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정재의 시시각각

LH 탓이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1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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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에 밀턴 프리드먼을 소환한다. 대표적 우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82년 “위기만이-그것이 실제이든 인식이든 간에-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낸다(『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고 했다. LH 사태는 위기인가 아닌가. 위기라면 정권의 위기인가, 국가의 위기인가. 누가 만든 위기인가. 이것부터 따져야 진짜 변화가 가능한지 알 수 있다.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 만들어내”
과잉 공공 좌파 정부로선 힘든 일
민간에 권한 돌려주는 개혁 돼야

먼저 위기, 그것도 권력의 위기인 것은 틀림없다.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했다. 그는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했다. 25차례의 대책 실패에도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했던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위기 감지의 촉수가 발동한 결과일 것이다.

정권뿐이 아니다. 나라도 망국의 위기다. 이 정부 들어 부동산 양극화는 사상 최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커졌다. 콘크리트 지지층 3040마저 ‘공정과 가치의 붕괴’ ‘헬조선의 부활’을 말한다. 성실·의욕·희망은 딴 나라 언어가 됐다.

누구 탓인가. LH 탓만 하면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망국의 투기는 청와대 심장부, 정권 핵심에서 넓고 크게 일어났다. 청와대 대변인은 10억원을 빚내 25억원짜리 건물을 샀다. 같은 시기 대통령 딸은 양평동 집을 사고팔아 1억원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다. 영부인 친구라는 전 국회의원은 목포 땅을 차명으로 사들였다. 성추행으로 물러난 전직 부산시장의 친인척은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에 땅을 갖고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LH 직원이 “우리만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란 법이 있느냐”는 말도 안 되는 항변이 말이 되는 이유다.

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지나친 공공 개입, 빅 거번먼트(big government)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한 LH는 탄생 때부터 비효율과 과잉의 상징이었다. 132조원의 빚, 공기업 부채 부동의 1위, 제 배만 불리는 철밥통…. 그런데도 도시재생·주거복지까지 나라의 땅과 집에 관한 모든 권한을 독점했다. 일례로 토공은 무소불위 택지개발촉진법을 통해 아무 땅이나 지정·수용해 집을 지을 수 있다. 업계에선 “사유재산 박탈권”이라고 부른다. 오죽하면 작고한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 “대량토지의 약탈적 점거 방식”이라며 “진작 사라졌어야 했을 법”이라고 했을까.

그런데도 이 정부 들어 LH의 조직과 인력은 더 비대해졌다. 2009년 합병 후 약 20%를 줄여 2014년 6480명이던 인력은 현재 약 9500명으로 급증했다. 이전 정부 때보다 50%가량 늘었다. 여기에 ‘변창흠표 83만 호’를 내세워 민간 재건축·재개발 권한까지 갖게 됐다. 과잉 권한이 과잉 인력과 결합하면 불문가지. 비대해진 조직은 다른 생각,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많이 만든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사람은 가만있지 않는다. 자리가 만들어지면 뭔가 한다. 규제가 만들어지거나 부정부패가 일어난다. 자리를 만들 때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확대했던 금융감독위원회 조직을 다시 줄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해법, 진정한 변화는 가능할까. 밀턴 프리드먼을 다시 소환한다. 그는 “기존 정책의 대안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정치적으로 불가피해질 때까지 그것들을 살아 있고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며 “그것이 우파 학자들의 임무”라고 했다.

반으로 다시 쪼개자, 주택부를 만들자며 LH 개혁 아이디어가 여권에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과잉 공공, 과잉 인력 해소라는 본질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땅 개발과 공공임대, LH는 딱 두 가지 핵심 역량에만 집중하게 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겨야 한다. 개발 연대 시대와 달리 민간은 자본과 기술을 넉넉히 갖고 있다. 효율과 공정도 더 뛰어나다. 내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직자가 제 배만 불릴 일도 없다. 과잉 공공, 무늬만 공정 좌파 정부에서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파가 나서야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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