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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만에 금붕어 죽어 발칵···낙동강 페놀 오염사고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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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주부 30여명이 1991년 8월 12일 낮 서울 을지로 두산그룹 본사 앞에서 두산전자 페놀방류로 인한 유산 등 피해를 보상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대구지역 주부 30여명이 1991년 8월 12일 낮 서울 을지로 두산그룹 본사 앞에서 두산전자 페놀방류로 인한 유산 등 피해를 보상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그날 3월 17일은 일요일이었지요. 당직이라 아침 일찍 출근했더니 시민들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항의 전화였지요.”

[한국 최악 페놀 오염사고 30년] #3인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페놀 사고 #1991년 3월 14일 구미 두산전자에서 #회로기판 원료 30톤 유출로 시작돼 #영남 주민들 악취와 복통·설사 고통 #누출 재발 환경처 장·차관 동시 경질 #페놀 환경운동 2명 장관 임명되기도 #낙동강 수질은 아직도 '개선 중'

1991년 3월 KBS 대구총국 기자였던 류희림 (재)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은 30년 전인 그 사건을 이렇게 꺼냈다.
류 기자는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로 달려갔고, 수돗물에서 페놀이 검출됐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날 낮 방송부터 '페놀 오염' 보도가 시작됐고, 그날 밤 KBS 메인 뉴스에서도 페놀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30년 전 영남지방을 뒤흔들었던 1991년 3월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는 이렇게 시작됐다.
환경처 장·차관이 동시에 잘리고, 시민들과 함께 피해 보상과 책임 규명 운동에 뛰어들었던 두 사람을 나중에 환경부 장관까지 되게 만든 바로 그 사건이다.

최근의 핫 이슈인 'LH 토지 투기 사건'과 '가덕도 신공항 추진' 두 가지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엄청난 사건이었다.

류희림 기자의 '페놀' 특종

류희림 (재)문화엑스포 사무총장. KBS 대구총국 기자였던 1991년 3월 페놀 오염사고를 특종 보도했다.

류희림 (재)문화엑스포 사무총장. KBS 대구총국 기자였던 1991년 3월 페놀 오염사고를 특종 보도했다.

류 사무총장은 “당시 흔했던 수돗물 악취사고 중 하나로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사고가 ‘페놀 검출’이란 사실 때문에 크게 부각됐다”고 말했다.
그의 보도는 '한국 100대 특종'에도 뽑혔다.

시민 항의와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검찰과 대구환경청에서는 페놀이 어디서 나왔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며칠 후 구미시 두산전자에서 유출된 페놀이 원인이란 걸 밝혀냈다.

사건 초기 두산전자에서 방류한 폐수 탓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전자회로 기판에 사용되는 원료인 페놀 원액 30톤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원료 이송 파이프의 이음새 파열로 3월 14일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8시간 동안 유출돼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을 오염시킨 탓이었다.

물론 페놀 사건 직전 5개월 동안에도 페놀이 함유된 폐수 325톤을 무단 방류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페놀 사고의 직접 원인은 원료 누출이었다.

페놀로 오염된 낙동강 물은 하류로 흘러내려 와 16일 대구시 수돗물의 70%를 공급하던 다사 수원지에 유입됐고, 수돗물로 만들어져 대구시에 공급됐다.

당시 전문지식이 부족했던 정수장 직원들은 주민 민원이 빗발치자 악취를 막기 위해 염소 소독을 강화했다.
하지만, 염소 소독제 성분이 물속 페놀과 반응, 클로로페놀이 되면서 악취가 수백 수천 배 심해졌다.

페놀 오염사고를 보도한 당시 중앙일보 지면

페놀 오염사고를 보도한 당시 중앙일보 지면

페놀은 낙동강을 따라 하류로 흘러갔고, 부산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던 영남지역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주민들은 구토·설사·복통 등을 호소했고, 수돗물로 만든 두부·김치·콩나물 등은 악취 때문에 폐기 처분됐다.

결국 3월 26일 두산전자에는 조업정지 30일의 처분이 내려졌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995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페놀 불법 방류를 소재로 했으나 1991년 페놀 오염사고와는 내용이 크게 다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해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995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페놀 불법 방류를 소재로 했으나 1991년 페놀 오염사고와는 내용이 크게 다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류 사무총장은 "지난해 페놀 유출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이 개봉돼 관람했지만, ‘페놀’이란 것만 빼고 나면 실제와는 완전히 달랐다"며 "당시에는 불법 방류에 대한 제보를 기자가 '엿 바꿔 먹은'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예용 활동가의 금붕어 실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공해추방운동연합 사무차장으로 일하던 1991년 3월 페놀 오염를 접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공해추방운동연합 사무차장으로 일하던 1991년 3월 페놀 오염를 접했다.

