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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천 뒤집어쓰고 키스, 코로나시대 사랑법 예견한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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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호 19면

[영감의 원천] 마그리트 ‘연인들’‘빛의 제국’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II’(1928).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MoMA 웹사이트]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II’(1928).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MoMA 웹사이트]

방독면처럼 생긴 마스크를 낀 채 키스하는 프랑스 커플. 영국 BBC 방송이 ‘2020년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 중 하나로 뽑은 사진이다. BBC는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시킨다”면서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연인들 II’(1928)를 언급했다. 마스크 커플이 키스하는 대형 그래피티가 미국 해변에 나타났을 때도 사람들은 이 100년 전 그림을 떠올렸다. 하얀 천을 얼굴에 온통 뒤집어쓴 채 키스하는 마그리트의 연인들은 ‘코로나19 시대의 사랑법’이라는 농담과 함께 지난해 해외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 유난히 많이 소환됐다.

친숙하면서도 섬뜩한 이미지 #성과 생, 죽음의 충동 보여줘 #사물을 엉뚱하게 배열해 충격 #초현실적 이미지로 눈길 끌어 #공포영화 감독들에게 영감 줘 #‘엑소시스트’ 포스터에 차용

사랑과 죽음의 공존? 또는 속고 속이기?

그전까지 마그리트의 ‘연인들 II’는 ‘언캐니(uncanny)’한 그림의 대명사였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어떤 것이 친숙하면서 동시에 낯설 때의 그 불편하고 섬뜩한 느낌을 ‘언캐니’라고 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남녀의 옷차림, 흰 수건, 입맞춤이라는 행위는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사실 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기이하게 합쳐지니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하얀 천으로 덮인 얼굴을 불편해한다. 시신과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은 마그리트 어머니의 죽음이 이 모티프를 탄생시켰을 것으로 추측해왔다. 그는 벨기에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오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그가 사춘기 소년일 때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시신이 건져 올려졌을 때 입고 있던 하얀 잠옷이 얼굴을 감싸고 있었고 그것을 소년 마그리트가 목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그리트 자신은 ‘연인들’ 연작이 어머니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했고,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가 소년일 때 어머니의 시신 회수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 한다. 그럼 이 그림은 무슨 뜻일까?

지난해 3월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끼고 키스하는 프랑스 커플의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해 3월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끼고 키스하는 프랑스 커플의 사진. [AFP=연합뉴스]

마그리트는 이렇게 썼다. “내 그림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불가사의(mystery)를 불러일으킬 뿐이다…‘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사람들이 묻곤 하는데,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불가사의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마그리트의 ‘연인들 II’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 우리 삶에서 체험하지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언캐니한 느낌,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섬뜩한 그 느낌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니까. 또는 프로이트가 말한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 즉 성(性)과 생(生)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이 공존하는 것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흰 천을 뒤집어 써서 시신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커플이 생의 욕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위인 입맞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 시대 마스크 키스 커플들은 저 ‘연인들’의 후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이 그림을 소장한 뉴욕 현대미술관(MoMA)측은 이렇게 말한다. “좌절된 욕망은 마그리트 작품의 공통된 주제다. 여기에서 (얼굴을 덮은) 천은 장벽이 되어 두 연인의 내밀한 포옹을 가로막고 열정의 행위를 소외감과 낭패감으로 바꾸어버린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반려자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진정한 본질을 완전히 들춰볼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그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것을 마그리트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면 재미있다. ‘연인들 II’를 그렸을 때 마그리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는데, 아내는 어릴 때부터 친했던 조르제트 베르제였다. 조르제트는 마그리트의 뮤즈로서 여러 그림에 등장했고 둘은 평생을 함께했다. 이렇게만 쓰면 아주 훈훈하고 이상적인 부부로 보일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4).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 [사진 MoMA 웹사이트]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4).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 [사진 MoMA 웹사이트]

