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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48% 해리·메건 지지, 노년층은 9%…세대차 극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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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호 30면

[런던 아이] 영국 왕실 갈등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의 인터뷰가 지난 7일 미국 CBS에 방영된 후 왕실의 반응을 보도한 10일자 영국 신문. [EPA=연합뉴스]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의 인터뷰가 지난 7일 미국 CBS에 방영된 후 왕실의 반응을 보도한 10일자 영국 신문. [EPA=연합뉴스]

영국 해리 왕자와 그의 아내 서섹스 공작부인 메건 마클은 지난 7일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왕실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 이상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들은 영국 왕실이 신이 내린 완벽한 통치 기구도, 영 연방 국가들을 이끌 완전한 지혜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해리 왕자 부부, 윈프리와 인터뷰 #아들 피부색 등 트라우마 털어놔 #“아버지·형과 관계는 좋지 않다” #인종차별, 영국 사회 문제로 대두 #65세 이상 절반 넘게 왕실에 동조 #연령대별 광범위한 견해차 드러나

필자처럼 세습군주제 국가에서 자란 사람이 생각하는 왕실과 그렇지 않은 외부 사람이 생각하는 왕실은 다르다. 그런 차이를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한국인들도, 미국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도 영국 왕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외국에서 영국 왕실 관련 뉴스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모든 영국인이 영국 왕실에 대해 열광하고, 왕실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유명인사이며, 그들에 대한 소식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타블로이드 신문, 왕실 보도에 집착

오프라 윈프리(오른쪽)와 인터뷰하고 있는 해리 왕자 부부. [AP=연합뉴스]

오프라 윈프리(오른쪽)와 인터뷰하고 있는 해리 왕자 부부. [AP=연합뉴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국 왕실, 특히 여왕에 대한 뉴스나 소식은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아주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면 말이다. 모든 영국인은 평생 왕실의 존재와 함께 성장하고 굳이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왕실이 어떤 직무를 수행하든 그러려니 하고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알아서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걸 설명하면 믿기 어려워하지만, 많은 영국인은 국가에 왕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고, 그들이 무언가 이 나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간주한다. 적어도 관광업에서 그들의 기여도는 확실해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 기관 중 하나이며 가장 오랫동안 재임하고 있는 국가 지도자에 대해 영국인들이 큰 관심이 없다는 건 어찌 보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물론, 모두가 왕실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은 왕실에 끊임없이 집착하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한 보도를 일삼는다. 그들이 왕실을 대하는 비인간성은 전설적이다. 이 때문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죽음을 맞았고, 해리 왕자와 메건은 영국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을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타블로이드 신문 역시 왕실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 이야기를 보도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엔 세대 차이가 있다. 연령대에 따라 영국 왕실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영국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 (YouGov)’에서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응답자의 84%가 영국이 계속 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50~64세는 72%, 25~49세는 62%, 18~24세는 42%가 군주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군주제를 찬성하는 비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왕실이나 군주제에 별 관심도, 의견도 없다. 영국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는데 마찬가지였다.

2018년 7월 10일 영국 버킹검궁 앞에 모인 로열패밀리. 왼쪽부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섹스 공작부인 메건 마클과 남편 해리 왕자, 윌리엄 왕자와 아내 케임브리지 공작부인 케이트 미들턴. [EPA=연합뉴스]

2018년 7월 10일 영국 버킹검궁 앞에 모인 로열패밀리. 왼쪽부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섹스 공작부인 메건 마클과 남편 해리 왕자, 윌리엄 왕자와 아내 케임브리지 공작부인 케이트 미들턴. [EPA=연합뉴스]

“왕실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꽤 구식인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왕실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맨체스터에 사는 34세의 회사원 로라 퍼그슬리의 말이다. 30세인 매트 터너는 “왕실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왕실을 떠나는 해리의 권리를 존중하고 이에 대한 대중의 분노에는 공감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해리 왕자와 메건에 대한 세대 차이는 왕실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견 차이보다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 왕자는 지난해 왕실에서 물러나며 공식적인 왕실 업무를 중단했다. 그는 모든 군 관련 직위를 반납한 후 아내 메건과 함께 캐나다로 갔고, 현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산다.