전대미문의 환경오염 사건이 벌어지면서 환경단체들도 뛰어들었다.
국내 환경 운동의 대명사인 최열 씨가 이끌던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구 현장을 찾았다.

당시 공추련 사무차장이었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박사)은 "당시 언론에서도 페놀 오염사고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고, 공추련 사무실에는 새로운 내용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페놀의 독성을 쉽게 알려주기 위해 금붕어가 담긴 수조에 페놀을 타는 실험(3월 21일)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당시 환경처가 정한 페놀 배출 허용기준치인 5ppm 페놀에 금붕어 두 마리를 넣었는데, 실험 3시간 40분 만에 금붕어가 죽었다는 내용이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지금으로 보면 엉성하고, 농도도 높아 비과학적이기까지 한 실험이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독성실험을 맡아줄 곳도 별로 없었다.
30년 사이 환경보건 전문가로 성장한 최 소장은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40시간 동안 유출 사실을 은폐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환경단체들은 3월 29일 두산전자가 속한 두산그룹의 일원이었던 오비(OB)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다.
길거리에서 둘러서서 병에 든 맥주를 통에 붓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수도물 페놀 오염 시민단체 대책협의회에서 1991년 3월 OB맥주를 쏟고 있다. 중앙포토

수도물 페놀 오염 시민단체 대책협의회에서 1991년 3월 OB맥주를 쏟고 있다. 중앙포토

두산전자에서는 인쇄 회로기판 수급 차질을 이유로 한 달 조업정지를 다 채우지도 않고 조업 재개를 요청했다.

4월 10일 조업을 재개했지만, 두산전자는 4월 22일 페놀 원료 2톤이 다시 누출했고, 대구 수돗물 취수도 일시 중단됐다.

분쟁 조정에 나섰던 환경처 심재곤 과장

심재곤 (사)환경.인 포럼 회장. 1991년 당시 환경처의 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페놀 오염사고 분쟁조정 실무를 맡았다.

심재곤 (사)환경.인 포럼 회장. 1991년 당시 환경처의 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페놀 오염사고 분쟁조정 실무를 맡았다.

불똥은 당시 환경처로 튀었다.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결국 4월 25일 장관과 차관이 한꺼번에 경질되는 사태를 맞았다.
1990년 12월 환경청에서 승격했던 환경처는 출범 4개월 만에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여러 대책도 쏟아졌다.
환경처를 환경부로 승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고, 수질은 환경처, 수량(수자원)은 건설부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물 관리 업무 일원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고 당시 환경처에서 정책조정과장을 맡고 있던 심재곤 (사)환경·인포럼 회장은 "페놀 오염 사고 때문에 환경처는 당시 큰 수난을 겪었다"며 "페놀 사고를 계기로 건설부가 갖고 있던 상수도보호 구역 지정 권한을 환경처가 갖게 됐다"고 말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4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권이혁 환경처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페놀 오염 사고 후 문책 인사로 환경처 장차관을 동시에 경질했다. 중앙포토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4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권이혁 환경처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페놀 오염 사고 후 문책 인사로 환경처 장차관을 동시에 경질했다. 중앙포토

그는 새로 생긴 환경부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대구지역 주민 800여 명이 참여한 페놀 오염 사고에 대한 배상 신청 사건을 진행하는 실무를 맡았다.

환경분쟁조정위에서 다룬 사실상 첫 사건이 페놀 오염 사고였다.

심 회장은 "당시 페놀에 오염된 수돗물을 마신 일부 임신부는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중절 수술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은 배상을 받지 못했다"며 "1인당 20만원 정도의 정신적 피해만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경북대 보건대학원에 의뢰해 사고를 전후한 유산율, 사산율, 기형아 출산율, 신생아 사망률 등을 조사했지만 특이한 점이 발견되지 않아 피해가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두산전자는 조업 정지를 포함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두산전자는 환경분쟁조정을 통해 1986명에게 총 3억 5200만원을, 분쟁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민사 소송을 제기한 임산부 16명에게는 1억2000만원을 배상했다.

1992년 5월 12일 대구시 페놀피해임산부모임 대표자 15명이 환경처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1992년 5월 12일 대구시 페놀피해임산부모임 대표자 15명이 환경처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두산전자는 또, 상수도 요금 감면에 따른 피해와 내버린 수돗물 값, 수도권 등의 청소비 명목으로 대구시에 13억5190만원을 배상했다.

시민 1만1000여 명에게도 11억 원을 직접 배상했다.

