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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례 보니···한명숙 수사지휘, 한달전 공소시효 끝났다

중앙일보

입력

한명숙 전 총리 서울구치소 수감. 한명숙 전 총리가 구치소로 들어가기 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명숙 전 총리 서울구치소 수감. 한명숙 전 총리가 구치소로 들어가기 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범계 법무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발동한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의 ‘재소자 위증 교사’ 의혹의 공소시효가 이미 한달 전 끝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와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 판단은 전혀 무관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소시효 지났다” 논란 분분  

박 장관의 수사지휘는 한 전 총리 1심 증인 재소자 김모씨의 공소시효 만료일인 오는 22일까지 대검 부장회의를 개최해 김씨에 대한 (모해위증) 혐의 유무 및 기소 가능성을 재심의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포괄일죄 법리에 따라 2011년 2월 21일 증언내용 등의 논의 필요성 심의도 지시했다.

검찰 측 증인인 재소자 김씨는 2011년 3월 23일 허위 증언과 함께 같은 해 2월 21일에도 허위 증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의 허위 증언을 당시 수사팀이 교사했다는 게 모해위증교사 의혹이다. 일단 김씨를 기소한 뒤 수사팀 검사들을 본격 수사하겠다는 게 이번 수사지휘의 목표다.

공소시효는 10년으로 2월 증언의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3월 증언까지 포괄일죄를 적용될 경우 추가 기소도 가능해진단는 논리인 것이다. 포괄일죄란 서로 다른 시점에 벌어진 여러 개의 행위가 포괄적으로 1개의 혐의 구성요건에 해당해 동일한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이미 3월 23일 위증 의혹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반론이 거세다. 증인 김씨의 2011년 2월 21일 증언과 3월 23일 증언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증거조사이기 때문에 각각의 공소시효로 봐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2월 21일 이후 2차례 열린 공판 조서(3월7일‧23일)에서는 “접견 녹음 CD검증을 위하여”라고 적혀있을 뿐 “앞서 증인신문절차가 종료된 김씨의 신문을 계속하기 위함”과 같은 신문의 연속성을 언급한 부분도 일체 없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박범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특히 3월 23일 증언 내용은 ‘위증’에 해당할 수는 있더라도, 타인(한 전 총리)을 음해하려는 ‘모해위증’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해당 증언은 “서울중앙지검 복도에서 다른 동료 재소자를 우연히 마주쳤다”는 것과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고(故) 한만호 씨가 적어준 쪽지대로 읽은 것 뿐”이라는 내용이 주인 탓이다.

대법원의 판례도 이미 나와 있었다. 지난 2010년 대법원 형사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이미 거짓 진술을 한 증인신문절차가 종료됐다면 그 때 위증죄는 성립된 것이고, 그 이후에 다시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증인이 종전 진술을 바꾼다하더라도 위증죄의 성립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러한 논리가 성립한다면 사실상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안을 두고 수사지휘권이 행사된 ‘블랙코미디’가 벌어진 것”이라고 평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도 “대법원 판례를 부장회의로 바꾸겠다는 것이냐”며 “억지 수사 지휘”라고 꼬집었다.

반면 법무부는 ‘법리적으로 헷갈리는 부분은 있지만, 포괄일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법무부의 논리대로라면 3월 23일 증언이 모해위증일 경우, 2월 21일 증언도 포괄일죄로 모해위증이 성립한다.

설사 위증이더라도, 한명숙 유죄와는 관계없다  

심지어 2011년 3월 23일 재소자 김씨가 한 증언조차 한 전 총리의 본안과는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높다. 한 검찰 간부는 “직접 증거도 아니고 전문 증거였던 데다 유죄의 증거도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이 증언들은 한 전 총리 유·무죄 판단을 위한 증거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실제 한 전 총리의 ‘징역 2년형’ 유죄 확정에는 한만호씨의 1억원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 자금으로 들어간 사실이 입증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국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의사당을 나서며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손을 잡고 있다. 중앙포토

한명숙 전 총리가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국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의사당을 나서며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손을 잡고 있다. 중앙포토

공소시효 논란에,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은 사건에 수사지휘권이 발동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은 여권 내 한 전 총리의 입지 때문이다. 한 전 총리는 당대표를 지내면서 ‘친노(친노무현) 계의 정계 진출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친노진영의 대모’(代母)로 불리기도 했다. 대법원 유죄 판결이 확정되자 당시 당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고 우려한다”고 했다.

이에 법조계 일각은 “여권에서 ‘마음의 빚’은 있지만, 재심 신청이나 검찰과거사위도 어려울 정도로 유죄가 명백하기 때문에 박 전 장관이 ‘대검 부장회의‘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이라는 분석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정당성을 흔들어 한 전 총리의 명예는 복권하고, ’검찰개혁시즌 2‘에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다목적 카드’라는 것이다.

김수민·강광우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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