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삼각 지붕 교실에 정원 19개 ‘숨구멍’…고정관념 깬 신길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27호 22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주변을 돌아보면 남다르게 지은 좋은 공간이 많습니다. 뚝딱 지은 것 같지만 다르게 짓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꽤 많았을 겁니다. 어떻게 지었는지, 왜 이렇게 지었는지 해설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공간탐구생활’에서 저마다 다른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학교를 전원주택단지처럼 설계 #교실 사이에 작은 마당 만들어 #등교할 때 집에 간다는 느낌 #마곡하늬중은 교문이 따로 없어 #마을 주민과 교류 결합형 공간

지난 2일 개교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학교는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목표로 지었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지난 2일 개교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학교는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목표로 지었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이것은 전원주택단지인가, 교외쇼핑몰인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뉴타운에 정체 모를 ‘마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하면 떠올릴 법한 삼각 지붕을 가진, 2~4층 규모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모양새다. 주변의 고층 아파트 단지와 대비되어 더 튄다.

지난 2일 처음 문을 연 신길중학교다. 뉴타운이 들어선 동네에 처음 생긴 중학교이기도 하다. 학교의 다른 생김새가 행인의 이목을 붙잡고, 건물의 정체를 아는 주민도 “안이 궁금하다”며 입 모은다. 개교를 앞둔 지난달 26일 학교 인근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저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다섯 살인 손녀가 클 때까지 이 동네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남다른 학교를 설계한 이는 이현우 건축가(이 집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2018년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신길중 설계공모전에서 그의 작품이 당선됐다. 결과를 놓고서 “이 안을 뽑은 심사위원도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 공간의 고정관념을 그야말로 전복시킨 안이어서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한형우 호서대 건축과 교수는 “기존의 학교가 교실과 복도뿐인 큰 덩어리의 기능적인 공간이었다면, 신길중은 교실 단위로 쪼개고 다양한 공간을 만든 덕에 아이들이 마을에 온 듯 오밀조밀 다니며 재밌게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마을 주민 “손녀가 학교 갈 때 까지 살것”

지난 2일 개교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학교는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목표로 지었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지난 2일 개교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학교는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목표로 지었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개교를 앞두고 마무리 공사에 한창인 신길중을 건축가와 둘러봤다. 학교는 지금까지의 학교와 전혀 다른 공간 문법을 가졌다. 이현우 대표는 “획일적이고 거대한 도시 스케일의 고층 아파트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휴먼 스케일의 집 같은 학교를 계획했다”며 “주변 고층 아파트와 반대로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우선 학교를 잘게 나눴다. 신길중은 삼각 지붕의 건물 하나가 교실, 한 학급이다. 옛적 아이들에게 집을 그리라면 이렇게 그렸을 법한 모양새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 집에 간다는 느낌이 들게끔 작정하고 이렇게 디자인했다.

건축가는 이렇게 작은 단위로 나눈 삼각 지붕 교실을 구릉지를 따라 2층부터 3~4층 규모로 층층이 쌓았다. 테라스하우스를 생각하면 된다. 2~3층의 지붕은 3~4층의 마당이 된다. 4층 교실의 경우 3층 마당이 생기니 교실이 땅에 가까워진 효과를 얻는다.

신길중의 교실 모습. 층고가 3.6m에 달한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신길중의 교실 모습. 층고가 3.6m에 달한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통상 학교라면 4층의 일자형 건물이 대다수다. 교실과 복도가 쭉 나열돼 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바깥으로 나가려 하면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또다시 운동장까지 뛰어 내려가야 한다. 교실과 땅이 멀다. 이 대표는 “학교 옥상은 안전 문제로 늘 잠겨 있는데 신길중은 옥상을 마당처럼 활용할 수 있게, 땅이 더 가깝게 느껴지도록 층층이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안에도 아이들이 볕 쬐고 바람 쐴 수 있는 ‘숨구멍’이 많다. 학교 안에 중정만 19개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도서실에서 문만 열면 볕 쬐고 바람 쐴 수 있는 정원으로 나갈 수 있다.

