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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검사와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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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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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선(3월 9일)이 1년 남짓이다. 새로이 등장한 변수는 ‘27년 평생 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가장 최근인 한국갤럽 조사(9~11일)에 따르면 차기 정치지도자로서의 선호도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동률 1위(24%)고, 이낙연 전 총리(11%)가 뒤를 이었다. 차기 대선주자들의 호감도는 이재명(46%), 윤석열(40%), 이낙연(31%) 순이다. 갤럽 조사 기준으로 사퇴 뒤 선호도가 15% 상승한 윤 전 총장의 거취가 시중의 화제가 된 국면이다.

대선 1년 전 변수로 부상 윤석열 #검찰총장 출신 첫 도전 가능성에 #능력·자질 검증의 쉽잖은 관문과 #대안 부족 야권의 기대감 엇갈려

익명을 요청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윤석열의 선호도는 현 정권 소속의 총장에서 물러나, 선을 그으면서 이젠 우리 사람이라 여긴 보수층의 기대심리가 반영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정권 인기가 갈수록 약화되고 야권의 유력 주자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혼자 정권에 반기(反旗)를 들어온 데 호응한 반사효과의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지지도가 계속 유지되기에 1년이란 정치의 시간은 너무 길다”고 관측했다.

한국 정치에선 대선 1년여 전 예외없이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김영삼 정권의 박찬종·이회창, 김대중 정부의 노무현, 노무현 후반의 고건, 이명박 시대의 안철수, 박근혜 말의 반기문 등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상의 지지도를 그대로 유지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유일하게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때 40%를 넘던 지지도가 10% 밑으로 추락하는 부침(浮沈) 끝에 정몽준과의 단일화로 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야 당시 정치 경력 14년에 5공 청문회 스타 출신이라 다크호스라 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보수 진영으로 보면 이명박·박근혜 시절 권력의 ‘질서 관리’에만 신경 써 인물을 키워놓지 못한 업보를 고스란히 안은 경우다.

법조인 출신이야 뉴스가 아니겠지만 윤 전 총장이 대선 가도에 뛰어든다면 검사들의 수장인 검찰총장 출신의 첫 도전을 목격하게 된다. ‘검사’와 ‘정치’의 업(業)은 실상 얼음과 숯불의,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적 관계일 수 있다. 정의감, 공명심을 밑천 삼아 철야로 조사실에서 짜장면 시켜 가며 인간관계와 타협을 절연한 채 ‘과거’의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뒤지는 건 검사의 본업. 반면에 소시지·어묵 만들 듯 모든 연줄, 인맥, 창조적 상상력을 끌어모아 타협과 조정으로 ‘미래’의 그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다. ‘정치 검사’란 형용모순의 단어가 모욕이 돼 온 까닭이다.

눈을 돌려 보면 일본은 35대 총리(1939년) 히라누마 기이치로가 검사총장·법무대신을 지냈을 뿐, 현 레이와 시대에까지 검사 출신 총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현 중의원(정원 465명)에도 20명의 변호사 출신 중 검사 출신은 단 2명뿐. 일본 정치 전문가들은 “도쿄지검 특수부의 1976년 다나카 전 수상 구속 이후 검찰과 정치권이 기본적인 대립 관계를 유지해 온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정치 명망가 출신으로 관료·비서·사업가·기자·시의원 등을 거쳐 일찍 정계에 진출한 다선 중심 내각제 충원 구조의 특성이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도 바이든·오바마 등 변호사 출신은 다수이지만 검사 출신은 잠깐 동안 뉴욕·아칸소주 검찰총장을 지낸 마틴 밴 뷰런(8대), 빌 클린턴(42대) 등을 빼곤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변호사로 다양한 사회현장 경력과 네트워크를 쌓고 젊은 나이부터 주·연방 하원에서 정상에의 꿈을 다져온 경우가 다수다.

한국의 경우 법조인 전체의 국회 진출은 20대 51명(17%), 현 21대 43명(14%)으로 일상화되고 있고, 검사 출신만 보면 20대 18명(6%), 21대 15명(5%) 수준. 인구 대비 법조인 비율(0.06%)에 비하면 초과 대표된 양상이기도 하다. “대화·타협으로 풀 쟁점들이 결국 극한 대치와 소송으로 치닫는 정치의 사법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와 “법 만드는 곳에 법률가의 확대란 바람직하다”는 양론이 맞서 왔다.

업 간의 속성, 안팎의 흐름으로만 보면 평생 검사 출신의 정치 대업이란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듯싶다. 무엇보다 차기 대통령에게 기대되는 시대정신이 매우 복잡다기하다. 반으로 쪼개진 나라를 부디 통합해야 한다. 미·중 갈등, 손도 못댄 북한 비핵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조정될 세계 경제를 헤쳐나갈 외교·경제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정의’와 ‘법치’만으론 쉽지 않은 과제일 수 있겠다.

4선 출신의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윤 전 총장에 대해 “사람 자체는 담백하다. 정치적 감각도 있어는 보인다. 호감도(40%)도 높지만 박근혜·문재인의 전·현직 권력 양쪽에 칼을 휘둘러 비호감도 역시 47%인 걸 눈여겨보라. 인기와 출마 선언 이후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는 “보수 정당엔 없는 그만의 브랜드인 정의·공정 이미지를 잘 관리하면 20~30대가 호응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어떤 경우의 수든 정권 교체의 지렛대 변수는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서히 대선 정국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분명한 한 가지 진실은 대선까지의 1년 동안 무슨 일이 생길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나라의 지도자 복(福)만을 기대할 따름이다.

최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