을 그리는 원래의 역할을 되찾는 데 홍 부총리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재부 전신인 재정경제원 출신의 한 전직 관료는 “정책은 합리와 원칙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권이 큰 그림을 그려놓으면 기재부가 ‘100대 과제’라면서 세부 자료나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당국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기재부가 존재 이유를 찾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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