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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오스틴 순방 사흘전…"北 답 없다" 공개한 美,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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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지난달 중순부터 북한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이 없었다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검토가 곧 마무리에 접어들고 한ㆍ미 외교당국 간 협의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민감한 외교 사안을 선제적으로 공개한 데는 의도가 따로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로이터통신은 이날 익명의 미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중순부터 뉴욕의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등 다양한 경로로 북한에 대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전했다. 직후 해당 보도에 대한 질의에 미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답변을 제공했다. 우선 보도에 나온대로 대북 접촉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긴장 고조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앞서 미국은 지난 1년 이상 북한에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적극적인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진행 중인 대북정책검토 과정에 대해서도 "정부와 민간 전문가, 싱크탱크 인사 등의 의견을 종합하고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등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미 정부 "북한 접촉" 보도 즉각 확인하고 상세 설명 공개 #한‧미 '2+2 회담' 앞두고 대북 원칙론 강조하기 위한 포석 #북한, 한‧미 연합훈련에 아직까지 침묵...대북정책 검토 결과 기다리는 듯

통상 외교 채널로 오간 사안은 관련 보도가 나와도 정부 차원에서 사실 여부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북ㆍ미 접촉과 같은 민감한 사안일 경우 "확인해줄 수 없다"며 넘어가는 게 관례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즉각적인 사실 확인에 더해, 출범 초기부터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한편 대화를 시도하는 등 실질적 노력도 기울였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미국의 이번 입장 발표는 오는 17~18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열리는 한ㆍ미 외교ㆍ국방 당국 간 '2+2 회담'을 사흘 앞두고 나왔다. 회담의 주요 의제로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다룰 예정인 가운데, 미국 측이 '우리는 그간 최선을 다했지만 대화에 응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라는 점을 선제적으로 밝힌 것일 수 있다. 한국 측이 북ㆍ미 간 전격적인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고 제재 완화 등 미국의 대북 원칙론에 벗어나는 제안을 할 경우 이를 거절할 명분이 생긴 셈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국 측은 '우리가 이미 독자적으로 접촉해봤는데 북한은 답이 없었다'며 제재와 압박은 유지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둔다는 기존의 원칙적인 입장을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통로로는 미국 정부가 밝힌 뉴욕 주재 북한 대표부 외에도 복수의 채널이 활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한국이 미국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2018년 북ㆍ미 간 본격적인 대화가 진행되면서 판문점 채널 등 직접 소통 경로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직통 채널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접촉을 시도하는 전 과정에서 충분히 내용을 공유받았다"고 말했다.

한ㆍ미 군 장병이 연합훈련 상황을 지켜보는 모습 [미 공군]

한ㆍ미 군 장병이 연합훈련 상황을 지켜보는 모습 [미 공군]

북한은 한ㆍ미 연합훈련이 시작된지 7일째에 접어들도록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당대회에서 한ㆍ미 연합훈련을 '본질적 문제'로 지칭하며 훈련 중단을 직접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반발은 아직까지 없다. 미국 측도 북한을 굳이 더 자극하지는 않겠다는 기조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방한 기간 연합훈련을 참관하거나 비무장지대(DMZ) 등 전방 시찰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북한이 미국의 대화 시도와 연합훈련 모두에 일단 침묵하고 있는 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날 때까지 우선 기다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단 외부 문제를 후순위로 돌리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내부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자세다. 오는 19일 알래스카에서 열리는 미ㆍ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북한 문제가 주요 의제로 오를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중국 관련 변수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압박이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북한은 중국을 제껴두고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 협력체)는 12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첫 정상회의를 열고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앞서 블링컨 장관도 2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 화상연설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비핵화' 대신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했다. 앞서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한국에 대한 핵 우산 제거까지 염두에 두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왔다. 북한은 지난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조선반도 비핵화'의 선결 조건이라며 주한미군 철수와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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