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넘어 깨달았다, 먹 색의 깊은 맛" 목정 방의걸 화백

중앙일보

입력 2021.03.15 12:01

업데이트 2021.03.15 19:06

방의걸,소나기 I, 69.5x64cm, 한지에 수묵담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방의걸,소나기 I, 69.5x64cm, 한지에 수묵담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방의걸, 여름날에', 207x70cm, 한지에 수묵담채. [사진 방의걸예술연구소]

방의걸, 여름날에', 207x70cm, 한지에 수묵담채. [사진 방의걸예술연구소]

깊은 숲속에 장대비가 내린다. 굵은 빗줄기가 푸른 나무들을 휘감은 가운데 우산 든 사람 하나가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하다. 세상을 하염없이 적신 물기로 공기와 흙, 나무가 하나 된 풍경이 한없이 적막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목정((木丁) 방의걸(83) 화백의 대형 수묵화 '여름날에'다.

메종 바카라 서울 특별전

서울 도산대로에 자리한 메종 바카라 서울(Maison Baccarat Seoul)에서 방의걸 특별전 '블랭크(Blank)'가 열리고 있다. 프랑스 크리스털 명품 브랜드 바카라의 제품이 진열된 1층 홀과 2층 라운지에서 방 화백의 수묵화 20점을 선보이는 독특한 시도다.

1938년 전북 고창 출신의 방의걸은 전주에 거주하며 작업에 매진해온 작가다. 홍익대 미술대에서 청전 이상범(1897~1972)과 운보 김기창(1913~2001)으로부터 한국화를 배웠다. 전주대 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한 후 40여년간 전남대 미술과 교수로 재직했다. 절필과 다시 붓 잡기를 반복하며 그림을 그려왔고, 개인전과 단체전 등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정작 미술 시장에서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않았다. 몇몇 미술계 인사들이 그를 '은둔형 예술가'라 부르는 이유다.

그런 그의 작품들이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6층에서 선보인 데 이어 일반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바카라가 '숨은 장인'과도 같은 방 화백의 특별전을 기획한 것이다.

방의걸, 갯벌, 207x70cm, 한지에 수묵담채. [사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방의걸, 갯벌, 207x70cm, 한지에 수묵담채. [사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방의걸, 우후, 207x70cm, 한지에 수묵담채.[사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방의걸, 우후, 207x70cm, 한지에 수묵담채.[사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시선을 끄는 작품 중 하나가 가로 길이 2m에 달하는 수묵담채 '갯벌'이다. 수평으로 아스라이 펼쳐진 갯벌이 부드럽게 스민 먹색으로 표현돼 있다.

멀리서 보면 뭉게뭉게 먹이 퍼진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심산유곡의 한 장면을 드러낸 산(山) 연작도 눈길을 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경기대 교수)은 "방의걸의 산 그림은 짙은 운무에 가려진 암산의 특정 부위만을 부분적으로 보여준다"면서 "이 작품에서 구상과 추상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썼다. 오로지 먹의 농담과 선의 흐름만으로 눈부신 바다의 물결을 표현한 '해맞이' 연작도 눈에 띈다. 먹의 농담과 붓의 리듬감 있는 움직임으로 물결과 햇살의 질감을 풍부하게 살린 작품들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현대성'에 주목한다. 미술평론가 정금희(전남대 교수)는 ""방의걸은 농담을 달리한 붓질을 수없이 반복하며 수묵의 미묘한 울림을 강조한다"면서 "정서와 감성으로 다가오는 이미지를 먹빛으로 다채롭게 표현한 그의 수묵담채는 오히려 현대미술의 궤도에 진입한 느낌"이라고 평했다.

최태호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큐레이터는 "구상과 추상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목정의 작품은 앞으로 한국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며 "앞으로 국내외에서 더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방의걸, 공 II, 69.5x64cm, 한지에 수묵담채. [사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방의걸, 공 II, 69.5x64cm, 한지에 수묵담채. [사진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방 화백은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저는 긴 세월 그림에 재주가 없는 것 같아 좌절하고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수없이 반복해온 사람"이라며 "나이 육십을 넘기고서야 그림을 인생의 놀이로 하겠다고 결심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육십이 넘어 깨우친 것이 또 있다. 먹 색깔의 깊은 맛이 그것"이라며 "갈수록 제가 그 맛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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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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