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철호 칼럼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되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1.03.1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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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한번 마음먹으면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마음을 돌리는 딱 하나의 마법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는 표현이다. 14년 전 ‘친노 폐족’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이다. 어제 문 대통령이 “LH 사태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민변·참여연대의 폭로 2주 만에, 그리고 9번째 공식 언급 만에 처음 나온 사과다. 누군가 “LH 사과 없이는 서울·부산시장 선거 힘들다”고 건의한 게 아닐까 싶다.

LH 사태, 조국 사태와 너무 달라
진보쪽 물타기·진영 대결 안 통해
양산 사저 비판과 대통령 과민반응
한국판 엘란데르 기대는 사치일까

LH 사태는 조국 사태와 비교하면 전혀 딴판이다. 예전 같으면 진보 쪽의 ‘물타기 신공’과 진영대결로 간단히 제압했을 것이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라디오에 나와 “보수 정부 때도 부동산 투기했는데 우리만 억울하게 당한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김어준 씨가 “뭔가 냄새가 난다”는 음모론으로 맞장구쳤을 것이다. 유시민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양대 컴퓨터 증거 인멸에 대해 “오히려 검찰이 장난 못 치도록 한 증거 보전”이라 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같은 논리로 “재벌 같은 민간 부동산 투기보다 차라리 공기업 LH 직원의 투기가 훨씬 낫다”고 우겼을지 모른다.

청와대와 민주당에 LH 사태는 고약하기 짝이 없다. 같은 편인 민변과 참여연대가 폭로했기 때문에 반격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2020년 신년사)” “부동산 하나는 자신 있다. 미친 전·월세도 우리 정부에는 없다(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는 문 대통령의 허풍은 역풍이 돼 돌아오고 있다.

그래서 좌파 진영의 유시민·김어준 같은 선수들부터 입을 다문 채 숨죽이고 있다. 여기에다 문파들도 코로나 19 때문인지 몸조심하는 눈치다. 이번 LH 사태에서 레임덕의 불길한 징조가 어른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몰려나와 “내가 변창흠이다”“우리가 LH다”고 외쳐댔을 게 분명하다. 지금은 오히려 정반대다. 인터넷에는 “코로나 아니었으면 주말마다 촛불 집회에다 탄핵이지. 코로나 때문에 산 줄 알아라. 아, 그래서 코로나 백신도 제대로 안 들여왔나”고 조롱하는 보수 쪽의 댓글로 넘쳐난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다음 달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분노를 달래기에 쩔쩔매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은 대통령 가슴만 뛸 뿐이다. 서울에서 공공 위주의 주택 공급 방안도 힘을 못 쓰고 있다. 안철수·오세훈 후보가 단일화하면 여당 후보가 10% 포인트 이상 뒤진다. 여권은 허경영식의 무데뽀 공약이 부러울지 모른다. 이를테면 부산에 화끈하게 ‘1+1의 신공항 2개’를 선사하고, 서울에는 ‘전 서울 시민의 LH 직원화’ 같은 파격적 공약의 유혹 말이다.

친문들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최후 방어선을 문 대통령과 양산 사저로 후퇴시켰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보수야당이 ‘봉하마을=아방궁’ 프레임을 문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운다”며 반발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이명박 사저인) 강남 1평과 시골 양산 1평이 같냐”고 반격했다. 하지만 워낙 수세에 몰려 주군을 지키기도 버거운 분위기다.

문 대통령이 양산 사저 비판에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 한 것은 과민 반응으로 보인다. 국민들 입장에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남 사저와 면적이나 가격 따위를 따지는 게 아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온 사회를 고통과 분노 속에 몰아넣고, 나 홀로 편안하게 양산 사저로 돌아가려는 느낌 자체가 불편한 것이다. 이제라도 “농지 형질 변경 등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잡겠다”는 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퇴임을 1년여 앞둔 문 대통령이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인물이 있다. 스웨덴의 타게 엘란데르 전 총리다. 다음은 이정규 스웨덴 대사가 얼마 전 SNS에 올린 내용이다.

“그는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23년간 총리를 하면서 각계각층 인물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대화와 타협을 했다. 11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권력의 절정에서 물러났다. 1969년 득표율 50%를 넘는 압승을 거두자 ‘지금은 새 인물이 필요하다’며 스스로 걸어 내려왔다. 그는 총리 관저에서 공식 집무만 보고 임대주택에 거주했다. 막상 총리에서 퇴임하자 살 집이 없었다. 이를 안 국민들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별장을 지어주었다. 55년간 해로한 부인 아이나도 검소했다. 남편이 총리였지만 고등학교 화학교사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편이 퇴임한 후 한 뭉치의 볼펜을 들고 총무 담당 장관을 찾아가 건네주었다. 볼펜에는 ‘스웨덴 정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총리 때 쓰던 볼펜인데 이제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6월 스웨덴을 국빈방문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엘란데르 이야기를 접하지 않았을 리 없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전직 대통령들이 탄핵당하고 감옥 가는 비극을 지켜보았다. 이제 우리도 한 번쯤 엘란데르처럼 멋진 뒷모습의 퇴임 대통령을 가져보고 싶다면, 지나친 사치일까.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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