오비맥주 불매운동 때문에 업계 1위였던 오비맥주는 이후 ‘청정 암반수’를 내세운 하이트맥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 소장은 “페놀 사고는 환경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기업들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을 직접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환경부·환경단체 비약적 성장 계기 

대전 하수처리장. 중앙포토

대전 하수처리장. 중앙포토

페놀 오염사고와 더불어 1992년 브라질 리우 환경정상회의를 계기로 환경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졌다.
신문에서도 환경 캠페인이 시작됐고, 언론의 환경 관련 보도가 크게 늘었다.

국내 최대의 환경단체이자 전국 규모인 환경운동연합이 출범한 것도 1993년이다.
여러 환경단체가 규모를 키웠다. 환경 운동의 대중화가 본격화한 것이다.

최 소장은 “현장에 가면 답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피해자들과 접촉을 늘렸고, 시민 환경단체와 피해자,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는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1994년 1월 낙동강에서 다시 벤젠·톨루엔이 다량 검출되는 '2차 낙동강 오염 사고'가 발생했다.

시민들 비난이 쏟아지자 당시 정부는 지방상수도 업무를 건설부에서 환경처로 이관하는 등 맑은 물 공급 대책을 내놓았다.
정수장과 수돗물 생산 관리, 하수도 업무를 환경처가 맡게 된 것이다.

세종청사 환경부 건물. [환경부]

세종청사 환경부 건물. [환경부]

심 회장은 “1995년 초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됐는데, ‘환경 사고가 터질수록 환경부는 더 커진다’는 얘기가 나돌았다”며 “저도 수질보전국장에 임명돼 상하수도 등에 15조 원을 투자하는 ‘환경개선 중기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데 참여했다”고 말했다.

당시로써는 15조원은 절대로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때부터 환경 분야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당시 30%가 채 안 됐던 하수도 보급률도 이제는 90%를 웃돌고 있다.

고도정수처리 시스템을 갖춘 정수장도 이제는 시설용량 기준으로 40%를 넘어섰다.

환경부는 1996~2005년까지 수질 개선을 위해 27조원이, 2006~2015년 33조원의 예산을 수질 개선과 상하수도 분야에 투자했다.
2016년 이후에도 연간 3조~4조원의 예산이 수질 개선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

직접 수질오염 사고 방지에 필요한 완충 저류시설도 낙동강 수계 19곳(대구·경북 16곳, 경남 3곳)에 들어섰다.

공장 폐수를 곧바로 공공수역으로 배출하지 않고 일정 시간 저장해 문제가 없을 때만 내보내는 시설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장이나 공단에 설치하게 돼 있고, 전국 145곳이 설치 대상이지만 현재 낙동강을 포함해 현재 전국 21곳만 설치돼 있다.

30년 전에 시작된 물 관리 업무 일원화는 오랫동안 지지부진했으나, 2018년 하천관리 업무만 남기고 수자원 등 업무가 환경부로 이관됐다.

지난해 유례없는 긴 장마와 홍수를 겪으면서 국토교통부가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하천관리 기능도 환경부로 이관됐다.
이제 농업용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물 관리 업무가 환경부로 통합됐다.

심 회장은 “90년대에는 환경부 공무원들이 도전적으로 일을 진행했고, 당장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시민·언론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주요 상수원 수질이나 대기오염도를 매달 보도자료로 내기도 하고, 대기오염 전광판을 거리에 세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심 회장은 1995년 1월 전국 동시에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할 때 환경부에서 실무 책임자인 폐기물정책과장을 맡아 뚝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환경부 주요 직책을 두루 맡은 뒤 기획관리실장을 끝으로 환경부를 떠났다.

환경운동가 출신 이재용·김은경 장관 지내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이재용 씨는 1980년대부터 대구에서 환경운동을 주도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이재용 씨는 1980년대부터 대구에서 환경운동을 주도했다. 중앙포토

페놀 오염사고 당시 대구지역에서 환경 운동을 주도했던 두 사람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2006년 환경부 장관을 지낸 이재용 씨는 대구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했고, 1980년대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대구공해추방 운동협의회 준비 모임을 주도하다 페놀 오염사고를 맞았고, 대구시 수돗물 사태 시민단체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지역이었지만 페놀 선거 등의 분위를 타고 이재용 전 장관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 남구청장에 당선됐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뒤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2018년 11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김 장관은 1991년 페놀 오염 사고 당시 대구에서 거주했고, 페놀 오염사고를 계기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뉴시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2018년 11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김 장관은 1991년 페놀 오염 사고 당시 대구에서 거주했고, 페놀 오염사고를 계기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뉴시스]

문재인 정부 첫 환경부 장관을 지낸 김은경 씨가 페놀 오염사고를 맞은 것은 외환은행을 다니다 결혼 후 시댁이 있는 대구에서 전업주부로 생활할 때였다.
당시 젖먹이 아들을 키우고 있던 김 전 장관은 오염된 수돗물에 노출됐고, 피해자가 됐다.

