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후보 '오페라' 에릭오 감독 "코로나 우울했는데 꿈만 같아"

중앙일보

입력 2021.03.16 08:01

업데이트 2021.03.16 09:19

올해 제93회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연출작'오페라'로 한국계 최초 후보에 오른 에릭 오 감독.[사진 BANA]

올해 제93회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연출작'오페라'로 한국계 최초 후보에 오른 에릭 오 감독.[사진 BANA]

‘미나리’뿐 아니다. 15일 발표된 제93회 아카데미상 후보에 에릭 오(37‧한국이름 오수형) 감독의 ‘오페라(Opera)’도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호명됐다. 한국계론 2005년 호주교포 박세종 감독의 ‘버스데이 보이’ 이후 두 번째다. 발표 직후 화상 통화로 만난 오 감독은 “지금 여기 샌프랜시스코는 새벽 6시다.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들뜬 기색이었다.
“‘오페라’를 지난해 초 완성하고 코로나로 상영이 대부분 무산‧연기됐어요. 답답하고 우울해도 팬데믹이 영원하진 않을 거니까 희망 갖고 기다렸는데, 오스카는 정말 생각지 못한 선물이죠.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내달 열릴 美 아카데미 시상식
한국계 단편 애니 후보 '오페라'
픽사 출신…실험적 단편으로 주목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미국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 애니메이터로 7년간 일하며 ‘몬스터 대학교’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등에 참여한 그다. 2015년 픽사 재직 당시 참여한 독립 단편 ‘댐 키퍼’가 같은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직접 감독한 작품이 오스카(아카데미상 애칭)에 호명된 것은 ‘오페라’가 처음이다.

쳇바퀴 인간역사 압축한 실험적 9분

‘오페라’는 그가 2016년 가을 픽사에서 독립한 후 이듬해부터 4년간 공들인 실험적인 작품이다. 삼각형의 거대한 세계 안에 인류 역사의 낮과 밤을 9분간 재현했다. 맨 위 꼭짓점엔 왕좌가 군림하고, 24개로 나뉜 각 부분에서 계급‧문화‧종교‧이념 갈등이 되풀이된다. 삼각형의 좌우론 탄생과 죽음, 교육과 생산 현장 등이 대칭을 이룬다. 이단‧성매매‧살육 같은 그늘진 사회상도 그렸다. 그 속을 동그란 머리에 삼각형 몸의 단순화한 수십 개 캐릭터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무한 반복한다.

에릭 오 감독의 단편 '오페라' 포스터. 다음달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 부문에서 디즈니/픽사 단편 ‘토끼굴’,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아우디단편상 수상 단편 ‘지니어스 로사이’ 등과 경쟁한다. [사진 BANA]

에릭 오 감독의 단편 '오페라' 포스터. 다음달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 부문에서 디즈니/픽사 단편 ‘토끼굴’,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아우디단편상 수상 단편 ‘지니어스 로사이’ 등과 경쟁한다. [사진 BANA]

지난 9일 미국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그는 “사회와 인류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이고 한국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막 탄핵됐을 때였다”고 ‘오페라’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 부분을 묻자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 같아 그 얘긴 안 하려 했는데 하나의 예시였다. 우리 삶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던 시기였다”면서 “2017년 자연 재해, 전쟁과 폭동, 인종문제,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경험하며 인간이 나약하게 느껴지고 회의가 들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 게 아닌가 자문했고, 자연스럽게 무한 순환 형태의 작품이 연상됐다”고 했다. “이후 4년간 코로나 팬데믹, 작년 미국 사회 흑인 폭동, 파리 옐로재킷운동, 홍콩에서 일어난 일(민주화 시위)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면서다.
원래 설치 전시물로 구상한 작품이다. 고정된 화폭 속 계속 연속되는 순환 구조를 한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관람할 수 있는 형태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 왼쪽 문어가 에릭 오 감독이 빚어낸 캐릭터 행크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 왼쪽 문어가 에릭 오 감독이 빚어낸 캐릭터 행크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번 후보에 오른 단편영화는 감상법을 달리 해본 버전이다. 클로즈업 등의 편집기법과 배경음악으로 강조 효과를 주며 실험적 영상에 스토리텔링의 흡인력을 더해, 지난해 ‘2020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런던애니메이션영화제 관객상, 슬램댄스영화제 창조미래혁신상 등을 받았다. “3층 높이 벽에 작품을 영사해 그 속에 걸어들어간 듯이 압도되는 전시도 구상하고 있죠. AR(증강현실) 같은 혁신기술로도 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픽사 '도리를 찾아서' 만든 '행크 아빠'

그는 아버지 유학시절 미국에서 태어났다. 두살 때 한국에 왔고 중학교 때 교환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다시 2년간 미국에서 살다 귀국해 대학까지 한국에서 마쳤다. 2007년 미국 UCLA 대학원 애니메이션 석사 과정 중 쇠똥구리 가장의 고단한 하루를 그린 독립단편 ‘웨이 홈’(2008)이 주목받았고 졸업 후 픽사에 입사했다. ‘도리를 찾아서’의 문어 캐릭터 행크를 만들어 당시 ‘행크 아빠’란 애칭도 얻었다. 독립 후엔 픽사 출신 동료들이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톤코 하우스’와 협업하며 ‘오페라’ 등의 작품을 만들어왔다.

차기작은 미나리 닮은 한국말 제목 나무(Namoo)

에릭 오 감독이 올 1월 선댄스영화제에 선보인 새 VR 단편 '나무(Namoo)'. [사진 Baobab Studios]

에릭 오 감독이 올 1월 선댄스영화제에 선보인 새 VR 단편 '나무(Namoo)'. [사진 Baobab Studios]

차기작은 올 1월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된 자전적 VR(가상현실) 단편 ‘나무’다. 산하에 VR회사 ‘오큘러스’를 둔 페이스북의 의뢰로 새로운 VR기술에 도전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감독‧남우주연(스티븐 연)‧여우조연(윤여정)·각본‧음악상 등 6부문 후보에 지명된 ‘미나리’와 공통점이 있다. 재미교포 정이삭 감독이 어릴 적 할머니를 추억해 ‘미나리’를 만들었다면, ‘나무’는 오 감독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이란 것. 영어 제목도 ‘미나리(Minari)’처럼 한국말을 소리나는 대로 옮긴 ‘Namoo’다.
“‘나무’를 만들 땐 ‘미나리’에 대해선 몰랐죠. 저도 한국이 기반이고, 제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트리(tree‧나무)’로 할까 ‘나무’로 할까 고민했는데, 재밌는 게 페이스북의 미국사람들이 ‘나무’로 가자더군요. 저의 기원, 개인이 드러나는 얘기니까요. 창작자 입장에선 미국 사회가 그런 다양성, 진짜인 감정에 신경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어로 미나리가 뭔지 모르겠지만, (한국말 제목) ‘미나리’가 더 파워풀하다는 걸요.”

‘오페라’가 수상할 경우 아시아계론 2009년 일본 단편 ‘작은 벽돌로 쌓은 집’, 중국계 캐나다 감독의 ‘바오’ 이어 3번째.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다음달 25일(현지 시간)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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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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