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 셀럽의 반려생활③] 공중화장실 '설기'가 찾아왔다…개그우먼 이수지의 9년 인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미디언 이수지씨가 반려견 설기·뿌꾸·두치(왼쪽부터)를 안고 있다. 김경록 기자

코미디언 이수지씨가 반려견 설기·뿌꾸·두치(왼쪽부터)를 안고 있다. 김경록 기자

2년 전 서울의 한 산책로 공용 화장실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흰색 페키니즈종인 이 강아지는 유기견 같지 않았어요. 털도 잘 다듬어져 있는 데다, 귀 청소도 말끔히 되어 있고 귀여운 옷까지 차려 입었어요. 주인의 정성스런 손길이 함께한 반려견이었죠. 하지만 강아지 바로 옆, 편지 한 장이 반전이었습니다. 삐뚤빼뚤 글씨에 서툰 맞춤법으로 “90세가 다 돼가는데 암에 걸려 얼마 못 산다”며 “살아있을 때 새 주인을 찾아주고 싶다”는 전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편지였습니다. 강아지는 5살, 이름은 ‘흰둥이’이고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설명과 함께, “죄송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유기견의 전 주인은 "암에 걸려 얼마 못산다고 해 살아있을 때 새 주인을 찾아주고 싶다"는 편지를 남겼다. [SBS TV동물농장 캡쳐]

유기견의 전 주인은 "암에 걸려 얼마 못산다고 해 살아있을 때 새 주인을 찾아주고 싶다"는 편지를 남겼다. [SBS TV동물농장 캡쳐]

흰둥이의 사연은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입양을 희망했고, 전화 면접까지 해서 새로운 반려인이 결정됐죠. 주인공은 개그우먼 이수지(36) 씨였습니다.

열연 중인 이수지 씨. KBS '개그콘서트' 캡처

열연 중인 이수지 씨. KBS '개그콘서트' 캡처

이수지 씨의 유행어, 기억나시죠? KBS 개그콘서트 '황해' 코너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단을 연기하면서 소프라노 톤으로 “고객님, 많이 놀라셨죠”라고 했었죠. 또 다른 ‘선배 선배!’라는 코너에선 “꺄르르 꺄르르”하고 애교를 부려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줬습니다.

그런 수지 씨는 우연히 이 방송을 봤고, 바로 입양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면접 당시엔 일부러 연예인이라고 알리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견(犬)연이 있었던 걸까요. 가족이 됐습니다. 새로운 반려생활을 시작한만큼 새 이름도 지어줬어요. 흰 떡 백설기에서 힌트를 얻어 ‘설기’라고 부르기로 한 겁니다. 수지씨는 “전 주인분을 결국 찾지 못했는데, ‘새 가족을 잘 만났구나’하고 위안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2019년 서울 한 공용 화장실에서 발견된 설기. [SBS TV동물농장 캡쳐]

2019년 서울 한 공용 화장실에서 발견된 설기. [SBS TV동물농장 캡쳐]

수지씨가 설기를 보고 첫눈에 반한 이유, 뭐였을까요?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습니다. 수지 씨는 학창시절부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합니다. 빚 독촉을 피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기도 했다고요. 코미디언을 꿈꾼 그는 성인이 돼서도 고정적인 수입이 없었죠. 그때, 수지 씨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었던 존재가 해리라는 이름의 반려견이었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27살이 되던 해까지 함께 했죠. 그런데, 해리와 설기는 쌍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고 해요. 수지 씨는 해리가 설기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와 줬다고 느낀 거죠.

이수지씨가 고등학생 때부터 길렀던 반려견 해리(왼쪽)와 2년 전 입양한 설기. 둘 다 페키니즈 종이다. [이수지 제공]

이수지씨가 고등학생 때부터 길렀던 반려견 해리(왼쪽)와 2년 전 입양한 설기. 둘 다 페키니즈 종이다. [이수지 제공]

해리는 2012년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수지 씨가 KBS 개그맨 공채 시험을 일주일쯤 앞둔 날이었다고 해요. 가족은 수지 씨가 충격받을까봐 알리지 않았고, 그래서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했죠. 며칠 뒤, 합격 소식을 듣고 수지씨는 “해리가 마지막까지 선물을 주고 갔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없이 미안하기만 한 해리를 똑 닮은 설기에게 좋은 가족이 돼주겠다고 결심한 거죠. 수지 씨 말을 들어보시죠.