하지만 두 사람은 이 그림이 그려진 지 10년쯤 후에 바람과 맞바람으로 이어지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때 마그리트는 동료 초현실주의 화가 여성과 바람이 난 상태였다. 아내 조르제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매우 찌질하게도) 그는 친구인 초현실주의 시인 남성에게 조르제트와 적당히 친하게 지내 주의를 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시인 친구는 그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한 나머지 조르제트와 진짜로 바람이 났다. 아내를 놓치기는 싫었던 마그리트는 ‘어, 이게 아닌데’하며 당황하고 격분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 조르제트와는 화해했는데, 시인 친구와는 영영 절교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를 염두에 두고 마그리트의 1960년 그림 ‘심금’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탐스러운 하얀 뭉게구름 한 덩이가 거대한 샴페인 글라스에 앉아 있는 상쾌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인데, 아내 조르제트에게 주는 선물로 그린 것이다. 마그리트 부부는 그 위기를 겪으며 얼굴을 천으로 감싼 ‘연인들’처럼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겠지만, 삐걱거릴망정 40년을 함께 걸어와서는 이제 샴페인 잔에 하늘과 구름을 담아 축배를 드는 것이다. 아. 이것이 인생인가?

광고 아티스트 출신  화가의 신비한 그림

영화 ‘엑소시스트’ 포스터. [사진 위키피디어]

영화 ‘엑소시스트’ 포스터. [사진 위키피디어]

‘심금’ 역시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풍경과 구름과 샴페인 글라스를 따로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평범한데 합쳐놓고 보면 기이하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이다. 어떤 대상을 상식적으로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이질적인 맥락과 환경으로 옮겨 모순되는 것과 결합시키거나 크기를 왜곡해 충격과 신비감을 주는 기법을 말한다.

살바도르 달리 같은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개개의 사물이나 인물 자체를 기괴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내거나 몽환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마그리트의 경우 개개의 사물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덤덤하게 표현하되 이것들을 엉뚱하게 배열하거나 서로 결합해 더욱더 충격을 준다.

마그리트 특유의 건조하고 깔끔한 스타일은 그가 광고 그래픽 아티스트로 일했던 영향이 크다. 브뤼셀에서 살 때 집 뒷마당 창고에 상업미술 스튜디오를 운영했고, 파리에 가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합류했을 때도 생계를 위해 광고 디자인 일을 병행했다. 낯익은 것들의 낯선 결합이 불편하고 섬뜩한 ‘연인들’과 달리 ‘심금’ 같은 그림은 기발함의 쾌감과 발랄한 느낌이 강한데, 이 또한 마그리트가 대중친화적인 광고를 디자인해본 영향이 클 것이다.

공포영화 감독들도 마그리트를 사랑했다. 마그리트에 영감 받은 가장 유명한 공포영화는 ‘엑소시스트’(1973)다. 영화 포스터는 악마에 씌운 소녀를 전면에 드러내는 대신, 어둠에 싸인 소녀의 집과 이상한 빛을 내는 창문과 가로등과 퇴마사 신부의 실루엣을 내세워 신비롭고도 불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은 이렇게 말했다. “MoMA에서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보게 됐어요. 그 후 그 그림을 계속 마음속에 두고 있었죠. 내가 소녀의 집으로 이 집을 고른 것도 마그리트 그림에 맞추기 위해서였어요. 가로등도 그렇고요.”

‘빛의 제국’에서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 위쪽의 푸른 하늘은 분명히 햇빛 가득한 낮의 하늘이다. 반면 아래쪽에 있는 거리의 집과 숲은 그 햇빛을 전혀 받지 않는 밤의 상태에 있고, 가로등과 실내등까지 켜져 있다. 하늘 부분과 집 부분을 따로따로 봤을 때는 그로테스크하거나 환상적인 데라고는 없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공존하면서 이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변모한다.

마그리트는 ‘빛의 제국’ 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낮과 밤을 동시에 불러내는 것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홀리게 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내게 보였다. 나는 이런 힘을 시라고 부른다.” 그는 일상의 것들의 우연하고 이상한 만남이 하나의 시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렇게 그림은 시가 되어야 하며, 시의 핵심은 불가사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언캐니함을 이제 훨씬 자주 볼 수 있게 된 코로나 시대에, 그러한 일상을 시로 승화시키고 싶은 우리에게, 마그리트가 더욱 자주 소환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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