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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천슬라 된다" 서학개미 상사병, 주가급락에 물타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 이모(40)씨는 지난 5일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주식을 주당 591달러에 매수했다. 지난 1~2월만 해도 평균 매입 단가가 793달러 정도였는데, 이날 주가가 주당 600달러 아래로 급락하자 과감하게 '물타기'(저가에 추가 매수해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것)에 들어간 것이다. 이씨는 "주가가 갑자기 많이 내려 조만간 반등할 것이란 생각에 800만원어치를 추가 매수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 테슬라 대리점에서 시승 차량이 충전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DC의 한 테슬라 대리점에서 시승 차량이 충전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여일간 3490억원 순매수

용감함일까, 무모함일까. 테슬라 주가가 최근 부진한 흐름을 보이지만, '서학 개미'(해외 주식 투자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주식을 쓸어담고 있다.

1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테슬라 순매수 결제액은 3억751만 달러(약 3490억원)였다. 지난달 19일 수치엔 테슬라가 2.44% 내려 796.22달러에 마감한 16일 거래분이 반영됐다. 주당 800달러선이 무너지며 하락하기 시작한 날이다.

테슬라 주가는 올 초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1월 25일 장중 900.40달러까지 오르면서 '천슬라'(주가 1000달러)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부터 빠르게 미끄러져 내렸다. 지난달 23일에 700달러, 이달 5일엔 600달러 선이 차례로 무너졌다. 소폭 반등해 지난 12일 693.73달러로 마감했지만, 지난 1월 26일 고점(883.09달러)과 비교하면 21.4% 급락한 수치다.

테슬라가 맥을 못 추는 것은 주가 거품 부담에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이 맞물린 여파다. 지난해 8월 역사적 저점(0.51%)을 기록했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1.6%대까지 뛰어올랐다. 시장은 테슬라 같은 성장 기업의 금융 비용(이자) 부담도 커질 것으로 해석했다.

시장 점유율 하락 우려도 한몫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점유율은 69%로, 1년 전(81%)보다 12%포인트 내렸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제너럴모터스(GM)·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화하며 테슬라 독주 체제가 끝날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곤두박질 친 테슬라 주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곤두박질 친 테슬라 주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너도나도 "저가 매수 기회"

시장의 우려에도 테슬라를 향한 서학 개미의 러브콜은 식을 기미가 없다. 주가 급락을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터넷 주식 커뮤니티에선 "천슬라는 무조건 간다" "추매 찬스다" 등의 글이 잇따랐다. 익명을 원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주가가 많이 빠지자 '돈 좀 벌어보자'며 테슬라 주주가 된 경우도 있지만, 손실을 줄이려 '물타기'에 나선 기존 투자자도 많다"고 말했다.

개미들의 투자 성적에 대한 전망은 어떨까. 일각에선 테슬라 주가가 저점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투자 전문지 배런스는 테슬라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중 37%가 '매수'(BUY)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20%)보다 크게 늘었다. 대니얼 이브스 웨드부시증권 디렉터는 "테슬라 주가가 주당 9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가 조정을 많이 받아서 크게 빠질 것 같지 않다"며 "중국 판매 증가와 유럽 공장 가동, 사이버 트럭·세미트럭 양산 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이원주 키움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미 국채 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로 배터리 원가도 오르는 국면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 점유율은 빠지는 상황이라 주가가 치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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