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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의 꿈…국내 기술로 만든 한국형 발사체 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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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공장에 있는 누리호 75t급 액체우주로켓 엔진. 송봉근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공장에 있는 누리호 75t급 액체우주로켓 엔진. 송봉근 기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높이 3m, 무게 912㎏의 은빛 75t 로켓엔진 5기가 초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2개 층으로 된 철 구조물 위엔 작업자들이 또 다른 75t 엔진들을 조립하느라 분주하다. 그 뒤론, 노즐을 확장해 높이 4m에 달하는 75t 2단 로켓엔진이 잿빛 모습을 하고 서 있다. 구석 쪽엔 높이 1.9m의 7t 로켓엔진도 조립돼 있다.

한화에어로 로켓엔진 공장 공개 #10월 발사 누리호 75t 엔진 조립 #‘우주로켓=안보’ 스스로 개발해야 #갈 길 멀어…“상업성 검토 필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오는 10월 발사될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로켓엔진 생산현장을 국내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지난 10일 중앙일보 취재진이 찾은 경남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로켓엔진 공장 내부는 마치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나 항공우주국(NASA)에서나 볼 수 있는 ‘우주 풍경’이었다.

1800㎡(약 550평) 규모의 공장 내부엔 총 12기의 우주로켓이 놓여있었다. 입구 쪽 은빛 반짝이는 75t 엔진 5기는 내년 5월로 예정된 2차 발사를 위한 것으로, 오는 6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납품을 기다리고 있다.  잿빛 모습의 로켓엔진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연소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제품이다. 직경 2.2m의 노즐(연소기)은 구리와 스테인리스 특수강을 섞은 합금으로 만들어져 섭씨 3200도의 초고온을 견딘다. 노즐 위로 수㎜의 홈이 마치 치마주름처럼  패어있다. 이 사이로 로켓연료가 빨려 올라가 연소하면서 75t에 이르는 추력을 만들어낸다.

누리호 로켓엔진 규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누리호 로켓엔진 규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2010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한국형 발사체 KSLV-2’누리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액체로켓 엔진의 터보펌프, 밸브류 생산과 엔진 전체조립을 맡은 유일한 국내 기업이다. 1.5t급 실용위성을 저궤도(상공 600~800㎞)에 투입할 수 있는 발사체를 위한 것이다. 발사체 엔진은 1단에 75t급 액체엔진 4기, 2단에 75t급 1기, 3단에 7t급 1기가 탑재된다. 총 1200여 개 부품이 들어가는 이 로켓엔진 제작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외에도 국내 3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한화는 2016년 3월 1호기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75t급 엔진 30기와 7t급 엔진 11기를 공급했다.

우주로켓은 안보기술이다. 미사일 기술로 도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어떤 나라도 외국에 관련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로켓 개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두 차례 실패 끝에 2013년 1월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KSLV-1) 나로호의 경우 1단 부분은 러시아의 151t 액체로켓 엔진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누리호 제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누리호 제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문윤완 항우연 발사체엔진개발부 책임연구원은 “당시 러시아 측이 1단엔진 운영에 한국 과학기술자들을 참여시키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보안을 지키는 바람에 어떤 기술도 전수받을 수 없었다”며 “75t 엔진은 항우연이 그간 100% 자력으로 개발해온 로켓엔진 기술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여태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운영실 부장은 “그간 쌓아온 가스터빈 엔진과 항공기 엔진 부품 조립 노하우 등이 있었기 때문에 우주로켓 엔진 조립도 해낼 수 있었다”며 “처음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느라 로켓엔진 하나 조립에 7개월 이상 걸렸지만, 지금은 3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한국의 스페이스X를 꿈꾸고 있다. 지난 7일에는 그룹 내 여러 회사에 흩어져있는 우주 관련 핵심기술을 한군데 모은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8) 사장이 스페이스 허브의 팀장을 맡았다. 한화시스템의 통신, 영상장비 전문인력과 ㈜한화의 무기체계 분야별 전문인력, 지난 2월 인수를 결정한 인공위성 제작기업 쎄트렉아이 등이 한데 모인다.

한화는 최근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즉 민간 우주산업의 흐름에 올라타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글로벌 우주산업 시장은 2018년 3500억 달러(약 420조원)에서 2040년 약 1조 1000억 달러(약 122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5.3%에 달한다.

김동관 사장은 스페이스허브 발족 당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우주산업”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우주산업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게 우주 전문가의 판단이다. 최근까지 40기가 넘는 우주로켓 조립을 담당해온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정부의 관련 기술 민간이전 계획에 대해 아직도 검토를 진행 중에 있다. 우주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주로켓 조립과 기술 이전은 별개의 문제”라며 “한화도 상업성에 대한 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주로켓을 개발한다고 해도 이미 70년 전부터 서구 선진국이 개발해온 엔진기술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고, 최소한의 국내 수요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로켓 기술 이전은 자칫 기업에 독(毒)이 든 잔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우주발사체 분야는 당장의 경제성보다는 미래 기회를 선점하는 측면에서 ‘뉴 스페이스 시대’에 산업계가 담당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창원=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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