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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광명 원주민들 “평생 농사지은 우리만 바보 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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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호 05면

[SUNDAY 진단] 비리·투기로 점철된 신도시 개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도로에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원회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도로에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원회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치가 떨려서 잠이 안 와요.” “조상님들이 지금 사태를 보면 극노하셨을 거야.”

“신뢰 저버린 LH에 감정평가 못 맡겨” #과림지구 신도시 개발 무기 연기 촉구

한국주택토지공사(LH)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주민들은 화가 나 있었다. 과림동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모(65)씨는 “부모님께 물려받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던 땅인데, 화가 나서 자다가도 수십 번을 깬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의 땅과 건물은 신도시 개발 발표로 수용 대상이 됐다. 그러나, 자기 뜻과 달리 고향을 떠나야 한다. 12일 오전 기자가 그를 만난 과림동의 한 밭에는 묘목이 좁은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땅이었다. 김씨는 “나무를 이렇게 심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LH에서 했다는 게 더 황당하고, 어떻게 정부를 믿겠느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11일 정부합동조사단은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1만4000여명을 조사해 LH 직원 20명의 투기 의심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광명·시흥 지구의 땅을 산 사람이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과림동의 경우 1개 필지에 직원 4명을 포함한 22명이 공동 매입한 사례가 드러났다.

9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왕재(71)씨는 “원주민들만 바보가 됐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 농민도 이걸 알았으면 농지를 구입해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전영복(66) 광명·시흥지구과림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가장 공정해야 할 LH 직원들이 주민들 땅을 수용해서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데 분노한다”며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사람들에게 감정평가를 어떻게 맡기나”라고 말했다.

과림동은 1970년대에 그린벨트로 지정돼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고, 2010년에는 보금자리 주택사업지구로 지정됐지만, 2015년 부동산 경기 하락 등의 이유로 사업 계획이 취소되고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됐다.

한 주민은 “우여곡절이 많은 곳”이라며 “이제는 투기장까지 됐다”고 표현했다. LH 직원들의 투기는 그래서 ‘배신행위’였다. 주민들은 “역대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었는데 우리를 세 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익수(66) 대책위 부위원장은 “과림지구만이라도 3기 신도시 계획에서 빼든지, 아니면 차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도시 개발지에 땅을 가졌는데도 왜 이토록 화가 났을까. 과림동 주민 중 일부는 이 일대의 개발 방향을 놓고 취락정비사업(환지방식)을 요청해왔다. 환지 개발은 소규모 구역을 지정해 도로 등을 정비하고 기존 땅 크기대로 다시 토지를 재분배하는 방식이다. 고향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은 지역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지 개발을 원한다고 했다. 한 주민은 “도시가 개발돼 이곳을 떠나게 되면 (너무 비싸져서) 다시 돌아오기도 힘들고,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전 위원장은 “신도시로 지정되면 원주민들도 번다고 하지만, 수용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양도세·지방세 등을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안 부위원장은 “평생 농사지으며 내 동네 살리려는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흥=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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