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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기고

바이든의 다자주의와 불안한 '린치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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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미 외교·국방장관, 한·일 방문 계기 #약화된 한·미·일 공조 복원 시급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외교 안보팀은 역시 프로답다. 두 달도 채 안 된 신 행정부가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말 G7 회의와 뮌헨 안보회의에서 유럽 동맹국들에 동맹 복원과 다자주의 회복을 천명한 데 이어 지난주엔 미국·일본·호주·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 정상회의를 최초로 개최했다.
 그리고 이번 주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장관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순방지로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2+2회의’를 진행한다. 이들은 귀로에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도 할 예정이다.
 두 장관이 바쁜 와중에도 동북아까지 날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새 행정부가 역점을 두는 다자적 연대가 정작 최대의 지정학적 도전 지역이라고 규정한 인도·태평양의 동북쪽에서 가장 취약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발표된 미·일 동맹 보고서는 명쾌한 답을 준다. 미·일 동맹이 아·태 지역과 국제질서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대 노력의 핵심이고 북핵 억제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 협력이 시급한데 한·일 갈등이 큰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방한 중 미국의 대북 정책 검토 상황도 공유하겠지만, 무엇보다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최악인 한·일관계 개선을 독려할 것이다.
 바이든의 다자주의는 종래의 기능적 접근방식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중국·러시아·북한 등 지정학적 도전에 대해 동맹과 우방국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중층적 다자 연합체 구성을 통해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쿼드와 한·미·일이 함께 움직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태 안보를 미·일과 한·미 동맹이 각각 주춧돌(Cornerstone)과 핵심축(Linchpin) 역할을 하며 주도하던 구조가 이제는 쿼드가 주도하는 세력 전이가 생기고 있다. 호주 총리가 쿼드 정상회의를 역사적 순간이라고 부른 이유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지금 큰 그림을 못 보고 다양한 연합체의 진화 과정에 적시 대응하지 못하면 '지정학의 귀환' 시대에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나갈 길도 분명하다. 첫째,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변화하는 아·태 지역 안보환경에 맞춰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을 양자·지역·글로벌 차원에서 더욱 심화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한·미 관계처럼 '빛 샐 틈 없는 동맹'으로 복귀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북핵 억제 전략 검토에 맞춰 미국의 확장억제 역량을 강화하고 양자 협의 장치를 활성화하며 다자적 확장억제 장치를 새로 마련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 인사들이 건의한 '아시아 핵 기획 그룹'이 좋은 구상이다. 이미 양자 장치가 있으므로 다자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셋째, 다자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약화한 한·미·일 공조를 복원하는 것이다. 우선 한·미·일 외교와 국방 장관 회의를 조기에 개최하고 정보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정상회의까지 가야 한다. 또한 쿼드 참여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조기에 밝혀야 주변국들에 대한 지렛대도 커진다. 인도의 유연한 입장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한·미 동맹은 '가치 동맹'이므로 바이든 행정부 대외 정책의 또 한 축인 가치‧규범 외교 분야에서 능동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올해 영국과 미국이 각각 주최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쿼드와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다자주의 국제질서를 함께 모색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부담이 있다고 우리가 인도·태평양에서 핵심축 역할을 포기하면 주춧돌인 일본과 새로운 핵심축으로 떠오른 인도가 그 역할을 대체할 것이다. 한국이 ‘없어도 되는 나라’ 가 돼서는 안 된다. 지금이 꽉 막힌 한국 외교의 출구가 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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