“돈 없는 제가 해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산책뿐이었어요. 같이 산책하는 길에 막 울면서 해리한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고요. 해준 게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이제 설기에게 해리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수지씨가 반려견 5마리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이수지 제공]

이수지씨가 반려견 5마리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이수지 제공]

설기가 오면서 수지 씨는 ‘5견 대가족’을 이루게 됐습니다. 3년 전 결혼한 남편이 데려왔던 반려견 두치·뿌꾸, 결혼 전 수지 씨가 기르던 아리·사랑이 모녀까지요. 이제 아리·사랑이는 수지 씨 어머니 집을 오가며 자라고 있어요.

갑자기 여러 마리의 강아지와 살게 된 설기가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냐고요? 수지씨와 가족 모두 설기의 적응력과 친화력에 깜짝 놀랐다네요. 밥도 잘 먹고, 배변 실수도 없었다고 해요. 수지씨는 “전 주인이 쓰신 편지에 ‘뭐든 잘 먹는다’고 쓰여 있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잘 먹을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지 늘 밝고 절대 기죽지 않았다고 하네요.

 하트 모양으로 멋을 낸 설기. 미용을 마치고 찍은 한 컷. [이수지 제공]

하트 모양으로 멋을 낸 설기. 미용을 마치고 찍은 한 컷. [이수지 제공]

반려인 독자 분들께 수지 씨가 드리고 싶은 꿀팁이 있다고 합니다. 대가족 반려인이 되기 위한 서열 정리 팁입니다.

첫째, 사람이 드러나게 개입하면 안 된다! 강아지들이 시기·질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둘째, 그럼에도 심하게 물거나 상처를 내진 않았는지 틈틈이 살펴줘야 하고요.
셋째, 강아지마다 개인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해요. 처음엔 자리를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다가도, 각자의 영역을 인지하고 침범하지 않는 나름의 룰이 생긴다고 합니다.

2018년 이수지씨가 결혼하며 함께 살게 된 반려견 두치·뿌꾸 형제. 맑은 눈망울이 매력 포인트다. [이수지 제공]

2018년 이수지씨가 결혼하며 함께 살게 된 반려견 두치·뿌꾸 형제. 맑은 눈망울이 매력 포인트다. [이수지 제공]

설기를 입양하고 또 동료 코미디언들과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수지씨는 강아지 공장과 펫샵에 반대하게 됐다고 해요. 강아지들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버려지는지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고요.

“사실 저도 처음엔 펫샵에서 강아지를 접했어요. 그땐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많은 강아지가 공장 같은 곳에서 태어나서 얼마 뒤 버려지고 다시 열악한 환경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봤죠. 태어난다는 게 기쁨이 아니라 끔찍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암울한 견생인 거죠.”

이수지씨가 반려견 설기·두치·뿌꾸와 놀고있는 모습. 산책을 할 때 가장 활발한 건 설기다. 김경록 기자

이수지씨가 반려견 설기·두치·뿌꾸와 놀고있는 모습. 산책을 할 때 가장 활발한 건 설기다. 김경록 기자

반려인들에게도 꼭 당부하고 싶은 말도 있다고 해요. 한 명 한 명의 매너가 반려인 전체 이미지를 만든다는 걸 꼭 마음에 새기자고요.

“‘우리 강아지는 안 물어요’라며 입마개를 안 채우거나, 배변 봉투를 챙기지 않는 분들이 있어요. 타인을 불쾌할 뿐 아니라,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나쁘게 해요.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가족이니까, 우리가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영상 편집=우수진 기자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