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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사퇴 찬반투표도 등장···문파들 아픈기억 긁은 'LH특검'

중앙일보

입력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18일 "LH 투기의혹으로 드러난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는 건 대한민국과 서울시의 주요 과제"라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내곡동 땅 투기 의혹에 대해 국민께 진실을 고백하라"고 주장했다. 오종택 기자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18일 "LH 투기의혹으로 드러난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는 건 대한민국과 서울시의 주요 과제"라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내곡동 땅 투기 의혹에 대해 국민께 진실을 고백하라"고 주장했다. 오종택 기자

“한 최고위원이 ‘LH특검 어떻겠냐’고 묻길래 난 반대했다. 그런데 나중에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제안하고 지도부가 그걸 덥석 받더라.”

더불어민주당의 법조인 출신 한 다선 의원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관련 특검 도입 과정에 대해 18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한 말이다. 지난 12일 박 후보가 제안하고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이 즉각 수용하는 형태로 진행된 LH 특검이 지난 16일 국민의힘 전격 수용으로 급물살을 타자 당내에선 되레 “특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한 중진 의원)는 우려가 나온다.

극성 친문 지지층들도 민주당 당원게시판에 “없는 죄도 만들어 타깃을 몰살시키는 검찰에게 수사권을 넘겨주며 대선까지 망치고 있다”며 격렬한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지난 16일 당원게시판엔 ‘김태년 직무대행 사퇴 찬반투표’까지 등장했는데 18일 정오까지 찬성이 2743명, 반대가 26명이었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특검에 반발하는 지지층들의 문자 폭탄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루킹 특검 잊었나”

문파들이 기억하는 건 2018년 5월 야권의 제안을 민주당 지도부가 받아들여 실시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의 수사 결과다. 2018년 6~8월 두 달간 진행된 수사로 친문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공범으로 지목되며 불구속기소(업무방해·선거법 위반 혐의)됐다. 김 지사는 2019년 1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되며 법정구속됐다가 7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지난해 11월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드루킹 특검법 통과를 앞둔 2018년 5월 당시 “책임져야할 인사들은 성역 없이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홍영표 당시 원내대표도 수사 대상이 여권 전방위로 퍼진 2018년 8월 “특검이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이에 문파들은 LH 특검이 정권 말 핵심들을 겨냥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며 “드루킹 특검 결과를 잊었느냐”,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두고 괴롭힐 일을 김 대행이 받았다”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사건과 관련해 2019년 1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거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77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었다. 그러나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김상선 기자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사건과 관련해 2019년 1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거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77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었다. 그러나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김상선 기자

검찰로부터 6대 범죄 직접수사권까지 박탈하는 '검찰개혁 시즌 2'에도 특검 도입이 브레이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정부는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중심으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를 꾸려 검찰을 배제한 상황에서 수사를 진행중인데, 특검이 도입되면 검찰이 개입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검은 통상 파견검사가 수사팀의 주축을 맡아 수사·기소를 함께하기 때문에 여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기조와는 방향이 반대다.

비판은 박 후보에게로 이어졌다. 당원게시판엔 “박 후보가 검찰개혁을 되돌리는 특검을 제안한 건 해당 행위”라는 비판 글이 올라왔다. 당내에서도 “선거가 불리해진 박 후보가 자기 생각이 앞선 거 같다. 지도부도 후보 요구를 등질 방법이 없었을 것”(법조인 출신 의원)이란 평가가 나왔다.

“MB정부 뉴타운까지 특검 포함”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지자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18일 페이스북에 “특검은 검찰에 수사를 맡기는 게 아니다. 경찰,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특검이 구성돼야 한다”며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넘긴다는 주장은 사실도 아니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적었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 의원은 “특검 얘기가 나온 후 국민 공분이 많이 사그라들었다”며 “일부 지지층 반발이 있지만 한줌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게 당의 대체적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왼쪽 넷째)과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왼쪽 셋째) 등이 17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 앞에서 기자회견을 특혜분양 명단으로 알려진 '엘시티 리스트'를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왼쪽 넷째)과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왼쪽 셋째) 등이 17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 앞에서 기자회견을 특혜분양 명단으로 알려진 '엘시티 리스트'를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민주당은 LH 특검을 고리로 수세를 공세로 전환했다. 김 대행은 지난 17일 부산 해운대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인 엘시티(LCT)를 방문해 “부동산 적폐의 사슬을 끊기 위해 LH 특검과 함께 엘시티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며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를 겨냥했다. 당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한 뉴타운 사업도 LH 특검 대상에 포함하자”(김 최고위원)는 주장도 나왔다. 야당은 “LH 사태로 국민 분노가 치솟는 판에 여론 물타기 의도 아니냐”(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반응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 공분이 큰 땅 투기 의혹을 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하면 여야 가릴 것없이 공멸한다”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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