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내가 그를 쐈소"… 5·18 계엄군의 첫 눈물 사죄[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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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일 기자

특정 희생자에 사죄한 최초의 게엄군

“죄송합니다.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사죄를) 망설였습니다.”

희생자 유가족 찾아 “40여 년 죄책감” 오열

1980년 5월 23일 광주시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 7공수여단 소속 한 계엄군이 쏜 총에 한 남성이 숨졌다. 총을 쏜 계엄군이 그때부터 잊지 못했다는 이름 세 글자 ‘박병현’. 41년 만에 유가족 앞에 선 계엄군은 무릎을 꿇은채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 접견실에서 5·18 당시 7공수여단 소속 계엄군 A씨와 당시 민간인 희생자 고(故) 박병현씨의 형 박종수(73)씨 등 유가족이 만난 자리였다.

이날 만남은 계엄군 A씨가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를 통해 자신이 숨지게 한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마련됐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이 특정 희생자를 숨지게 했다며 유족에게 사죄한 것은 41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6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접견실에서 5·18 당시 계엄군과 희생자 유가족이 만나 사죄했다. 사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5·18 조사위에 따르면 A씨는 41년 전 자신 때문에 사망한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해 유가족 앞에서 사죄의 뜻을 전했다.

A씨는 이날 박병현씨의 유가족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 한참을 흐느끼다가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로 입을 뗐다. 그러면서 “40여 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가해자가) 유가족 앞에 서면 또다시 상처를 줄까 봐 41년 동안 찾지 못했다”고 했다.

A씨 “41년 동안 괴롭힌 죄책감”

지난 16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접견실에서 만난 당시 계엄군과 희생자 유가족이 만난 자리에서 부둥켜 안고 울고 있다. 사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그는 조사위 앞에서 박병현씨가 숨지던 그 날을 또렷이 증언했다. A씨는 “80년 5월 23일 1개 중대 병력이 광주시 외곽을 차단할 목적으로 정찰 임무를 하던 중에 화순 쪽을 향해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을 발견했다”며 “당시 부대원들이 ‘도망가면 쏜다’라고 했지만 박병현씨 등이 겁에 질려 도주하던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했다. 박병현씨는 당시 농사일을 돕기 위해 고향인 보성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는 박씨가 계엄군에게 변변한 저항조차 못 한 채 죽어가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A씨는 “사망 현장 주변에 총기나 위협이 될만한 물건은 전혀 없었다”며 “공수대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없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치던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