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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통째로"....공무원 극단선택, 그뒤엔 민원 쓰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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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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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한 자치구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이 상담하던 중 언쟁을 하다 담당 공무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해당 직원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를 받았으며, 이 자치구는 사건 발생 이후 악성민원 피해 사후관리와 예방 시스템을 강화했다.

악성민원 피해는 공무원 조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다. 행정안전부의 ‘2019년 중앙부처 및 지자체 민원인 위법 행위 현황’에 따르면 민원공무원에게 위해를 가한 사례는 3만8054건으로 전년보다 10%가량 늘었다. 폭언·욕설이 3만2312건, 협박 2353건, 폭행 323건, 성희롱 216건, 기물 파손 32건 등이다.

서울 중구 서울시청. 뉴스1

서울 중구 서울시청. 뉴스1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구체적 요구사항 없이 민원실에 찾아와 욕설을 퍼붓고, 죽겠다고 소리치는 민원인이나 규정상 들어주기 어려운 민원을 계속 요구하며 고함을 지르는 민원인 등이 많다”며 “이런 민원인은 뉴스를 즐겨보기 때문에 구체적 사례를 밝히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전체가 민원 넣기도”  

서울시 관계자는 “극한 예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아파트 주민 전체가 교통개선 민원을 넣는다. 하루 수천 건이 들어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주에서 술 취해 볼펜으로 주민센터 직원을 찌른 민원인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올해 초 부산에서는 집 앞 쓰레기를 치워달라며 구청 공무원을 흉기로 위협한 남성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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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위해 사례로 분류되지 않더라도 민원은 공무원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난 3일에는 구청에서 불법 주정차 과태료 이의신청 민원 업무를 맡은 공무원이 투신한 지 두 달 만에 한강 잠실대교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와 관련해 전국공무원노조는 성명을 내 “고인이 1년 동안 6000건, 하루 평균 25건의 민원을 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민원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말과 폭언, 협박을 이겨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순직 처리를 촉구했다.

이어 “고인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최근 2030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5%가 ‘악성민원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는 충격적 답변을 했다”면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민원 건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서울시 민원 건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민원, 시민 권리지만 악용이 문제” 

서울시 시민봉사담당관에 따르면 서울시에 접수된 전체 민원 건수는 2016년 132만2734건에서 2020년 235만1220건으로 100만 건 넘게 늘었다. 이 건수는 악성민원을 따로 분류한 것은 아니며 등록·인허가 민원, 건의·질의, 현장민원 등을 모두 더한 수치다. 현장민원은 주차 단속, 도로 파손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235만여건 가운데 서울시가 처리한 민원이 28.8%, 자치구 민원이 71.2%다. 분야별로는 주정차 단속과 차량기지 이전 등 교통 분야가 64.7%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환경·안전(20%), 주택·건설(4.3%), 복지·문화·경제(4.1%) 분야 순이었다.

신도시 개발, 정보공개 청구 등으로 행정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원이 늘면 할 일이 많아지고 부담이 커진다. 민원을 처리하느라 본 업무를 못하는 직원들도 있다”며 “단순민원은 당연히 처리해야 할 일이고 불편사항이 있으면 민원을 내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지만 일부 그것을 악용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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