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밤에도 혼자 걷고 싶다"…30대女사망 사건에 英 왕세손비도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 런던에서 귀가 중 납치·살해된 30대 여성을 추모하는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법원의 집합 금지 명령에도 수백 명이 집회를 강행하면서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수백명의 여성들이 런던 클래팜 커먼의 밴드 스탠드에 모여 납치, 살해 당한 30대 여성 사라 에버라드를 추모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에버라드가 실종 전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간인 밤 9시30분에 핸드폰 불빛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영국 수백명의 여성들이 런던 클래팜 커먼의 밴드 스탠드에 모여 납치, 살해 당한 30대 여성 사라 에버라드를 추모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에버라드가 실종 전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간인 밤 9시30분에 핸드폰 불빛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런던 클래펌 커몬의 밴드 스탠드에 수백 명이 모였다. 지난 3일 이 지역에서 도보로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가 엿새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마케팅 전문가 사라 에버라드(33)의 죽음을 기리는 집회였다.

이번 사건은 용의자가 현직 런던 경찰로 지목되면서 여성 안전 문제에 관심을 촉발했다. '의회와 외교 보호 부대' 소속 경찰로 알려진 남성 웨인 쿠전스(48)는 에버라드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여성들은 사회가 안전을 지켜주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분노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클라팜 밴드 스탠드의 추모 현장에 모인 수백 명의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클라팜 밴드 스탠드의 추모 현장에 모인 수백 명의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거리 곳곳에는 에버라드를 추모하기 위한 꽃다발 무덤이 세워졌고, 집회에는 2개월 된 딸을 안고 참석한 엄마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다양한 사람이 참석했다. 한 참가자는 '영국 여성 97%가 혼자 길을 걸을 때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보이며 일상 속 두려움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해시태그로 에버라드를 추모했다. 네티즌은 '그녀는 집으로 걷고 있었다'는 의미로 #shewaswalkinghome를, '모든 남성이 그러는 건 아니지만 모든 여성은 위험하다'는 뜻으로 #notallmanbutallwoman 해시태그를 공유하고 있다. 또 일상에서 안전에 위협을 느꼈던 경험을 공유하며 "밤에 혼자 길을 걷지 못하는 게 정상이냐", "나는 안전하게 길을 걷고 싶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들은 에버라드가 실종 당일 마지막으로 목격됐던 밤 9시30분에 맞춰 휴대폰 불빛을 밝히기도 했다.

영국 런던 경찰이 집회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은 한 여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런던 경찰이 집회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은 한 여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법원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집회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주최 측은 "코로나19에 걸리는 거나 여성으로 위험하게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집회를 강행했다. 현장에서 경찰이 해산을 위해 헬기까지 동원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은 참가자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BBC에 따르면 최소 4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 모습은 영상으로 찍혀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돼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 60대 여성은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는데, 또 폭력으로 대응할 것이냐?"고 일침을 놨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과 그의 약혼녀 캐리 시몬즈가 13일(밤) 총리 관저 대문 앞에 촛불을 켜 사라 에버라드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AP=연합뉴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과 그의 약혼녀 캐리 시몬즈가 13일(밤) 총리 관저 대문 앞에 촛불을 켜 사라 에버라드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AP=연합뉴스]

한편 사회 지도층도 이번 사건에 관심을 보여 여성의 안전 문제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가 꽃무덤에 꽃을 놓고 돌아서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혀 관심을 끌었다. 영국 왕실은 미들턴 왕세손비가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추모에 동참하길 바랐다고 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약혼녀 캐리 시몬드와 함께 에버라드를 추모하는 촛불을 밝혔다. 존슨은 이번 사건 관련 트윗을 공유하며 "나는 거리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행정수반인니콜라 스터전, 웨일스 자치정부 제1부 장관인 마크 드레이크포드 오후 9시30분 자택 대문 앞 전등을 켜놓은 사진을 올렸다.

관련기사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