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스카 남우주연 후보 스티븐 연 “정말 초현실적인 느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제작을 겸한 스티븐 연이 제이콥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판씨네마]

제작을 겸한 스티븐 연이 제이콥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의 재미교포 배우 스티븐 연(38·한국 이름 연상엽)이 제93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다. 뉴욕타임스(NYT)·버라이어티 등 현지 언론은 15일(현지시간) 후보 발표가 나자 ‘스티븐 연이 오스카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상을 받을 경우 몽골계 율 브리너(‘왕과 나’,1956), 인도계 영국인 벤 킹슬리(‘간디’,1982)에 이어 세 번째 아시아계 수상자가 된다. 아시아계 남우주연상 후보 자체도 킹슬리가 2004년 ‘모래와 안개의 집’(2003)으로 두 번째 호명된 뒤 17년 만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첫 호명 #“도전하고 돌파하는 건 멋진 일” #봉준호 “엄청난 수수께끼 인물”

후보 발표 직후 NYT와 전화통화에서 스티븐 연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정말 초현실적인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오스카가 아시아 배우들을 간과해온 것을 생각할 때 역사를 만드는 것은 어떤 느낌이냐”는 물음엔 “나는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짊어진 문화와 정체성이 무언가에 도전하고 돌파한다면 그저 멋진 일”이라고 했다.

스티븐 연은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에 가족과 캐나다로 건너간 뒤 이듬해부터 미국에서 살았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에게 제작을 겸한 ‘미나리’는 각별했다.

‘미나리’에서 스티븐 연은 한국 채소 농장을 일구기 위해 가족과 함께 바퀴 달린 외딴 트레일러 집으로 이사하는 가장 제이콥을 연기했다. 그에겐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한 계기였단다. 지난달 한국 취재진과 화상 간담회에서 그는 “저 또한 이민가정에서 자랐다”면서 “이민 1·2세대는 항상 세대 차가 있다. 아버지를 볼 때 한 명의 사람으로 못 봤다. 우리 사이 문화·언어적 차이들 때문에 개념적·추상적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는데 영화를 통해 아버지란 사람 자체를 이해하고 알게 됐다”고 했다. 지난달 LA타임스 인터뷰에선 지난해 1월 선댄스영화제 ‘미나리’ 첫 시사회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고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 소수인종을 다루는 대본은 주로 주관객인 백인의 시선으로 그 인종의 문화를 설명하는 것을 자주 봤는데 이 작품(‘미나리’)은 가족에 대한 스토리고, 한국인이 쓴 매우 한국적인 스토리였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미국 사람의 관점에서 한국 사람은 우리가 보는 한국인과 굉장히 다르다. 진실한 한국인의 모습을 전하려 영화 제작의 모든 공정에 (한국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제작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대학 시절 심리학을 전공하다 연기에 빠진 그는 오랜 무명 끝에 2010년 TV 좀비물 ‘워킹 데드’출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7년 시즌7로 하차한 뒤엔 한국 감독들과 인연을 맺었다.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에선 과격한 동물보호단체 멤버, 이어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9)에선 정체불명 남자 벤을 연기해 잇따라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2월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기사에서 스티븐 연의 오스카 가능성에 대해 “분명히 스티븐이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후보에 오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지만, 그전에 배우이자 개인으로 그를 축하하고 싶다”면서 그에 대해 “놀라운 (연기) 범위를 가진 배우. 때때로 옆집 남자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때는 엄청난 수수께끼와 비밀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미나리’는 지금껏 미국 안팎에서 트로피 91개를 휩쓸었는데, 그중 스티븐 연은 덴버영화제 최우수연기상, 노스텍사스비평가협회 남우조연상 등을 받았다. 다음 달 4일 수상결과가 발표될 미국배우조합(SAG)상에 여우조연상 부문의 윤여정과 함께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