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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영어 팝송으로 거듭난 퇴계의 시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96)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남긴 연시조 ‘도산십이곡’이 영시(英詩)로 번역되고 곡조가 붙여졌다. 서양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 팝송으로 거듭난 것이다.

도산서원에서 정기적으로 퇴계 선생이 남긴 저작을 강독하는 권갑현 박사는 최근 영역 도산십이곡의 가사와 곡을 소개했다. 도산십이곡의 영역은 첫 시도다. 권 박사는 한글 고어로 쓰인 도산십이곡과 영역 시를 1곡부터 12곡까지 하나씩 차례로 읽고 그 뜻을 새겼다. 그 중 널리 알려진 9곡은 이렇게 영역되었다.

이사미 박사가 영역한 도산십이곡과 김종성 교수가 곡을 붙인 악보.

이사미 박사가 영역한 도산십이곡과 김종성 교수가 곡을 붙인 악보.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봬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쩔꼬

Someone you never met me before.
Someone I never met me before.
Though we never met ever before,
what lies ahead is their way.
As the way lies ahead
with a favor I will follow them.

영역을 한 사람은 이사미 박사로 적혀 있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이 박사는 동시통역사로 한동안 국가 간 회담의 통역을 맡았다고 한다.

도산서원(원장 김병일)은 앞서 한글 도산십이곡에 곡조를 붙인 노래를 공식 채택해 3년째 주요 학술행사와 서원 향사 등을 시작할 때 참가자들이 함께 부르고 있다. 노래를 통한 퇴계학의 대중화를 시작한 것이다. 이 곡을 붙인 사람은 충남대 의대 김종성 교수였다. 이번 영어 노래도 작곡은 김 교수가 맡았다. 도산십이곡을 영역한 이 박사는 김 교수의 며느리라고 한다.

또 이 박사는 이후 의대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한 뒤 최근 충남대 의대 에서 같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권 박사는 “이 박사가 도산십이곡을 영역하면서 누구나 아는 쉬운 단어를 찾아내는 작업이 어려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래의 곡조까지 맞추면서 영시 구절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도산십이곡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을 것이다. 퇴계학의 세계화에 대중화까지 겸하는 발걸음을 뗀 것이다. 비교적 친숙한 도산십이곡 11곡은 또 이렇게 옮겨졌다.

도산서원 유물전시관인 옥진각에 전시된 도산십이곡 목판본. [사진 송의호]

도산서원 유물전시관인 옥진각에 전시된 도산십이곡 목판본. [사진 송의호]

청산은 어찌하야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야
주야에 긋지 아니한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하리라

Why are the blue mountains
flourishing in eternal green.
And the flowing water streams
running through day and night.
We, too, shall never cease
until the end of time.

매화가 피기 시작한 도산서원의 모습. [사진 송의호]

매화가 피기 시작한 도산서원의 모습. [사진 송의호]

퇴계학의 세계화는 그동안 미국인 교수가 직접 나선 경우도 있었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마이클 칼튼은 오래 전 『성학십도』를 영역해 퇴계학의 세계화에 큰 걸음을 뗐다. 성학십도는 퇴계학을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도 그 뜻을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선생의 대표 저작이다. 이번에 작사‧작곡된 도산십이곡의 영어 버전 노래는 적절한 가수를 정해 곧 음원으로 나올 것이라고 한다. 기대가 된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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