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가입 망설이는 손님 계약서 쓰게 하는 대화술

중앙일보

입력 2021.03.13 11:00

[더,오래] 이경랑의 4050세일즈법(35)

고령의 아버지가 최근 암 수술을 받은 이 과장. 항암 치료를 극구 거부하는 아버지에게 다른 보완치료법을 알아보던 중, 고가의 주사 요법을 알게 되었다. 직장인으로서는 많이 부담되긴 하지만, 아버지께서도 관심을 보이기에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조사하던 중이었다. 과거 안면이 있던 유사 분야에 종사하는 마케팅 담당 임원이 생각나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 임원이 대뜸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 연세에 저 같으면 그 돈으로 친구들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며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겠어요.”

조언이라는 명목 하에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그 고민의 깊이를 무시하게 된다면, 그 조언이 아무리 정확하고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사진 pxhere]

조언이라는 명목 하에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그 고민의 깊이를 무시하게 된다면, 그 조언이 아무리 정확하고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사진 pxhere]

정보를 알고자 질문을 했는데, 마치 “그만 돌아가셔도 되는 나이”인 것처럼 말하는 게 아닌가? 황당하고 어이없는 마음에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이 과장은 두고두고 그 말이 떠오르며 화가 치민다. 암 투병 중인 아버님의 쾌유를 비는 마음을 무시당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야말로 ‘남 일’이라고 함부로 자기 생각을 내뱉는 무례함에도 기분이 언짷다. 게다가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한다는 사람의 말이 그 모양이라니, 다시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이 과장도 분명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효과가 입증된 것도 아니고,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게 해드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또한 조언을 구한 입장에서 조언자가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더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기분이 나쁘고, 그와는 더 이상 교류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확실하다.

며칠 후 작년에 모친상을 당한 옆 팀 박 과장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건네보았다. 묵묵히 이야기를 들으며 박 과장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부모님이 혹시 내 곁을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마음이 많이 복잡하시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며 아버님을 살펴주시니, 아버님도 마음이 편안하시겠어요. 정답은 없겠으나, 아버님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과 현실의 문제 사이에 균형을 잘 잡으며 잘 결정하실 것 같아요”

그렇다. 이 과장은 정답을 찾으려 사람들과 대화한 것은 아니었다. 내 상황을 이해해 주면서, 내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당황하고, 고민되는 자신의 판단에 필요한 지혜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대신 결정을 해달라는 것도, 책임을 나누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조언’을 구하는 누군가에게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자,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배려가 부족해 발생하는 실수이다. 우리는 ‘맞는 말’ 혹은 ‘정확한 말’만 원하는 게 아니다. 특히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그 결정의 크기가 무겁고 어려워 깊은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말을 부탁했지만 조언이라는 명목하에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그 고민의 깊이를 무시하게 된다면, 그 조언이 아무리 정확하고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다.

일상에서 대화나 말은 가끔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비수가 되어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맞는 말’ 말고 ‘마음에 들어가는 말’을 해야 한다. [사진 pixabay]

일상에서 대화나 말은 가끔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비수가 되어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맞는 말’ 말고 ‘마음에 들어가는 말’을 해야 한다. [사진 pixabay]

세일즈 상황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있다. 세일즈맨이 고객에게 꼭 해야 하는 말, 고객이 잘못 생각하거나 불필요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저지를 수 있는 실수다. 어차피 고객은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다만, 그 결정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데 오히려 조언이라는 모습으로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고객이 굳이 그 세일즈맨을 통해 구매를 결정할 리 없다.

스포츠 센터에 연간 회원 등록을 해볼까 하고 방문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음에도 선뜻 1년 치 회비를 결제하기가 망설여질 수 있다. 살도 빼고 건강관리도 해야 하지만,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될 것이다. 이런 고민의 순간에 상담하는 직원이 어떤 말을 하는 게 더 좋을까?

A 직원 : “매번 고민만 하고 결정을 못 하시면 제자리일 수밖에 없어요. 운동이 아니고는 다른 방법이나 계획도 없으신 것 같은데, 매번 후회하시지 마시고 그냥 하시지요.”

B 직원 : “건강에 대한 투자는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시는 거라 생각합니다. 목표가 생기셨으니, 이제 실행만 하시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센터에서 관리 받는 거 아닐까요? 혹시 어떤 점이 고민이 되는지요?”

물론, 상담원의 말을 그리 귀담아듣지 않을 수도 있다. A 직원의 말에 결심이 설 수도 있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상황이 어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 고민을 이해하려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으면, 고객은 그냥 자신의 느낌과 감정대로 생각한다. 예민한 고객이라면 A 직원의 말에 바로 반격을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고객의 불만은 이렇게 작아 보이지만, 고객 관점이나 배려가 없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A와 B의 이야기는 똑같은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세일즈 과정으로 보자면 아주 큰 차이가 있다. A는 그냥 자기 생각대로만 이야기를 했고 B는 ‘고객의 고민’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표현하고, 고객의 상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이러한 태도와 표현은 실제 현장에서는 ‘뉘앙스’라는 느낌으로 고객에게 생각보다 정확히 전달된다. 느낌이 별로여서, 왠지 좋아서, 고객은 의사결정을 마무리하게 되기도 한다.

세일즈뿐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의 대화나 말은 가끔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비수가 되어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맞는 말’ 말고 ‘마음에 들어가는 말’을 해야 한다. 어떠면 당연한 게 아닐까? 우리 각자가 모두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도 그러하리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그의 생각이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게 하고자 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세일즈가 아니라도 세일즈처럼 그 섬세한 관점과 표현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대화법을 점검해 보자.

SP&S 컨설팅 공동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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