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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민낯, 동지도 등돌렸다…'방역영웅' 쿠오모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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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주지사 집무실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성희롱 논란에 휩싸인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64)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면서입니다.

[후후월드]

비서와 보좌진을 시작으로 그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이는 7명으로 늘었습니다. 정치적 동지들 역시 하나둘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민주당 소속 뉴욕 주 의원 59명이 쿠오모 주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10일(현지시간) 뉴욕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집무실 밖에서 시위대가 교통을 차단하고 시위하고 있다. 시위대는 성 추행 의혹을 받는 쿠오모 주지사의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 [AP=뉴시스]

10일(현지시간) 뉴욕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집무실 밖에서 시위대가 교통을 차단하고 시위하고 있다. 시위대는 성 추행 의혹을 받는 쿠오모 주지사의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 [AP=뉴시스]

쿠오모 주지사는 혐의를 부인하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것"이라며 "알지도 못하면서 결론부터 내리는 정치인들은 무모하고 위험하다"고 반격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되돌리기 어려워지는 형국입니다. 12일에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까지 쿠오모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사실상 정치 생명이 다한 것입니다.

'코로나 방역 영웅'의 추락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오른쪽)가 지난해 3월 동생인 앵커 크리스 쿠오모가 진행하는 CNN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족 이야기로 설전을 벌였다. [사진 CNN 화면캡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오른쪽)가 지난해 3월 동생인 앵커 크리스 쿠오모가 진행하는 CNN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족 이야기로 설전을 벌였다. [사진 CNN 화면캡처]

형 : 저는 ‘통금(curfew·통행금지 또는 귀가시간)’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통금 시간을 정해줬는데, 그때 분개했던 게 아직도 생각나네요.

동생 : 그런데 그건 당신의 문제 중 가장 작은 문제가 아니었나요? 그냥 그렇다고요.

동생 : 주지사님, 뉴욕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니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어머니에게 전화 한번 할 시간은 있을 텐데요.

형 : 인터뷰 전에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고 두 번째가 앵커분이라고 하더군요. 두 번째로 좋아하는 아들, 크리스토퍼.

동생 : 정치인의 말은 역시 위험하네요.

'코로나 방역 영웅'으로 대권 후보로까지 부상했던 1년 전만 해도 그의 이런 추락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는 CNN 유명 앵커인 친동생 크리스토퍼 쿠오모와의 이른바 '형제쇼'였습니다. 생방송에서 사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은 평소라면 방송사고로 취급됐을 겁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잘 아는 많은 미국인은 즐거워했습니다. 당시 영상도 200만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죠. 미국 내 쿠오모 가문의 인지도, 그리고 대중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어 3선 주지사… ‘뉴욕 왕조’ 명성

(왼쪽부터)앤드루 쿠오모 현 뉴욕주지사,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 동생 크리스토퍼 쿠오모 CNN 앵커[AP=연합뉴스]

(왼쪽부터)앤드루 쿠오모 현 뉴욕주지사,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 동생 크리스토퍼 쿠오모 CNN 앵커[AP=연합뉴스]

쿠오모 가문은 케네디‧부시 가문에 비견되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정치 명문가입니다.

천대받던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을 우뚝 일으켜 세운 건 그의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입니다. 그는 1983~1994년 3선의 뉴욕 주지사를 거친 뒤 민주당 대권 후보로 거론됐던 정치계 거물이었습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민주당세가 강한 뉴욕에서 지지를 얻었습니다. 1984년 레이건 전 대통령이 미국을 성경에 나오는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에 빗대자 쿠오모는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그보다는 '두 도시 이야기'에 가깝다"며 반박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들어 경제 지표 뒤에 가려진 가난한 미국인의 처지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죠.

이후 그는 두 차례나 민주당 대선 주자로 출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결국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선 도전을 두고 출마를 할까 말까 고민만 한다고 해서 ‘허드슨 강가의 햄릿’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이후 1994년 4번째 주지사 선거에서 패한 뒤 은퇴했습니다.

