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웨이보도 손뗄 판…그 퇴장 예고한 7년전 사진 한 장

중앙글로벌머니

입력 2021.03.17 09:10

업데이트 2021.03.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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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마윈’. 지난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 뒤 중국청년망에 게재된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 기념사진. 사진설명에 이름이 열거된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리옌훙 바이두 회장이 사진에서는 잘려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서버를 둔 밍징망은 당시 이를 마윈의 몰락을 예고한 신호로 전했다. [밍징망 캡처]

‘편집된 마윈’. 지난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 뒤 중국청년망에 게재된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 기념사진. 사진설명에 이름이 열거된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리옌훙 바이두 회장이 사진에서는 잘려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서버를 둔 밍징망은 당시 이를 마윈의 몰락을 예고한 신호로 전했다. [밍징망 캡처]

“20여 명의 태자당 가족과 월스트리트 악어가 추대한 신예 ‘중국 최고 갑부’ 마윈(馬雲·57)은 왕좌에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을까?”

후후월드
밍징망 “행사 후 마윈 공백 처리한 사진 배포”
지난해 상하이 서밋 연설 후 공개 석상서 실종
전용기 항로 분석한 FT “베이징·싼야만 오가”
WSJ “재기 우려한 당국 미디어 지분 반납 요구”

지난 2014년 9월 19일 중국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상장한 직후 미국에 서버를 둔 밍징(明鏡)망이 출판한 『마윈, 태자당과 월스트리트』(2014)의 마지막 구절이다.

밍징의 예언처럼 마윈은 2019년 자신이 창업한 알리바바 이사회 주석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10월에는 앤트(螞蟻) 파이낸셜 상장에 실패했다. 이후 마윈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난 2014년 7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참석,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등 중국 기업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4년 7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참석,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등 중국 기업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마윈의 쓸쓸한 퇴장은 7년 전 서울에서 이미 예고됐다. 2014년 7월 4일 국빈 방한한 시진핑(習近平·68) 중국 국가주석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참석했다. 시진핑 주석이 인솔한 중국 경제 대표단과 한국 기업 총수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사진). 촬영을 마친 중국 측 대표단은 국가주석 비서실로부터 사진을 전달받고 놀랐다고 밍징이 보도했다. 중국 기업인 두 명이 포토샵으로 지워져서다. 중국 국무원(정부) 홍보실 격인 신문판공실이 운영하는 중국망에도 기념사진이 게재됐다. 사진 설명은 이렇게 적었다. “현지시간 2014년 7월 4일 한국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 중국 기업가와 악수했다. 시진핑 주석과 함께 이번 포럼에는 리옌훙(李彦宏) 바이두 회장, 마윈 알리바바 회장, 톈궈리(田國立) 중국은행 회장, 런정페이(任正菲) 화웨이 총재, 쓰셴민(司獻民) 남방항공 회장, 왕샤오추(王曉初) 중국전신 회장 등이 참석했다”고 설명이 붙었다. 하지만 사진에는 마윈과 리옌훙 회장의 모습은 트리밍되어 보이지 않았다. 마윈의 몰락을 예고한 장면이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한중경제통상협력포럼' 기념사진. 앞줄 오른쪽에서부터 둘째가 마원이다. [중앙포토]

2014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한중경제통상협력포럼' 기념사진. 앞줄 오른쪽에서부터 둘째가 마원이다. [중앙포토]

호텔 종업원, 외모로 탈락

마윈은 1964년 항저우(杭州)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중국의 판소리 격인 평탄(評彈) 배우였다. 부친은 폭력적 성격이었다고 한다. 늘 마윈을 구타했다. 마윈도 어린 시절 싸움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늘 처벌을 받았다. 13바늘을 꿰맨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영어를 좋아했다. 자전거로 항저우 호텔 로비를 전전하며 외국인과 회화를 연습했다. 외국인 가이드로 이름을 날렸다. 부친의 구타도 영어를 배운 동기가 됐다고 한다. “부친이 욕하면 영어로 되받았다. 알아듣지 못해서다”라고 회고했다. 영어를 제외한 성적은 낙제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두 차례 봤다. 수학은 각각 31점, 21점을 받았다. 삼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82년 가오카오(高考, 중국의 대학 입학시험)에 처음 도전해 베이징대에 응시했지만 당연히 떨어졌다. 동생과 호텔 종업원 모집에 신청했다가 생김새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지인 소개로 출판사에서 문서를 수발하는 일자리를 찾았다. 이듬해 다시 대입에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다. 스무살 세 번째로 항저우사범대 외국어과에 응시했다. 운이 좋게도 외국어과 응시자가 미달이어서 마윈은 대학생이 됐다. 그런 그는 대학 시절 호텔 로비서 배웠던 영어 실력을 발휘하며 대학 학생회장, 항저우시 학생연합회 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1992년 마윈은 첫 번째 창업에 도전했다. 영어 단어 호프(Hope)와 중국어 발음이 비슷한 하이보(海博)라는 이름의 번역회사를 차렸다.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담은 것이다. 당시 항저우에는 외국 회사가 적지 않았지만, 번역 회사는 없었던 항저우 최초의 번역 업체였다. 3년이 흘러 1995년 회사는 흑자로 전환됐다. 사업이 성공하자 마윈는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린다. 인터넷이다.
마윈과 인터넷의 만남은 1995년 그의 첫 미국 여행에서다. 그의 미국행은 우연이었다. 당시 미국의 한 투자회사가 안후이(安徽)성 동부 푸양(阜陽)시의 도로 건설에 참여했다. 정식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았던 지방 정부는 영어가 되는 마윈을 미국에 보내 계약서를 체결해 오도록 했다. 미국에 도착한 마윈은 계약을 맺을 업체가 마피아 조직임을 발견했다. 가까스로 도망친 마윈은 항저우에서 영어 가이드를 하던 시절 알게 된 미국인 지인의 사무실을 찾았다. 여기서 인터넷을 처음 목격했다. 마윈은 1995년 인터넷에 중국 정보가 거의 없음을 확인했다. 이 공백이 기회임을 육감적으로 알아챘다.

