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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2 09:33:47

세계를 흔든 스파이

중동지도 바꾼 첩보전 전설…이스라엘 구하고 처형 당해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20 00:02

업데이트 2021.03.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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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호 24면

[세계를 흔든 스파이] 모사드의 엘리 코헨

이스라엘이 2000년 발행한 우표 속에 담긴 ‘전설의 스파이’ 엘리 코헨의 사진.

이스라엘이 2000년 발행한 우표 속에 담긴 ‘전설의 스파이’ 엘리 코헨의 사진.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는 뛰어난 정보수집 능력으로 이름이 높다. 신화를 만든 계기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1960년 유대인 학살 실무책임자였던 나치 전범 루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찾아 이스라엘로 데려온 작전이다. 정보 능력과 집념, 그리고 결단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사건이 바로 지혜와 끈기로 적지에서 대담한 정보활동을 펼친 ‘전설의 스파이’ 엘리 코헨(1924~65년)이다.

이집트서 태어나 귀환한 유대인
남미 거쳐 사업가로 시리아 침투

고위층과 친분, 극비정보 빼돌려
‘6일전쟁’ 승리에 결정적 기여

전파 위치 들통나 체포돼 교수형
이스라엘은 유해 송환 노력 계속

코헨은 시리아 고위층에 침투해 군사·정치 정보를 수집해 보고했다.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시오니스트 유대인 부모 밑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56년 박해를 피해 이스라엘로 귀환(알리야)했다. 입대한 그는 군 정보국에서 근무하다 모사드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제대 뒤 2년간 보험회사와 백화점에 근무하던 그는 60년 모사드의 연락을 받고 재면접을 봤다. 메이르 아미트(21~2009년, 군 정보국장 62~63년, 모사드 국장 63~68년) 국장이 시리아에 투입할 요원을 찾다 과거 시험 탈락자 중에서 관련자를 발탁해 훈련하기로 한 덕분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군 정보국과 모사드의 국장을 모두 지낸 아미트는 양측 정보의 결합으로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 시너지를 극대화한 혁신적 정보맨으로평가받는다.

코헨은 모사드의 관찰과 현장 시험, 그리고 훈련을 통과하고 61년 시리아에 잠입할 카차(현장 요원)로 임용됐다. 59년 이라크 출신 유대인인 나디아마잘드와 결혼한 그는 부인과 4개월 된 첫딸 소피를 두고 임지로 떠났다. 해외 임무 도중 4차례 일시 귀국해 둘째딸이리크와 외아들 샤이를 뒀다.

모사드 로고. [사진 이스라엘 정부]

모사드 로고. [사진 이스라엘 정부]

코헨은 우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파견됐다. 시리아 교민으로 위장해 이민자 사회에서 인맥을 쌓았다. 62년 카멜 아민타베트라는 가명으로 시리아에 침투한 그는 정계·관계·군 고위 인사들과 파티를 열며 친분을 쌓았다. 해외 드나드는 사업가로 위장한 그가 제공하는 고급술은 고위층들에게 화제가 됐다. 시리아는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인구의 상당수지만 이슬람주의가 아닌 세속주의를 택해 음주가 자유로웠다.

코헨은 자신의 아파트를 밀회장소로 제공했다. 전망 좋고 넓은 그의 아파트는 음주·난교파티 등 지도층의 ‘타락 해방구’가 됐다. 그는 시리아 지도층의 취중 발설, 정부들과의 대화를 수집해 이스라엘에 낱낱이 보고했다.

시리아 고위층과 함께 방문한 골란고원 등 최전방 기지 위치와 현지에서 목격한 무기체계도 상세하게 복기해 본국에 보고했다. 그 결과 모사드는 시리아가 소련과 함께 마련한 이스라엘 침공계획, 무기체계 배치 현황, 레이더 배치 상황과 근무자들의 일과, 군 주둔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는 이스라엘이 67년 ‘6일전쟁’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골란고원을 단 10시간 안에 점령하고 전투기는 레이더를 피해 안전하게 공격에 나설 수 있었던 자산이 됐다. 코헨은 골란고원의 은폐 진지에 근무하는 시리아 군인들이 땡볕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그늘용 나무 심기를 건의했다. 시리아 군부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이를 채택했다. 하지만 그늘용 나무는 전시에 고스란히 포 사격 표적이 됐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헤르지산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정원’에 세운 코헨의 추모 석판. [사진 이스라엘 정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헤르지산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정원’에 세운 코헨의 추모 석판. [사진 이스라엘 정부]