크리스토퍼 쿠오모가 자신의 SNS에 올린 가족사진. [크리스토퍼 쿠오모 페이스북 캡처]

크리스토퍼 쿠오모가 자신의 SNS에 올린 가족사진. [크리스토퍼 쿠오모 페이스북 캡처]

레이건 공격한 아버지, 트럼프와 대립한 아들

이런 아버지를 이어 아들 앤드루 쿠오모는 2011년 뉴욕 주지사에 선출됩니다. 2014년 재선에 이어 2018년 역시 3선 주지사에 오릅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공화당 현직 대통령과 날카롭게 대립하며 '대권 잠룡'으로 떠오릅니다.

지난해 기자회견 도중 쿠오모 주지사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해 기자회견 도중 쿠오모 주지사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오늘 연방정부로부터 400개의 인공호흡기를 지원받았습니다. 나는 3만개가 필요한데 400개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연방정부) 당신이 죽을 사람을 골라보세요.”

대표적인 사례가 방역 물자 보급에 소극적인 연방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와줬더니 불평이나 하고 있다”며 반박했지만 여론은 그를 지지했죠.

당시 매일 진행된 쿠오모의 ‘코로나19 브리핑’은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노변담화’에 비견됐습니다. 코로나 사태 초반 현황과 대응조치를 투명하게 알리며 위기 극복의 희망을 전파했습니다.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와 대조됐죠.

뉴욕주에서 미국 내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와중에서도 쿠오모는 “내 책임이다. 나를 욕하라”며 책임을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선 ‘대통령 쿠오모’(PresidentCuomo)라는 해시태그가 퍼졌습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로이터=연합뉴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로이터=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그는 가문의 유명세도 적절히 활용했습니다.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택 방문을 제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은 그의 어머니 이름을 딴 ‘마틸다 법’으로 불렸습니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확산하던 시점에는 아버지 쿠오모의 '두 도시 이야기' 연설을 언급하며 지지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런 행보가 트럼프 대통령 측에겐 뼈 아팠을 겁니다. 지난해 대선 막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곳곳에서 차량 통행을 막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뉴욕 허드슨강의 마리오 쿠오모 브리지(옛 태판지 브리지)도 그중 한 곳이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의 아버지 이름 딴 다리였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번번이 대립하던 쿠오모 주지사를 향한 항의의 뜻이 담긴 것이었죠.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마리오 쿠오모 다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차량 시위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마리오 쿠오모 다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차량 시위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108년 만에 탄핵당하는 뉴욕주지사 나올까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성희롱 사건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용인해서도 안 된다″며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에 대한 조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성희롱 사건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용인해서도 안 된다″며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에 대한 조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AP=뉴시스]

하지만 최근에는 쿠오모의 '방역 영웅' 타이틀마저 의심받고 있습니다.

쿠오모 주자시 측의 요구로 뉴욕주 보건당국이 요양원 사망자 숫자를 대폭 축소해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입니다. 뉴욕타임스(NYT)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주지사 측근들이 사망자 숫자를 고치도록 요구했고 보건당국자들은 해고 위협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쿠오모가 생방송 브리핑을 통해 전국적 스타로 떠오르자 피해 상황을 가급적 줄이고 싶은 유혹에 빠졌을 것이란 게 NYT의 관측입니다.

잇따른 성희롱 의혹에 어설픈 해명으로 일관한 것도 '날개 없는 추락'을 부추겼습니다. 특히 "(여성 얼굴에 키스하는 게) 아버지의 인사 방식이었다"고 한 대목에선 "급하다고 고인까지 욕보이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쿠오모의 사퇴 거부에 뉴욕주 의회는 탄핵조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간 뉴욕주지사가 탄핵당한 사례는 108년 전인 1913년 선거자금 횡령 혐의를 받은 윌리엄 설저가 유일했습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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