당시 대구 등 영남 지역 주민들은 환경처에 환경분쟁조정 신청을 하는 등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한 활동을 벌였는데, 김 전 장관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페놀 아줌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서울로 이사한 뒤 노원구 상계동을 중심으로 벌어진 소각장 반대 주민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활동 덕분에 95년 노원구 의원, 98년 서울시 의원에 당선됐다.

김 전 장관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캠프에서 환경특보로 일했고,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환경전문위원, 청와대 지속가능발전비서관 등을 맡아 참여정부 내내 함께했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김 전 장관은 국립공원인 흑산도에 공항을 설치하는 데 반대했다가 정권에 미운 털이 박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현재 수감 중이다.

낙동강 수질 문제 여전히 진행형 

구지 오토캠핑장 인근 낙동강에서 관찰된 녹조. 중앙포토

구지 오토캠핑장 인근 낙동강에서 관찰된 녹조. 중앙포토

하지만 30년 전 낙동강 페놀 사고로 드러났던 과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1994년에 시작됐지만 2011년에야 표면에 떠오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2012년에 발생했던 구미 불산 사고처럼 언제 어디서 페놀 오염사고 같은 게 벌어질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당장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성산 시영아파트 온수에서 페놀이 검출되기도 했다.

인천에서는 2019년 가정 수도꼭지에서 붉은 수돗물이 흘러나왔고, 지난해에는 역시 인천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나오기도 했다.
환경 시설은 크게 확충됐지만, 베이비붐이 끝나면서 시설을 꼼꼼하게 관리할 경험 많은 인력이 떠나 언제든지 수돗물 오염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여름 인천 서구 일대 수돗물에서 발견된 유충. 연합뉴스

지난해 여름 인천 서구 일대 수돗물에서 발견된 유충. 연합뉴스

낙동강 자체의 수질 문제도 남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전국 4대강에 16개 보를 설치했는데, 그중 8개가 낙동강에 설치돼 있다.

보로 인해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서 여름철에는 녹조 발생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녹조 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로 인해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어, 정수처리에도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할 상황이다.

낙동강 상류 내청천에 설치된 영주댐의 녹조. [내성천 보존회]

낙동강 상류 내청천에 설치된 영주댐의 녹조. [내성천 보존회]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토양오염으로 낙동강 상류를 오염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토양오염으로 낙동강 상류를 오염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낙동강 상류 내성천에 위치한 영주댐이나, 봉화군의 영풍 석포제련소 주변에 쌓인 중금속 등 오염물질도 낙동강 수질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1, 4-다이옥산 검출 등 상류 도시와 공단으로 인한 상수원 수질 악화 탓에 대구시나 부산시가 낙동강 취수원을 상류로 이전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도 빚어진다.

페놀 사고 이후 강화되던 환경 규제도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대폭 완화됐다.
각 기업이 의무 고용했던 환경 관리 인력의 자격을 완화하고, 인원도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했고, 환경부의 화학물질 규제와 관련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질타하는 사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 활동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석포제련소는 물론 여수·울산 등의 대기업조차 굴뚝의 원격 오염 측정 장치(TMS)의 수치를 조작하다 적발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도왔던 환경부 관료들은 이제 1990년대 페놀 오염 사고 때 보였던 투철한 사명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환경부 주변에서 나온다.
퇴직한 일부 환경부 고위공직자들은 기업이나 로펌에 영입돼 오염 기업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지난 30년 환경부의 조직과 예산은 엄청나게 확대됐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미세먼지로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하고, 마음 놓고 수돗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페놀 사고를 잊지 못한다는 류 사무총장은 "1970~80년대 고도성장의 미명 아래 환경문제를 등한시했던 기업의 문제가 곪아 터진 게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라며 "여전히 수돗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동안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퍼부은 맑은 물 대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류희림 (재)문화엑스포 사무총장. KBS 대구총국 기자 당시 특종 보도했던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페놀 오염사고을 잊지 못하고 있다.

류희림 (재)문화엑스포 사무총장. KBS 대구총국 기자 당시 특종 보도했던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페놀 오염사고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1994년 YTN으로 옮겼고, YTN 경영기획실장과 사이언스TV 본부장, YTN 플러스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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