귀국하자마자 번역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개설 3시간도 안 되어 4건의 e메일 받았다. 이어 ‘차이나 옐로페이지’란 정보 분류 사이트도 개설했다. 창업 2년 만에 순익 500만 위안(8억7000만원)을 실현했다.
이를 기반으로 1999년 2월 21일 17명의 동업자와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2014년 뉴욕 나스닥 상장까지 15년 여정의 시작이다. 알리바바 창업 후 20년 뒤 은퇴를 앞둔 그는 재산 47조원(가족 포함)에 이르는 지구촌 거부에 올랐다. 그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자수성가한 IT 신화이자 ‘재신(財神)’으로 불리는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개인 전용기 운항 기록. [FT 캡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개인 전용기 운항 기록. [FT 캡처]

인생 정상에서 관을 건드렸다 

지난해 10월 22일 마윈은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 금융 서밋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적벽대전의 실패로 중국에서는 1000년 이상 대규모 전함을 만드는 발상을 하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리스크 없는 혁신을 하는 것 자체가 혁신을 말살하는 행위”라며 중국 금융 당국의 규제를 비판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11월 2일 중국 금융당국은 마윈을 포함해 앤트 그룹 경영진 징셴둥(井賢棟) 회장과 후샤오밍(胡曉明) 총재를 소환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은행관리·감독위원회, 외환관리국 4개 기관이 참석한 이 ‘면담’은 중국 식 기업 징계 방식이다.

이후 마윈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싱가포르 망명설 등 각종 소문이 분분했다. 1월 20일 ‘실종’ 88일 만에 전국 시골 학교 교사가 참여하는 행사에 마윈은 영상 메시지로 모습을 드러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다시 만납시다.” 마윈의 목소리는 생기가 없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마원의 걸프스트림 전용기는 상하이 금융 서밋 직전까지 사흘에 한 번 꼴로 중국 전역을 누볐다. 그랬던 운항 기록은 10월을 기준으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줄었다. 상하이 연설 다음날 마윈의 전용기는 베이징을 향했다. 나흘간 머물렀다. 2일 규제 당국이 마윈을 포함 경영진을 소환했을 때도 마윈의 전용기는 베이징 공항 격납고에서 2주간 있었다. 지난 1월 말 앤트가 자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할 때도 마윈의 전용기는 베이징에서 확인됐다.

베이징을 제외하고는 상하이, 항저우, 쿤밍과 하이난다오(海南島)의 휴양도시 싼야(三亞)만 오갔다. FT는 이를 놓고 마윈의 동선은 골프와 보고에 한정됐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유명한 과학저술가이자 인플루언서인 팡저우쯔(方舟子)는 트위터에 “중국의 최고 부호도 관(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자조했다.

마원 미디어 지분까지 뺏긴다

중국 IT 신화의 몰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국은 마윈의 재기의 싹까지 밟으려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중국 규제 당국이 마윈이 보유한 미디어 기업의 지분 처분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80억 달러(9조520억원) 규모다. 마윈은 중화권 최대 영어신문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지분 100%를 비롯해 중국판 트위터 격인 웨이보(微博)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또 중국판 유튜브인 유쿠(優酷), 3조원 상당의 단편 동영상 플랫폼 빌리빌리(Bilibili)의 지분 6.7%도 알리바바 소유다.

WSJ는 소식통을 인용해 알리바바가 보유한 언론사 지분을 점검한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 영향력을 확인하고 당혹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20세기 초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되레 개에게 물린다”며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打落水狗·타락수구)”를 외쳤다. 중국에서 페어플레이는 사치라고 주장하면서다. 마윈의 몰락은 루쉰의 발언이 중국에서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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