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비핵화’ 공동성명서 빼고 기자회견서 더 세게 때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18 18:05

18일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 회의를 통해 도출된 공동성명은 담긴 내용보다 빠진 내용이 더 주목받았다. 해당 성명엔북한 비핵화, 쿼드, 중국 등 한ㆍ미 간 이견이 도출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내용이 일제히 빠졌다. [사진 공동취재단]

18일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 회의를 통해 도출된 공동성명은 담긴 내용보다 빠진 내용이 더 주목받았다. 해당 성명엔북한 비핵화, 쿼드, 중국 등 한ㆍ미 간 이견이 도출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내용이 일제히 빠졌다. [사진 공동취재단]

5년 만에 열린 18일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회의 끝에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중국’과 ‘북한 비핵화’가 아예 빠졌다. 이견이 있어 양 측이 합의 형식으로 내는 문서에는 넣지 못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진 공개 발언에서 미국은 북한 체제를 “억압적인(repressive) 정부”, 중국의 행위를 “공격적이고 전체주의적(aggressive and authoritarian) 도전”으로 규정하며 할말을 다 했다.

5년 만의 한ㆍ미 2+2 회의
'북비핵화·쿼드·중국' 빠진 공동성명
블링컨 기자회견선 '작심 발언'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회의 뒤 결과물로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70년 전 전장에서 피로 맺어진 한ㆍ미 동맹이 한반도와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의 핵심축”이라고 재확인했다. 또 한ㆍ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국 방어와 한ㆍ미 연합방위태세 강화에 대한 상호 공약도 재확인했다.

사실 핵심축이란 표현이나 굳건한 방위 공약 등은 한ㆍ미 간 협의 때마다 들어가는 기본 밑반찬 같은 내용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오히려 빠진 내용이 더 눈길을 끄는 이유다.

공동성명에 '중국' 단어도 없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우선 중국이 빠졌다. 불과 이틀 전 미ㆍ일 공동성명에서는 양 측이 중국의 ‘강압적 행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해경법부터 대만 해협에서의 군사활동,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홍콩과 신장의 인권 문제까지 사실상 전분야에 걸쳐 중국을 저격했다.

하지만 한ㆍ미 공동성명에서는 “역내 안보 환경에 대한 도전이 커지는 가운데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훼손하고 저해하는 모든 행동에 반대하는 데 있어 두 나라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은 한ㆍ미 동맹이 공유하는 가치”라고 한 게 전부다. 구체적 현안은 모두 건너뛴 원론적 입장 표명인 데다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특정하지 않았다. 쿼드(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안보협의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원래 공동성명에 제3의 특정 국가가 들어가는 것이 예외적”이라고 설명했다.

‘비핵화’ 없이 “북핵, 우선 관심사”

18일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 회의 공동성명엔 '북한 비핵화'란 표현이 빠졌다. 다만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문제를 거론하며 "동맹의 우선 관심사"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로이드 오스틴(오른쪽) 미 국방장관. [사진 공동취재단]

18일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 회의 공동성명엔 '북한 비핵화'란 표현이 빠졌다. 다만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문제를 거론하며 "동맹의 우선 관심사"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로이드 오스틴(오른쪽) 미 국방장관. [사진 공동취재단]

비핵화도 빠졌다. 북핵 문제와 관련, 한ㆍ미 공동성명은 “양국 장관들은 북한 핵ㆍ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임을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돼 있다. 한ㆍ미 간 안보 협의 결과에서 비핵화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또 북핵과 미사일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지도 않고 ‘우선 관심사’로만 표현했다.

2+2 회의가 열리기 몇 시간 전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에서 정권이 바뀐 뒤 울려나온 소리는 광기어린 ‘북조선 위협’설과 무턱대고 줴치는 ‘완전한 비핵화’ 타령뿐”이라고 맹비난했는데, 공교롭게도 공동성명에 위협과 비핵화에 대한 내용이 모두 빠진 것이다. 이는 미ㆍ일 공동성명이 북한의 무기를 “심각한 위협”으로 표현하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할 것을 재확인했다”고 한 것과 비교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이)공동성명에 반드시 들어가고 아니고는 (정해진 것이) 없다”며 “제한된 분량에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사실 공동성명이라고 해도 의견이 다른 사안은 주어를 한 쪽으로만 해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한ㆍ미 공동성명은 한 쪽이라도 원하는 내용은 모두 넣는 게 아니라, 한 쪽이라도 원치 않는 내용은 모두 빼는 식으로 작성한 것처럼 보인다. 비핵화만 빠진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빠졌고, 중국만 빠진 게 아니라 쿼드도 빠졌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서 본격적 이견 표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회의 뒤 곧바로 이어진 기자회견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이견 표출을 개의치 않는 정도가 아니라 기자회견을 빌어 할말은 다 하겠다는 식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정책 리뷰에 대해 “미래의 외교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동시에 압박을 재개하는 방안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또 “목표는 명확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미국과 동맹에 가하는 위협을 축소하고 모든 한국인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한국인은 억압적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권 유린에 의해 계속해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포함한다”고 했다. 질문에 대한 답도 아닌 모두발언에서 한 말이다.

이어서 타깃을 중국으로 옮겼다. 그는 “우리는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안정, 안보, 번영에 도전을 가하는 중국의 공격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며 “중국의 행위는 우리 동맹들 간 공동의 접근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날 협의에서 한국도 중국 압박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정의용 “관여로 北 비핵화 가능 입증돼”

정의용 장관의 발언은 결이 달랐다. 그는 “한ㆍ미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지난 3년 간 한ㆍ미는 북한에 계속 관여하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압박하며 외교의 가능성을 열어 두자는 블링컨 장관의 발언과는 방점이 달랐다. 정 장관은 중국으로 인한 도전이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용어를 두고서도 두 장관은 달랐다.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 중 세 차례나 “북한의 비핵화”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한국은 이미 핵무기를 포기했고,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면 북한도 우리와 같이 비핵화하자는 뜻”이라며 “(북한 비핵화보다)한반도의 비핵화가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미국의 핵우산 제거 및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시키곤 한다. 블링컨 장관이 최근 들어 굳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북한의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블링컨 “쿼드, 생각 같은 국가들 모임일 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쿼드 관련 "이번 협의에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같은 질문에 대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뉘앙스로 발언하며 온도차를 드러냈다. [사진 공동취재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쿼드 관련 "이번 협의에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같은 질문에 대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뉘앙스로 발언하며 온도차를 드러냈다. [사진 공동취재단]

정 장관은 쿼드 관련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번 협의에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국익에 맞는다면 어떤 협의체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하면서다. 같은 질문에 블링컨 장관은 “알다시피 쿼드는 모든 이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생각이 비슷한 국가들 간의 비공식적(informal) 모임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우리는 한국과도 굉장히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이는 한ㆍ미ㆍ일 협력 같은 역내 그룹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두 장관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회의에서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한 직접적인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미국은 한국이 굳이 쿼드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은 “미국이 대중 견제의 성격이 있는 쿼드에 대해 비공식적이고 보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주려는 측면도 있는데, 한국은 그래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셈”이라며 “한국이 일본과 달리 대중 압박에 쉽사리 참여하지 않는 것이 전략적 이익이 될지 아닐지 정부가 답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지혜ㆍ정진우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