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9개국 AZ백신 접종 중단…커지는 '혈전' 물음표

중앙일보

입력 2021.03.17 00:07

업데이트 2021.03.1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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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7일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중단 사태가 23개국으로 번졌다. 이들 국가는 혈전(피떡)이 혈관을 막아 사망을 야기했고, 원인이 백신일지 모른다고 걱정해 예방적 차원에서 접종을 중단하고 있다. 그동안 관망하던 독일·프랑스가 15일 중단 대열에 합류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한국은 이번에도 AZ 백신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지난달 26일 세계 105번째 지각 접종을 시작하면서 65세 이상 노인을 제외했다가 한 달 만에 없던 일로 한 데 이어 이번에 더 큰 복병을 만났다. 질병관리청은 16일 일단 “접종 중단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독일·프랑스 “예방적 차원 중단”
유럽의약청 내일 긴급회의서 결론
질병청 “현단계선 중단 검토 안해”
한국 의료계도 “계속 접종해야”

전문가들 “국내에선 큰 이상 없고
다양한 옵션 선택할 여건도 안 돼”

이코노미스트 “AZ 중단 기저엔
영국과 EU의 정치적 갈등 깔려”

외신을 종합하면 유럽연합(EU) 27개국 중 19개국이 접종을 중단했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덴마크 등 15개국은 AZ 백신 접종을 완전히 중단했다. 루마니아·오스트리아 등 4개국은 특정 시점의 동일 생산 백신(같은 로트번호)의 접종을 중지했다. EU 외 국가로는 인도네시아·베네수엘라·콩고민주공화국 등 4개국이 AZ 백신 접종 개시를 유보하거나 중단했다.

지금까지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약 2000만 명이 AZ 백신을 접종했고, 37명에게서 혈전증이 발생했다. 이 중 오스트리아·덴마크 사망자 2명은 AZ 백신과의 인과관계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관련성을 의심받고 있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은 15일 “지금까지 AZ 백신을 맞은 후 뇌혈전이 발생한 사례는 7건”이라며 “보건당국의 권고에 따라 백신 접종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말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이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현지시간으로 WHO는 16일 관련 회의를 연다. EMA는 18일 긴급회의를 열어 결론을 낸다. 이 회의 결과에 따라 국내 방침이 정해질 전망이다. WHO는 다만 “현재로선 이 사례들이 백신 접종으로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생명을 구하고 심각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백신 캠페인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질병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박영준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16일 브리핑에서 “접종 중단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장이 일자 질병청은 바로 “현 단계에서 접종 중단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유럽을 예의 주시하면서,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외 상황을 재평가하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정리했다.

“한국인 혈전증, 서양인의 20%…유럽 따라 할 필요 없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중단한 유럽 국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중단한 유럽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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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문가들은 접종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오명돈(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중앙예방접종센터장은 “유럽에서 백신과 혈전증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전에 안전제일주의 원칙에 따라 접종을 중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우리가 접종을 중단하고 (유럽에서)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온 뒤 맞히자는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원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혈전증 발생률이 유럽이나 미국의 10~20%밖에 안 된다. 유전적·인종적인 차이가 있다”며 “유럽을 보고 우리 상황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2009년 신종플루 백신이 나왔을 때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기면증(갑자기 수면에 빠지는 질병)이 발생한 적이 있다. 서양인에게 비만·고혈압·당뇨병이 더 많고 혈전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접종 중단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며 “우리는 당장 아나팔락시스 의심 사례 등의 국내 이상 반응을 규명하고 소통하는 게 발등의 불”이라고 말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의학적으로 백신이 혈전을 야기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큰 이상이 없는데, 접종 중단까지 갈 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도 “혈전과 백신의 연관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코로나19 게임체인저는 백신뿐인데, 현 상황에서 맞지 말자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16일 0시 현재 60만2150명이 1차 접종을 완료했고, 이 중 57만5289명(96%)이 AZ 백신을 맞았다. 2분기 도입이 확정된 백신의 57%가 AZ 백신이다. 이걸 빼면 2분기 1200만 명 접종 목표를 달성할 길이 없다. 11월 집단면역 목표마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EMA가 설사 AZ 백신과 혈전의 인과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도 접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원석 고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는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여건이 아니다. 접종의 이득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에 접종 중단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명돈 교수도 “백신이 혈전을 야기한 역사가 없지만 AZ 백신과 화이자 백신의 방식이 인류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어서 혹시 모른다. 그런 최악의 상황이 와도 백신을 안 맞고 코로나19에 감염돼 중환자가 되거나 사망하는 등 지난 1년처럼 혹독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백신을 맞는 쪽의 이득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이번 AZ 백신 중단 사태의 기저에는 영국과 EU의 정치적 갈등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은 “2월까지 혈전 반응 사례는 화이자 백신이 38회로 AZ 백신(30회)보다 오히려 많다”고 했다. AZ는 영국 회사다. 앞서 AZ 백신을 둘러싸고 영국과 EU는 65세 이상 노인 접종을 두고 대립했다. 또 벨기에 AZ 백신 공장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서 EU 공급 물량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15일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EU 국가들의 결정에는) 면역학적 문제보다 백신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가 더 작용했을 수 있다”며 “지난 1월 AZ 백신 공급 물량을 두고 EU는 영국, 제약사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석경민·이우림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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