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감독 사퇴시킨 '돼지 분장'…日연예인의 성숙한 반격

중앙일보

입력 2021.03.19 14:34

업데이트 2021.03.19 16:26

"저는 이런 체형의 나로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나란 존재 자체를 표현해가고 싶습니다. 각자의 개성과 사고방식을 존중하는 풍요로운 세계가 되길 바랍니다."

도쿄올림픽 개회식 '돼지 분장' 소동에 휘말린 연예인의 성숙한 대응이 일본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인기 개그우먼 와타나베 나오미(渡辺直美·33)는 18일 도쿄올림픽 개·폐회식 총책임자의 사임과 관련해 소속사를 통해 입장문을 냈다. 상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도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낸 코멘트에 "어른스럽다" "당당함에 반했다" 등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올림픽 개폐회식 책임자 논란 일자 사의
여성 개그맨 '돼지 분장' 컨셉 문제시
와타나베, "나는 이런 체형으로 행복"
"각자 개성·생각 존중하는 세상 되길"

지난 2019년 5월 도쿄올림픽 관련 행사에 참가한 인기 개그맨 와타나베 나오미. [AP=연합뉴스]

지난 2019년 5월 도쿄올림픽 관련 행사에 참가한 인기 개그맨 와타나베 나오미. [AP=연합뉴스]

일본 대표 크리에이터의 부적절한 아이디어 

이번 논란은 17일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의 보도로 시작됐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폐회식 총괄책임을 맡은 사사키 히로시(佐々木宏氏·66)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난해 3월 팀원들의 온라인 단체 대화방에 내놓은 아이디어가 문제가 됐다.

그는 '올림픽'의 마지막 발음이 돼지를 뜻하는 '피그'(Pig)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해, 개막식 출연자로 섭외된 와타나베를 돼지로 분장시켜 무대에 올리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소속사 홈페이지에 실린 프로필에 따르면 와타나베는 키 158㎝에 체중은 107㎏이다.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늘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도쿄올림픽 개·폐회식 총괄책임을 맡았던 사사키 히로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이터=연합뉴스]

도쿄올림픽 개·폐회식 총괄책임을 맡았던 사사키 히로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이터=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이 아이디어에 대해 팀 내에서도 "모욕적이다" "아이디어 차원이라도 안 된다" 등의 반대가 높아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슈칸분슌을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되자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에게 개막식 연출을 맡기다니 말도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모리 사태' 겪은 조직위, 즉시 사의 접수 

사사키 디렉터는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電通) 출신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폐막식 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게임 캐릭터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마리오로 분장해 깜짝 등장하는 장면의 연출을 이끌었다.

1년 전 회의 내용이 논란이 돼자 사사키 디렉터는 "개회식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내 생각과 발언에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다"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올림픽조직위 회장에게 사의를 전달했다.

한 달 전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회장의 여성 멸시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던 조직위는 이번엔 사임 의사를 곧바로 받아들였다.

2016년 리우올림픽 폐회식에 수퍼 마리오 복장을 하고 등장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2016년 리우올림픽 폐회식에 수퍼 마리오 복장을 하고 등장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이후 대중의 시선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논란의 대상이 된 와타나베에게로 옮겨졌다. 와타나베는 18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겉으로 보이는 저는 몸이 크고, 외모로 놀림을 받는다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한 가운데 이 일을 해나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체형의 나로 행복하다"고 밝혔다.

이어 "각자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하고, 서로 인정해 즐겁고 풍요로운 세상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트위터 등에는 이런 와타나베의 코멘트에 대해 "성숙한 대응"이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다만 한편에서는 "와타나베의 대응은 확실히 어른스럽지만, 이를 과도하게 찬양하는 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화를 내거나 반격하는 사람을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계론도 나오고 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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