해리 왕자는 오프라 윈프리와 인터뷰하기 일주일 전에 미국 토크쇼 진행자 제임스 코든과도 인터뷰했다. 이 두 번의 인터뷰는 두 사람에게 지난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인터뷰에서 그들은 왕실 생활의 트라우마, 특히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의 괴롭힘, 그리고 가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왕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들 아치가 가질 피부색에 대해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그의 남편 필립공은 아니었다.

메건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 상담을 받으려고 했으며, 영국에서 받은 대우 때문에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내가 임신한 몇 달 동안 아기에게 왕자 칭호가 주어지지 않고 그에 따라 안전 조치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피부가 얼마나 까맣게 될지에 대한 우려도 계속됐다”고 했다.

인터뷰에 대한 영국 내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완전히 달랐다. 인터뷰 직후 유고브 (YouGov)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는 65세 이상 인구의 56%가 여왕과 왕실의 입장에 동조한다고 밝혔다. 65세 이상 가운데 해리와 메건을 지지한다고 답한 건 9%에 불과했다. 하지만 18~24세의 경우 왕실 편은 15%에 불과했고, 48%는 해리와 메건의 입장에 동조했다. 전체적으로는 28%가 ‘어느 편도 아니다’고 답했다. 영국인 10명 중 3명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이나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런 연령대별 견해 차이는 해리 왕자와 메건뿐 아니라 영국 사회에 존재하는 훨씬 더 광범위한 차이를 드러낸다.

영국인 10명 중 6명 왕실에 무관심

첫째는 인종차별의 문제다. 인터뷰에서 가장 문제가 된 내용은 왕실 가족이 해리 왕자의 아들 아치의 피부색을 궁금해 했다는 점이다. 젊은 영국인들은 조부모나 부모 세대보다 인종 구성이 훨씬 더 다양한 사회에서 자랐다. 이들에게 인종 차별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영국 젊은이는 백인이 아니며, 살면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의 젊은 백인 친구들도 인종차별에 대해 깨우치게 됐다.

현재 30세 이하의 많은 영국인은 다이애나비가 사망했을 때 매우 어렸다. 나도 그 당시 TV로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온 나라를 뒤덮은 깊은 슬픔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한 개인의 전 인생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다.

젊은 영국인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더 개방적이고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더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해리 왕자 부부의 고통에 동정심을 느낀다. 타블로이드 신문 때문에 메건이 경험한 정신적 학대가 왜 그들에게 충격적인 경험이 되었는지도 공감할 수 있다.

왕실 자체에 대한 관심은 애국심의 정도와도 연관돼 있다. 과거엔 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곧 애국심이라고 여겨졌다. 연령대가 높은 사람일수록 높은 수준의 애국심을 보이는 편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 중엔 같은 의미의 애국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적다. 이들은 경제적 불안과 세계 많은 다른 나라에 피해를 입힌 공격적인 세계 팽창주의의 유산을 경험했다. 그런 그들은 조국을 사랑하는 것을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낀다.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해서 왕실을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왕실에 관해 관심이 덜해진다.

나와 내 또래의 많은 영국인은 해리 왕자와 메건의 인터뷰가 여왕이나 왕실에 대해 공격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떠나야 했던 한 부부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인터뷰였다. 해리 왕자는 타블로이드 언론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와 같은 경험을 아내가 하지 않길 바라는 한 남성으로 보였을 뿐이다.

해리 왕자는 그가 여전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윈프리에게 여왕과 필립공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연루되지 않았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냈다고 말했다. 윈프리도 “해리 왕자의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인종차별 대화와 관계가 없었다”고 CBS에 말했다.

하지만 해리 왕자는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나 그의 형 윌리엄 왕자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내게 계획을 문서로 써서 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그 이후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형인 윌리엄 왕자와의 관계에 대해 “현재 잠시 서로의 시간을 갖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이 해리 왕자와 메건이 왕실에서 받았던 대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여왕은 현재 94세다. 왕위를 물려받게 될 찰스 왕세자는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질 뿐 아니라 수많은 논란을 낳았던 인물이다. 그때야말로 정말 영국 왕실은 진정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번역: 유진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짐 불리(Jim Bulley)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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