코헨은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하페즈 알아사드 등 권력 핵심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 덕분에 국방부 차관 후보로도 올라갔을 정도다. 물론 알아사드는 이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코헨은 1965년 1월 24일 그의 아파트에서 무선 전파가 발신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시리아 방첩 당국에 체포돼 그해 5월 다마스쿠스의 마제 광장에서 공개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이스라엘은 트럭 등 물자를 시리아에 다량 제공해 코헨과 맞바꾸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시리아군 장교들이 여군들을 불러 ‘부적절한 파티’를 한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코헨은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적국 시리아에 괴멸적인 타격을 안기고 사라졌다. 그는 항상 한계를 넘어서는 정보 수집 능력을 보여주는 모사드 전통의 발원지가 됐다. 눈여겨볼 인물은 코헨을 체포한 시리아 정보국장 아흐메드 수이다니(32~94년)다. 63년 시리아 쿠데타에 참가해 정보국장이 된 그는 의심이 많아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는 방해 전파 때문에 통신이 어렵다는 외국 대사관의 민원을 흘려듣지 않았다.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다마스쿠스 시내의 전파 송수신을 일시적으로 끊어버리는 정파를 명령했다. 마침내 전파가 포착되자 소련 기술진과 장비를 동원해 삼각측정법으로 위치를 파악했다. 65년 1월 24일 전파 발신지로 지목된 아파트를 급습해 현장에서 코헨을 체포했다. 수이다니는 나중에 정쟁에 휘말려 25년간 옥살이를 하다 숨졌다.

코헨은 모사드의 자랑이자 슬픔이다. 그를 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유해를 조국으로 귀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이 특수작전을 벌여 유해를 가져갈까봐 매장 장소를 세 차례나 옮겼다. 무덤 위치 찾기와 유해 귀환 프로젝트는 지금도 추진 중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코헨의 유해 발굴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헤르지산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정원’에 추모 석판을 세웠다. 국민의 가슴을 적시는 장소다. 77년 코헨의 아들 샤이의 유대 성인식이 열리자 당시 메나헴 베긴 총리부터 국방부 장관, 참모총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츠하크 호피 당시 모사드 국장도 이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고의 예우다.

모사드의 정보로 기습, 이집트·시리아·요르단 공군력 하루 아침에 궤멸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공작기관 모사드가 아랍권에서 성장한 엘리 코헨을 스파이로 키워 시리아에 침투시킨 것은 국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의 하나다. 1948~73년의 25년 동안 아랍권과 전면전을 4차례나 벌였던 이스라엘로서는 적의 군사 정보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1948년 5월 14일 독립 선언 다음 날인 5월 15일 아랍권의 공격을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이스라엘은 이듬해 3월까지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다. 제1차 중동전쟁, 아랍·이스라엘 전쟁, 또는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분쟁이다.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이 직접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레바논·수단·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예멘·모로코도 참전했다. 이스라엘은 병력·무기·장비·보급 모두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결국 승리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67년 6월 5~10일에는 이스라엘의 명운이 걸린 3차 중동전쟁, 즉 ‘6일전쟁’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불과 엿새 동안 이집트로부터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시리아로부터는 골란고원, 요르단으로부터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각각 점령했다. 이스라엘의 생존과 번영의 초석이 된 군사적 승리다.

개전 첫날인 6월 5일 이스라엘 공군이 아랍권을 기습 공격해 제공권을 장악한 ‘포커스 작전’은 정보전의 개가로 평가된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중동학자 유진 로건의 저서『아랍』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집트는 폭격기 전체와 전투기의 85%, 그리고 활주로와 레이더의 상당수를 잃었다. 요르단은 비행기와 활주로, 기지 등 공군 전력 전체를 상실했다. 시리아는 공군 전력의 3분의 2가 그날 오후에 사라졌다. 아랍권 공군기 452대가 지상에서, 79대가 공중에서 각각 파괴됐다.

이스라엘의 군 정보국과 모사드는 전쟁 전 이집트와 시리아에 휴민트(HUMINT·인적정보) 요원을 심어 전력 배치와 작전 등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했다. 레이더 사각지대와 이를 일시 꺼두는 시간까지 파악했다. 아랍권은 갑작스러운 이스라엘 공군기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제공권을 잃은 아랍권은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다. 정보전의 승리였다. 65년 시리아에서 처형된 코헨이 살아있을 때 시리아에서 수집해 보내준 정보도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4차에 걸친 중동전은 국방력이 평화를 여는 열쇠임을 보여준다. 아랍권을 제압한 이스라엘 국방력의 이면에는 적의 땅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하는 수많은 요원이 자리 잡고 있다. 국방력과 정보력을 양보해선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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