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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해용의 시시각각

IT전문가보다 돈 더 받는 방역 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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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시급 1만5000원, 자격 요건 없음.’

‘시급 8720원, 관련 학과 전공자 또는 경력 2년 이상.’

시급의 순서가 바뀐 게 아니다. 정부가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포함한 직접일자리 사업의 급여 조건이 이렇다. 누구나 지원이 가능한 일자리에는 1만5000원의 높은 시급을, 일정 수준의 자격·경력을 요구하는 곳에는 최저임금을 매겼다. 이처럼 전문성이나 업무 숙련도를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임금을 책정한 게 곳곳에서 눈에 띈다.

먼저 시급 8720원을 주는 일자리를 보자. 딱 법정 최저임금만큼 주는데 지원 자격 요건이 깐깐한 곳이 적지 않다. 해양수산부의 ‘스마트 어촌 지원’은 정보기술(IT) 관련 학과를 졸업했거나 프로그램 개발 등에서 경력 2년 이상을 채워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방송영상콘텐트 제작 지원’은 방송영상독립제작사의 현역 PD, 작가, 촬영 스태프 등을 뽑는다. 환경부의 ‘사업장 미세먼지 관리’는 환경 분야 자격증 소지자나 관련 산업체 은퇴자가 대상이다.

취업자 12개월 연속 감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취업자 12개월 연속 감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런데 노인들의 ‘용돈벌이’라고 조롱받는 일들도 똑같은 시급을 준다. 경찰청의 ‘아동 안전 지킴이’나 환경부의 ‘5대 강 환경 지킴이’, 해양경찰청의 ‘연안 안전사고 예방 활동’ 등이다. 일정 수준의 경험·지식이 필요한 일자리를 준(準)단순노무와 동급으로 취급한 셈이다.

아무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교육부의 ‘특수학교 방역 보조 인력 한시 지원’이 1만4000원, 역시 요건이 없는 과기부의 ‘지능정보산업 인프라 조성’이 1만5000원을 받는 점을 감안하면 경력·전공자에 대한 홀대가 더욱 두드러진다.

오죽하면 국회 예산정책처까지 나서 “업무 난이도나 전문성에 비해 시급이 높다면 해당 사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형평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난이도와 전문성에 비해 시급이 낮다면 해당 일자리 사업의 집행 실적이 부진할 것”이라고 꼬집을까. 정부가 지표상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것만 염두에 두고 기준 없이 시급을 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구멍은 이뿐이 아니다. 예정처 분석에 따르면 부처 간 사업의 유사·중복도 많다. 저소득층·실직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안전부의 희망근로 지원 사업은 복지부의 방역 지원 관련 사업과 자활근로 사업, 환경부의 ‘재활용품 품질 지원 개선’과 대동소이하다. 지방자치단체가 매년 추진하고 있는 공공근로 사업과 겹치기도 하고, 본예산 일자리 사업과 참여 대상·업무 내용이 비슷한 경우도 허다하다. 예산 낭비다.

문제는 이렇게 세금을 퍼붓는 ‘관제 알바’를 만들어 고용 지표에 땜질해도 전체 일자리 수는 되레 줄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1월과 2월 연속으로 이어진 고용 참사가 정부의 공공 일자리 정책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1분기에 세금을 투입해 90만 개의 일자리를 직접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골목 청소, 등·하굣길 교통지도, 금연구역 관리, 재활용 분리수거 등이 다수다. 정부의 돈줄이 끊기면 바로 사라지는 일자리들이다.

최악의 고용상황을 타개할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 그러려면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하게 하면 된다. 세금 한 푼 안 들어가는 방법이다. 청와대도 이를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온전한 고용 회복은 민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민간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현실은 정반대다. 기업의 투자를 막는 규제는 되레 늘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협력이익공유법 등 투자 의욕을 꺾는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여기에 귀족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노동개혁은 시늉이고, 기업의 팔을 비틀 노동이사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일자리 정부’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에서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