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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6시 이후 통금하자"···30대女 납치 사망사건에 英 발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 사회가 여성 안전 문제로 들끓고 있다. 지난 3일 런던에서 30대 여성이 납치·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BBC 등은 영국의 마케팅 전문가 사라 에버라드(33) 실종 사건에 영미권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경찰이 잉글랜드 켄트주의 그레이트차트 골프&레저 컨트리 클럽에서 사라 에버러드(33) 납치살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경찰이 잉글랜드 켄트주의 그레이트차트 골프&레저 컨트리 클럽에서 사라 에버러드(33) 납치살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버라드는 지난 3일 밤 런던 남부 클래펌의 친구 집에 들렀다가 도보로 귀가하던 중 사라졌다. 당일 밤 9시 30분쯤 툴슬힐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목격된 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지난 10일 마지막 목격 장소에서 80㎞ 떨어진 동부 켄트주 인근 숲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번 사건 용의자로 런던 경찰관 웨인 쿠전스(48)를 체포했다. 당초 경찰은 쿠전스를 납치 혐의로 체포했다가 살인 혐의까지 추가해 기소했다.

쿠전스는 정부청사·의회·외교 관련 건물 경비를 맡는 '의회와 외교 보호 부대' 소속 경찰로 확인됐다. 그는 이번 사건과 별개로 지난달 28일 외설 노출 혐의로 체포됐었다고 런던 경찰은 전했다.

영국 런던에서 한 여성이 귀가 중 실종된 뒤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 사라 에버라드(33)를 추모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한 여성이 귀가 중 실종된 뒤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 사라 에버라드(33)를 추모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영미권에서 여성의 안전 문제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들은 일상에서 안전에 위협을 느꼈던 경험담을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며 에버라드를 추모했다.

한 여성은 인스타그램 글에서 "여성이라면 누구나 집에 안전하게 도착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가족·친구들에게 알리는 게 습관"이라며 "이것은 가볍게 넘길 일상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공공장소에서 혼자 있을 때 주변에 누가 없는지 두리번거린 적은 없는가? ▶근처에 수상한 남자가 있을 때 전화 받는 척을 한 적은 없는가? ▶차 열쇠·호신용품을 항시 손에 들고 있지는 않은가? 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에버러드가 애당초 밤늦게 귀가한 게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와 여성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일부 경찰들은 여성들에게 밤에 혼자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이에 여성들은 "밤에 혼자 길을 걷는 것조차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정상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12일 영국 녹색당 제니 존스 의원이 상원 토론회에서 ″런던 거리에서 남성들의 통금을 6시로 제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지난 12일 영국 녹색당 제니 존스 의원이 상원 토론회에서 ″런던 거리에서 남성들의 통금을 6시로 제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에버러드가 실종된 마을에 살았다는 그레이스 제스업(31)은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 행동을 바꾸는 법을 배웠다"면서 "여성들에게는 교복을 입고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성희롱의 표적이 되는 게 일상"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건 14살 때부터 경험하고 있는 여성의 현실"이라면서 "이제 많은 여성이 이런 현실에 '질릴 만큼 질렸다'고 터놓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거센 반발 속에 녹색당 제니 존스 의원은 남성의 통금시간을 오후 6시로 제한하자고 했다가 논란에 휘말렸다. 존스 의원은 상원 토론회에서 "런던 거리에서 남성들을 대상으로 오후 6시 통금을 시행해 여성을 더 안전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존스는 "심야에 여성들의 단독 외출을 자제하라는 주장에 맞대응한 것"이라며 "에버러드처럼 여성이 도시 거리에서 납치된 것은 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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