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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의 뉴스&체크

“진상조사, 흐지부지 끝나” vs “북과 대화 재개시 해결 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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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해 공무원 피살 6개월

모레(21일)면 서해 앞바다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살된 지 꼭 6개월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대통령 “직접 챙긴다” 약속했지만 #유가족들은 “정부 연락 한번 없어” #“사람 먼저 아닌 권력유지가 먼저” #유엔 인권 지적도 문 정부가 최다

유가족 대표인 피살자의 형 이래진씨는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현 정권 사람들이 말로는 사람이 먼저라고 강조하는데, 실상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대북관계를 의식해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는 것이다.

15일 오전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서해 사건 피살자의 형 이래진씨가 OHCHR의 혐의서한에 대한 정부의 답변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정부가 수사중이라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지적했다. 정수경 PD

15일 오전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서해 사건 피살자의 형 이래진씨가 OHCHR의 혐의서한에 대한 정부의 답변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정부가 수사중이라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지적했다. 정수경 PD

정부가 어떤 조치를 했나.
“6개월 지났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모습이 안 보인다. 사건 직후 이슈가 커질 때는 벌벌 떨다가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니 나 몰라라 한다.”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늘 인권을 강조하는데 정작 필요할 때는 등한시한다.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누구에겐 있어야 하고, 누구에겐 없어도 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경제·군사·문화 등 세계 10위 국가지만 인권만 놓고 보면 후진국이다.”
대통령이 인권을 소홀히 여긴다는 뜻인가.
“광복절이나 3·1절 축사에서 단 한 명의 생명도 지키겠다고 했는데, 정작 공무원이 피살돼도 북한에 아무 말 못 하고 있다. 그러면서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발표(‘월북’ 주장)를 국방부가 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8·15 축사에서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갖는 헌법 10조의 시대가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제 징용 피해자들의 승소 사실(2018년 대법원)을 언급하며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나라에 손해되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입장을 강조했다. 전날(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 축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은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선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의 부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9세 딸아이, 아빠 죽음 몰라

“대통령은 ‘아이들이 고통 겪지 않게 항상 함께한다’고 했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다. 9살 딸은 아직도 아빠의 죽음을 모른다. 납골당이라도 있어야 돌아가셨다고 할 텐데. 법적으로 실종 상태라 사망신고도 못하고 있다.”

유엔이 한국 정부에 질의한 인권 사안

유엔이 한국 정부에 질의한 인권 사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정부가 어떻게 월북이라고 퍼뜨릴 수 있나. 우리도 기사 보고 알았다. 월북이 맞는다면 확실한 증거로 납득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 그냥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정부는 북측에 공동조사를 요청했으니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흐지부지 끝나가고 있다.”
정부에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자유가 없는 것 같다. 높으신 분들에게 일개 공무원은 하찮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딸린 가족도 함께 봐 달라. 지금은 가족들의 인권까지 무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유족은 모를 수 있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편지 후 외교·국방·통일부 장관, 해양경찰청장이 유가족을 면담하도록 주선했다”며 “대통령이 꼭 직접 만나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특히 “남북 대화채널이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과 실질적 협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화 재개 시 진상규명을 포함해 사건 해결 노력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엔 인권 지적, 2020년만 6차례

이 사건이 국제사회에 알려지자 유엔최고인권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해 11월 17일 한국 정부의 조치에 우려를 표하는 혐의 서한(Allegation Letter·AL)을 보냈다. OHCHR가 제기한 이슈는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인식된다. 각국 정부는 60일내 답변해야 한다.

OHCHR가 지적한 문제점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북한의 억류·심문·살해 정보를 유가족에게 상세히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경찰 수사가 피살자의 월북 의도를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OHCHR는 “설령 월북 의도가 있었다 해도 한국 정부의 인권 의무가 달라질 순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상세한 조치 내역과 유가족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 등을 물었다.

한국 정부는 마감시한인 1월 15일 “수사 중이라 정보 공개가 어렵다”고 답변했다. 유족과의 정보 공유에 대해선 “중간 수사 발표를 통해 유족의 여러 질문에 답변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 진행상황을 공유했다”고 해명했다. “먼저 면담을 요청해 만나거나 언론을 통해 들은 게 전부”라는 유족의 설명과 일치한다.

OHCHR의 이같은 문제 제기는 문재인 정부에서 유난히 두드러진다. 중앙일보가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OHCHR는 총 35차례 인권 문제 관련 서한을 한국에 발송했다. 이중 절반이 넘는 18건이 현 정부(2017년 5월 이후)에서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2011년 1월 ~ 2013년 2월) 5건, 박근혜 정부(2013년 3월 ~ 2017년 4월) 12건보다 많다.

특히 2020년 한해에만 6건이었다. 1월 탈북 선원 2명 강제 북송, 7월 고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9월 통일부의 북한인권단체 사무검사 등이다. 전체 18건 중 4건에 대해선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선 없던 일이다. 김기현 의원은 “진보를 자처하는 정권이 국제사회에선 반인권 국가로 낙인찍힐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30일 발효되는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도 OHCHR가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미 하원의 초당적 인권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크리스 스미스(20선) 공동위원장은 지난해 12월 “한국의 헌법과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조치”라며 “어리석은(inane) 입법이 공산주의 북한을 묵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는 지난 12일 유엔 인권이사회(UNHRC)에 제출된 북한인권 결의안(초안)의 공동제안국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한국은 2009년부터 매년 공동제안국에 참여했지만 2019년 이후 불참했다. 2016년 국내에서 제정된 북한인권법은 사실상 사문화 된 상태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UNHR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수십 년간 북한 주민들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포함해 북한인권법을 실행하라”고 촉구했다.

TJWG 신희석 “서해 사건 책임, 남북 모두에 있어”

신희석

신희석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각은 어떨까. 글로벌 인권 네트워크인 전환기 정의워킹그룹(TJWG) 신희석(사진) 법률분석관의 의견을 들어봤다.

OHCHR의 서한은 무슨 의미인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혐의서한은 인권침해 행위가 이미 발생한 후 그 ‘혐의’를 물을 때 발송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과 북한 모두에 보낸 만큼 인권침해의 책임을 양측에 묻고 있다는 뜻이다.”
참혹한 죽음이었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인권유린이다. 구호 조치가 먼저인데, 방치하다 총살까지 했다. 끔찍한 인권침해다.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사건 직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했는데, 이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안타깝다.”
OHCHR도 정부의 ‘월북’ 프레임을 지적했다.
“월북은 추측일 뿐이다. 북한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한국 정부는 무슨 대응을 했는지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했지만 ‘월북’ 프레임에 묻혔다.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도 벌어졌다.”
유독 문재인 정권에서 인권 문제 지적이 많다.
“북한 인권이 대표적이다. 통일부 사무 감사나 대북전단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자유는 독재와 민주 국가를 구분하는 핵심 가치다.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다. 이번 사건이나 2019년 탈북자 강제북송에서 보듯 한국이 북한과 인권침해의 공범이 돼가고 있다.”
오늘 오후 5시 중앙일보 유튜브 ‘윤석만의 뉴스뻥 Live’에서는 유가족들이 출연해 피해자의 죽음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 합니다.

오늘 오후 5시 중앙일보 유튜브 ‘윤석만의 뉴스뻥 Live’에서는 유가족들이 출연해 피해자의 죽음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