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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때리는 것 안돼요”손주 훈육 방식 놓고 딸과 말다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11)

손주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누나에게 당하기만 하던 손자가 네 살이 되자 누나를 오히려 괴롭히고 울리기까지 한다. 키는 머리 하나만큼이나 작지만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손자를 훈육하는 과정에서 딸과의 시각 차이로 이견이 생겼다.

손녀는 동생이 태어나자 독차지하던 사랑이 동생에게로 쏠리는 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두 살 아래의 동생을 확 밀치거나 심지어는 팔을 물어 피멍이 들기도 했다.

다정하게 책을 읽고 있는 오누이. [사진 조남대]

다정하게 책을 읽고 있는 오누이. [사진 조남대]

그렇게 당하기만 하던 손자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 어느덧 제법 덩치가 커졌다. 평상시에는 누나를 따르고 잘 지내다가도 누나가 혼자 책을 읽거나 놀아주지 않으면 옆으로 가서 슬쩍 밀치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해코지를 한다.

마음 여린 누나는 시무룩해 하거나 울먹이면서 “동생이 머리카락을 당겼다”거나 “때렸다”며 이른다. 손자에게 “누나를 괴롭히거나 때리면 안 된다”고 타이르면서 “잘못했으니 사과하라”고 하면 어눌한 목소리로 “누나 미안해”라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혼을 내거나 야단을 쳐도 싱글벙글 웃으며 뉘우치지도, 기가 죽지도 않는다. 오히려 누나가 울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 짓궂게 괴롭히기도 한다.

2년 전만 해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동생이 누나를 괴롭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격세지감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어느 날 동생이 괴롭힌다고 엉덩이 때려주는 누나를 보고 엄마인 딸이 깜짝 놀라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고 타이르자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때려주라고 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딸은 “동생이 괴롭힌다고 때리라고 가르치면 어떻게 하느냐”며 항의해 온다.

손자가 그림 그리는 것을 돌봐주는 할아버지.

손자가 그림 그리는 것을 돌봐주는 할아버지.

손자의 짓궂은 행동을 보고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아 손녀에게 “울지 말고 당당하게 야단을 치거나 엉덩이를 살짝 때려줘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손자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려고 한 것인데 뭐가 잘못됐냐”고 하자 딸은 “때리는 것이 버릇 되면 안 되니 앞으로는 그러지 마시라”고 한다.

딸로부터 훈계를 듣자 민망하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상한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니 딸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누나를 괴롭히는 손자에게 혼내기보다는 차근차근 설명하자 알아듣기도 한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지속해서 타이르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자랄 때는 체벌이 다반사였으며 ‘사랑의 매’라고 용인되기도 했고,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속담도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도 숙제를 해 오지 않거나 잘못하면 선생님에게 호리호리한 무궁화가지 회초리나 얇은 슬리퍼로 뺨을 맞기도했다. 중학교 때 키 큰 아이는 쉬는 시간에 상급생에게 불려가 이유도 없이 맞았다. 또 고교 시절에는 선생님에게 긴 걸레 자루나 야구방망이로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맞기도했지만, 집에 와서 말도 못 했다. 이야기를 해 본들 “네가 잘못했으니 맞은 것 아니냐”며 오히려 부모님께 꾸중만 듣던 시절이었다.

조선시대 김홍도 풍속화 ‘서당’에는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훈장으로부터 회초리를 맞고 우는 학생의 모습이 코믹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교사직에 근무하는 것을 교편(敎鞭)을 잡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한자 풀이는 가르칠 교(敎), 채찍 편(鞭)이다. 이와 같이 체벌의 역사는 교육의 역사라고 할 만큼 깊다.

나도 자식 키울 때 회초리를 든 적이 있었다. 맞으며 자라다 보니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체벌하는 것도 훈육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첫째가 참아야지’하는 분위기여서 형제가 싸우면 첫째를 혼낸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첫째도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너무 어른스러움을 강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나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동생.

누나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동생.

요즈음 육아서적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면 첫째 편을 많이 들어주라고 한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고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지한 아버지였던 것 같다. 딸로부터 때려주라고 한 것에 대해 항의를 받았을 때는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 고마웠다.

자녀교육 방법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자식 키울 때의 방식대로 손주를 훈육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전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들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보완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손주가 자라서 할아버지를 회상할 때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지 생각해 본다. 정서적 안정감과 사랑으로 보듬어 주면서 끊임없이 배우는 인자한 할아버지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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