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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투기 책임이 과거 정부와 검찰에 있다는 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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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3기 신도시 투기 사태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LH 충북 지역본부 앞에서 청주청년회가 '청년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이란 피켓을 들고 땅 투기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성태 기자

3기 신도시 투기 사태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LH 충북 지역본부 앞에서 청주청년회가 '청년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이란 피켓을 들고 땅 투기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성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정부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그 책임을 마치 과거 정부에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신도시 투기 사태에 대해 “우리 정치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면서 “(부동산 적폐 청산은) 우리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투기는 오랫동안 해결못한 문제” #추미애는 검찰 탓, 박범계는 들러리 세워

문 대통령은 “정치권은 이 사안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LH 사태의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바로잡는 역할을 맡겠다는 프레임을 짠 것이다. 앞서 14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부동산 시장의 부패 사정이 제대로 되지 못한 데는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책임을 검찰에 돌렸다.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의 파장이 커지자 최근 여권에서는 이처럼 반성하고 책임지겠다는 태도는 실종되고 면피성 억지와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급기야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갑자기 투기 관련 특검 도입을 주장해 초점 흐리기라는 지적도 받았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어제 행보도 느닷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박 장관은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 대책’을 논의한다면서 전국 고검장 간담회를 소집했다. 투기에 대한 대응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적어도 이날 간담회는 형식과 의도 면에서 어색했고 충분히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였다.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아 놓고 검찰을 투기 수사에 들러리로 세우려는 의도라는 불만이 당장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 조남관(대검 차장)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건너뛰고 일선 고검장들을 소집해 군기 잡는 모습을 연출한 것도 이례적이고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박 장관이 다녀간 날 대검에 ‘부동산 투기 수사 협력단’을 설치하고, 앞으로 검사들은 경찰 주도의 LH 수사 과정에서 영장 청구 등 지원 업무를 맡는다고 한다. 이미 경찰 주도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부동산 투기 사범 특별수사단을 가동 중인데 뒤늦게 검찰을 지원 인력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일까. 과거 1, 2기 신도시 투기 사태 당시 수사 성과와 경험이 풍부한 검찰의 전면 수사가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투기 집단의 실체를 제대로 찾아낼지도 의문이다.

어떤 일이든 제대로 권한과 역할을 주고 사후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다. 권한을 빼앗고 책임만 묻는다면 누구도 수긍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검찰 개혁을 내세워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면서 투기 범죄 수사 전문가 집단인 검찰에게서 수사의 칼을 빼앗았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과 국회의원 등의 신도시 투기 책임이 검찰에 있다고 여론몰이에 열을 올리니 누가 공감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