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는 만두는 우리가 아는 만두가 아니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음식 평론가 겸 작가 박정배(57)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된다. 한국인 밥상에 오르는 만두는 밀가루 반죽에 각종 소를 넣은 먹거리인데, 원래 만두, 정확히 말하자면 만터우(饅頭)는 밀가루 반죽을 만든 뒤 발효라는 추가 과정을 거치기 때문. 한국인이 즐기는 만두는 음식 문화사에선 교자(餃子)로 분류된다. 일본에서 먹는 교자라고 생각하고 일본이 원조냐며 발끈할 일이 아니다. 박 작가가 한ㆍ중ㆍ일 3국을 누비며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교자’라는 이름의 뿌리는 한반도다. 수년간 발품을 팔아 쓴 『만두』에 그는 관련 내용이 푸짐하게 담아냈다.
부제가 ‘한·중·일 만두ㆍ교자 문화사’인 이 책은 시중에 넘쳐나는 가볍고 말초적인 인상비평 음식 관련 서적과는 결이 다르다. 박 작가가 각국 도서관의 먼지를 훑어내며 고(古) 문헌을 파고들고, 2018년엔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까지 찾아가며 발로 꾹꾹 눌러 쓴 책이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그렸다면 박정배는 대만두지도를 쓴 셈이다.
이번 책은 총 387쪽에 달하는 대작인데 이 중 18쪽이 참고문헌으로 빼곡하다. 박 작가의 음식 문화사 탐구는 정평이 나 있다. 중앙일보에 연재 중인 ‘시사 음식’ 시리즈도 호평이다. 중식 요리계의 대부인 왕육성 진진 사부와 목란의 이연복 사부는 박 작가와 호형호제한다. 이연복 사부는 이달 말 박 작가의 유튜브에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 박 작가가 우루무치까지 간 사연은 뭘까.
답은 실크로드에 있다. 서양에서 밀이 들어온 입구가 실크로드, 그 중에서도 우루무치 지역이었다는 게 박 작가의 설명이다. 위구르족 인권 문제 등으로 미국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와 중국 사이 갈등이 첨예한터라 취재 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그에게 불편은 감내해야 할 소중한 음식 문화사 연구 장소다. 당나라 시대의 실제 교자 실물을 본 것도 우루무치의 한 박물관에서였다. 그는 “식량이 부족했던 서양에선 밀이 환영받았지만, 쌀농사로 먹거리 걱정이 비교적 덜했던 중국에선 밀은 특별한 음식이었다”며 “제분 등 가공 과정이 까다로운 데다가 고기 등 소를 넣어 먹어야 하기 때문에 대표적 별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만두가 중국 음식 문화사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한 사건은 제갈량과 연관되어 있다고 박 작가는 강조했다. 제갈량이 남만 오랑캐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났는데 ‘49명의 사람을 죽여 그 머리를 물의 신에게 바쳐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꾀를 냈다. 머리 모양으로 만두를 빚어 제사를 올린 것. 그러자 풍랑이 가라앉았고 그는 무사히 도강했다는 이야기다. 박 작가는 “이때부터 만두가 만두(饅頭), 즉 ‘머리 두’자를 썼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지어낸 이야기”라며 “그러나 만두 문화사에서 이 이야기가 갖는 함의는 크다”고 말했다. 만두의 존재감을 확산시켜줬기 때문이다.
박 작가의 발걸음은 일본으로도 향했다. 일본식 라면, 즉 라멘 집에 가면 꼭 나오는 일본인이 사랑하는 대표적 음식인 교자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교자의 한자를 일본어 식으로 읽으면 원래 ‘교코’가 되어야 하는데, 왜 ‘교자’인지가 궁금했다. 실제로 일본어 사전을 찾으면 교자에 대해선 외래어식 표기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박 작가는 “일본인 학자들이 나름 설을 여럿 제기했지만 연구 결과, 만주 지역의 조선족, 즉 한반도인들이 ‘교자’라고 부르는 말을 받아들였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 작가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인이 사랑하는 음식 교자의 뿌리는 한국에 있는 셈이다.
그는 “만두처럼 한국과 중국ㆍ일본의 음식문화를 흥미롭게 담아낸 음식은 드물다”며 “뿌리는 같지만 저마다 다르게 발전해온 세 나라의 만두 문화를 통해 각국의 음식문화는 물론 경제교류 문화사를 탐구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