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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조사 한다던 서울시, “투기 없었다”는 SH 발표에 잠잠

중앙일보

입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LH 충북지역본부 정문 앞에서 청주청년회가 LH 땅 투기 전수조사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LH 충북지역본부 정문 앞에서 청주청년회가 LH 땅 투기 전수조사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주택사업 부서 직원과 서울주택도시공사(SH)를 대상으로 ‘투기 점검’에 나서겠다던 서울시가 SH의 자체조사 발표 이후 아무런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 공직자 부동산 투기 논란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서울시는 개연성 없는 털기식 조사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 내부, 주택 투기 조사 필요 지적도 #전국 지자체 부동산 투기 조사 나서 #시 “검토 결과 개발지역 투기 개연성 낮아” #전문가 “이해충돌방지 대책 강화해야”

서울시는 15일 “SH에서도 현재로써는 특이사항이 없어 서울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4일 김우영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서울시 주택사업 관련 공무원과 SH에 대해 점검해보겠다”고 한 것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모양새다.

SH는 지난 4~10일 직원과 직원 가족의 토지 등 보상 여부를 조사해 그 결과를 11일 공개했다. 결론은 토지 투기 의심 직원이 없다는 것이다. SH는 2010년 이후 공사가 시행한 14개 사업지구에서 직원과 직원의 동일세대 직계존비속이 토지나 지장물(사업 지구 토지에 설치되거나 재배되고 있는 물건) 보상을 받았는지 보상 자료와 인사시스템을 대조해 조사했다.

서울 강남구 서울주택도시공사 앞. 뉴스1

서울 강남구 서울주택도시공사 앞. 뉴스1

SH는 가족이 보상금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난 직원 4명 가운데 한 명은 입사 전 보상 받아 혐의가 없다고 봤다. 2명은 2019년 허위 영농서류 제출 건으로 자체조사에서 이미 중징계(강등)를 받았으며 나머지 한 명은 입사 전부터 부친이 보상지 인근에 거주해 투기 가능성이 작아 보이지만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SH는 세대 분리된 직원 가족에 대해서도 개인정보이용 동의를 받아 같은 방식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대응에 대한 시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며 “SH의 1차 조사가 끝났고 추가로 조사한다고 하니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시장 역시 15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투기가 의심되는 지역이 있으면 토지거래를 들여다보고 시청 관계자나 그 가족이 관여했는지 알아보는 게 후속 조치일 텐데 그런 대상이 나오지 않았다”며 “위례신도시, 마곡지구, 용산정비창 같은 개발 지역은 대부분 공유지라 투기 개연성이 낮다”고 말했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재개발 사업은 과거 예정구역을 없애고 350여 곳을 해제해 사전 투기 가능성이 작고 각 사업을 검토했을 때 집중 조사대상으로 특정할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며 “내부 제보나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 수사 의뢰해 강력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내부 검토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세종시 연서면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일원에 벌집형태의 조립식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밭에는 묘목이 식재되는 등 땅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세종 스마트 국가산단은 오는 2027년까지 총사업비 1조5000억원이 들어가는 거대 국책사업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세종시 연서면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일원에 벌집형태의 조립식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밭에는 묘목이 식재되는 등 땅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세종 스마트 국가산단은 오는 2027년까지 총사업비 1조5000억원이 들어가는 거대 국책사업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하지만 전국 지자체들이 잇따라 전수조사에 나선 만큼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세종시 등이 산하 공무원과 관련 공공기관 직원 등의 투기 여부 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이날 대구·울산시도 대대적 조사 계획을 밝혔다. 울산시는 현재까지 발견된 투기 사례나 의혹이 없지만 시민 우려 해소 등을 위해 관련 부서 전·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할 방침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서울시 역시 직원이나 가족이 개발사업 지구와 그 주변 땅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지정한 마곡·태릉 등이 국공유지라 해도 주변 지역에서 투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SH 자체조사와 관련해 “조사 범위에서 담당업무 전직 직원이 제외되고 조사해도 차명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며 “14개 지구의 거래·보상 내역을 공개해 의심 사례를 찾고 공직자와 연결고리를 밝히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서울시청 로비. 뉴스1

서울 중구 서울시청 로비. 뉴스1

김 국장은 조사 내용에 주택 관련 투기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일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성장현 용산구청장의 한남뉴타운 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성 구청장 측은 “투기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며 절차에 맞게 주택을 구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SH는 나대지 개발보다 광의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분야가 크다”며 “토지 투기보다는 주택 관련 사전 정보를 이용하는 행태나 전형적 비리 사례가 잡히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미 드러난 지역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해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방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서울시 역시 이해충돌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울산=백경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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