“아파트에서는 베란다를 확장해버리는 바람에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신길중은 마당을 끼고 있는 집처럼 교실 사이사이에 작은 마당을 만들어 놨어요. 자작나무, 대나무, 낙엽수, 꽃나무 등도 심어놔서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도 사계를 느끼고 하늘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이현우 건축가)

교실의 천장도 제각각이다. 천장이 평평한 교실도 있고, 삼각 지붕 모양대로 뾰족한 곳도 있다. 이 경우 층고가 3.6m에 달한다. 빨간 벽돌, 시멘트 벽돌, 하얀색 외단열재, 탄화 코르크 보드 등 마감재도 다양하다. 획일적인 학교가 아니라 다양해서 재밌는 학교가 되길 바랐다. 김옥란 신길중학교 교장은 “아이들도 배워본 적 없고, 선생님도 가르쳐본 적 없는 학교 공간인 만큼 함께 경험하며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공립학교인 신길중을 어떻게 다르게 지을 수 있었을까. 3.3㎡(평)당 건축비는 전국 다른 학교와 동일한 600만원 선이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공간개선팀 관계자는 “교육부가 정한 학교 건축비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16년부터 설계 금액 5000만원 이상의 시설사업의 경우 디자인 중심의 설계 공모를 하도록 입찰 방식을 바꿨고, 신길중 같은 학교가 나올 수 있었다”며 “다른 디자인을 위해 예산 관리를 효율적으로 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교육정책은 숱하게 바뀌어도 학교 공간은 반세기 넘게 똑같았다. 1962년 제정된 표준설계도대로 학교를 지어왔기 때문이다. 교실 크기는 9m×7.5m로, 학생 수에 맞춰 교실 개수가 정해지고 학교가 지어졌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학생 수를 빨리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표준화가 필요했다. 92년에 이 제도가 폐지됐지만, 관행처럼 남았다. 학교 설계를 한 적 있는 소수 업체만 늘 학교 공사를 도맡았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입찰방식을 바꿔 공사판을 넓혔다. 2016년부터 민간 전문가인 교육공간 자문관도 위촉하고 있다. 권문성 교육공간자문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은 “기존의 학교가 교실과 복도 밖에 없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학생들의 생활공간으로 학교를 고민해야 한다”며 “아이들의 창의력을 더 올릴 수 있게 교육정책도 바뀌고 있는 만큼 학교 공간도 바뀌어야 하고 이제 시작 단계”라고 진단했다.

학교 공사비 상향, 발주 시스템 개선해야

강서구 마곡하늬중학교의 경우 아이들은 4층 높이의 실내 광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들어간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강서구 마곡하늬중학교의 경우 아이들은 4층 높이의 실내 광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들어간다. 장진영 기자, [사진 진효숙 작가]

지난해 개교한 강서구 마곡동 마곡하늬중학교는 바뀌는 교육에 따라 공간이 달라진 또 다른 현장이다. 이 학교는 ‘마을 결합형 학교’를 컨셉트로 지었다. 신길중과 마찬가지로 서울시교육청이 발주한 설계공모전을 거쳤다. 학교를 설계한 김정임 건축가(서로아키텍츠 대표)는 “학교 안으로 마을이 들어올 수 있게, 목수·요리사 등 마을에 있는 훌륭한 인적 자원을 학교가 활용해서 아이들이 살아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을 결합형 학교’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공간도 바뀌어야 했다. 마곡하늬중에는 교문이 따로 없다. 주민과 학생이 학교에 자연스레 들어올 수 있게 밖에서 보이는 경계를 없앴다. 대신 내부 동선을 3개의 켜로 나눴다. 광장-홈베이스-교실로 진입할 수 있게 디자인하면서다.

학교 안에 들어오면 4층 높이로 뻥 뚫린 실내 광장이 나온다. 이 광장에는 마을과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식당·체육관·시청각실·음악·미술실 등)이 맞물려 있다. 이 광장과 학생들이 주로 쓰는 교실 사이에는 ‘홈베이스’ 공간이 있다. 수업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니는 교과교실제에 맞춰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홈베이스 공간은 4층 높이의 실내광장과 더불어 바깥의 테라스와도 연결된다. 층마다 넓은 테라스가 곳곳에 있다. 이런 공용공간이 교실만큼 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시대에 학교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학생들이 모이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강의가 활발해진 지금에도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또래가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멘토인 선생님을 만나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 아닐까요. 상호교류가 더 활발해지려면 만나고 섞일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김정임 건축가)

변화를 위해서 과제도 많다. 학교 공사의 질을 올리기 위해 공사비를 지금보다 더 올려야 한다는 주문부터, 관급 자재 위주로 운영되는 공사 발주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80년대 지어진 학교 건물이 80%에 달하는 데다가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비워지는 학교의 공간 개선도 시급하다.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서울시 총괄건축가)는 “다양한 인재를 원하는 시대에 맞춰 학교도 달라져야 하고, 학교 공간의 질이 높아지면 아이들의 문화적 안목도 키워질 것”이라며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새로운 학교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