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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공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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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EYE팀 기자

장주영 EYE팀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비빔밥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90년대 쓰인 작자 미상의 음식백과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다. 비빔밥의 옛 이름인 ‘골동반(骨董飯)’과 한글 이름 ‘부뷤밥’으로 나란히 기록돼 있다. “밥에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과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는 설명은 당시의 비빔밥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비빔밥의 옛 한자 이름(골동반)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중국 명나라 때 지어진 『골동십삼설(骨董十三說)』에 따르면 분류가 되지 않는 옛날 물건들을 골동이라 불렀고, 밥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서 익힌 것을 골동반이라고 했다. 밥을 지어낸 후 갖은 재료를 넣어 비벼 먹는 한국의 비빔밥과는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음식인 셈이다. 학계에선 비빔밥을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골동반이란 중국식 표현을 차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최근 TV드라마 속 비빔밥 간접광고(PPL)가 논란이다. 중국 회사의 제품(차돌박이 돌솥비빔밥)이 한국 TV드라마에 등장하면서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한국 배우가 맛있게 먹었지만, 정작 이 제품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중국 내수용이다. 국내 업체가 제품 개발에 참여했다는 의혹이 나왔으나, 해당 업체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중국 내수용 제품을 굳이 한국 드라마에 노출한 이유는 뭘까. 이 드라마는 국내뿐 아니라 동영상서비스(OTT)를 타고 세계 곳곳에서 소비된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을 통해 수많은 나라에 제품 홍보를 노린 것이다. “중국어로 적힌 일회용 용기에 담긴 비빔밥이 자칫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중국 음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은 현재 자국 내 유통되는 김치 제품에 파오차이(泡菜)란 이름을 병기한다. 피클과 비슷한 중국 전통의 절임 채소 음식,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형이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 비빔밥도 중국 골동반의 한국식 변형이라 주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이때 드라마 속 PPL은 훌륭한 선전도구가 된다. 문화계에 차이나머니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시기. 어떤 기준으로 어느 수준까지 용인해야 할까. 중국산 비빔밥이 던진 화두다.

장주영 EYE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