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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나선 경찰도 "회사 어딨지?" 해프닝…블라인드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라인드에 게시된 LH 직원 추정 글. 인터넷 캡처

블라인드에 게시된 LH 직원 추정 글. 인터넷 캡처

‘직장인을 위한 대나무숲’이라고 불리던 블라인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익명으로 자기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던 디지털 커뮤니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자처한 이가 “꼬우면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라는 조롱 글을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LH가 이 직원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하면서 블라인드도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급기야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이 이 회사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경찰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팀블라인드 한국지사' 사무실을 찾지 못했다.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엉뚱한 건물을 찾아가 “팀블라인드 사무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까지 냈다. 팀블라인 한국지사는 경찰이 찾아간 위치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처럼 ‘폐쇄성’이 상징인 블라인드는 미국에 본사를 둔 IT(정보기술) 기업이다. 한국에서 회사를 만든 문성욱 대표가 2014년 본사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전체 직원은 약 100명이라고 한다. 회사의 매출이나 구체적인 재정 상황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문 대표는 지난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2018년 10월 시리즈B 투자를 포함해 총 네 번, 누적 250억원 규모 투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 외에 온라인 교육이나 채용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고 이런 부분에서 발생하는 매출과 투자금액 등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 이메일로 인증된 익명 회사원들의 공간

경찰이 17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LH) 본사에서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17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LH) 본사에서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블라인드는 2013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미국 등에 있는 기업 15만 곳의 직장인 450만명을 회원으로 모았다. 회사 사원임을 인증하는 수단은 이메일이다. 회원 가입 때 적는 회사 이메일은 재직자 확인과 중복 계정을 방지하는 데에 이용된다. 이후 복구 불가능한 데이터로 바뀐다. 이메일로 인증 과정을 거치면 이는 암호화가 되고 블라인드 계정과 이메일 사이의 연결고리는 사라지는 식이다. 이 방식을 특허 내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소속 회사만 파악된 익명의 직장인들이 '대나무숲'에서처럼 자유롭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회사 이메일만 있으면 퇴사자가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점 등을 들며 '진짜 직장인들인지 무조건적 신뢰는 어렵다'는 주장도 한다. LH 측도 문제의 직원이 회사를 음해하려는 외부인일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고발을 진행했다. 블라인드 측은 “개인 또는 회사가 블라인드 측에 퇴사자 접수를 할 경우, 블라인드가 해당 인물들을 접속 불가 처리하고 이 외에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퇴사 검증을 거친다”고 반박했다.

IT 업계에선 ‘LH 조롱글’ 수사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입자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지 않는 것이 이 회사의 존립 기반이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측은 “수사기관 요청이 오면 최대한 협조하겠지만, 글쓴이를 색출할 수 있는 데이터 자체가 내부에 없다. 서버를 압수수색 한다 해도 IP를 포함해 글쓴이를 적발할 수 있는 그 어떤 데이터도 남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N번방 사건의 경우에도 이용자 특정이 어려울 것이라 했지만, 검거에 성공했다”며 “압수수색을 통해 블라인드에서 자료를 얻지 못해도 다방면으로 수사해 작성자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최연수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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