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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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호 31면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상거래의 미래(The future of commerce)’.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월가 뉴욕증권거래소(NYSE) 건물 전면에 걸린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쓰인 문구다. 쿠팡의 상장을 축하하는 태극기와 쿠팡 깃발과 더불어 눈길을 끌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이날 CNBC 방송 등과 인터뷰에서 “고객과 주주를 위해 진정한 가치를 만든다는 장기적인 전략에서 한눈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라며 “이번 기업공개(IPO)가 그 여정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 뉴욕증시 조달 자금 국내 투자
노동환경 혁신도 이룰지 지켜봐야

김 의장은 이날 오전 쿠팡 관계자 등과 ‘빅보드(Big Board)’의 개장을 알리는 오프닝 벨을 울렸다. 빅보드는 뉴욕증권거래소의 별칭이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가에 이름을 올린 쿠팡은 종목코드 ‘CPNG’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공모가는 당초 희망가인 32~34달러보다 높은 35달러로 책정됐다. 주당 63.5달러(종가 49.25달러)로 출발한 쿠팡의 기업 가치는 공모가를 기준으로 630억 달러(약 71조4000억원)에 이른다. 뉴욕증시에 입성한 외국 기업 기준으로는 2014년 알리바바 이후 최대이며, 아시아 기업 중 네 번째 규모다. 한국 기업 가운데 뉴욕증권거래소 직상장 1호 기록도 세웠다.

이런 화려한 숫자와 더불어 쿠팡의 뉴욕증시 입성은 한국 스타트업이 세계 무대에서 재평가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외에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대형 제조업 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앞으론 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첫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화제를 모았던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으로 한국에서도 산업의 패러다임이 달라졌고,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벨을 울렸다.

쿠팡이 이번 기업공개로 조달한 45억5000만 달러(약 5조1700억원)의 자금을 국내에 투자하겠다는 점도 눈에 띈다. 김범석 의장은 이날 “한국의 지역 경제에 계속 투자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벽배송과 같은 혁신에도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지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사이에서 한국의 사정이 좀 낫다지만 한국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긴 마찬가지다. 자영업자 형편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나잇대를 가리지 않고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이다. 한국 실업률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이던 지난해 4월 4.2%에서 지난 1월 5.7%로 더 나빠졌다(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14.7%에서 6.3%로 오히려 줄었다).

미국마저 제 코가 석 자라 자국에 공장과 일자리를 유치하려고 세계 각국의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도 부진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상반기 GDP 대비 FDI 비율이 0.32%로 OECD 37개국 중 25위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국적 논란은 볼썽사납다. 뉴욕증시에 상장한 회사가 쿠팡의 모기업 ‘쿠팡INC’이고, 이곳의 대주주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비전펀드다. 그러나 쿠팡은 국내에서 사업을 하며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자본이나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건 사실상 무의미하다. 대신 쿠팡이 국내에서 세금을 잘 내는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지 등을 지켜보는 감시견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특히 쿠팡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배송 직원들의 노동환경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다. 물류·배송 혁신을 이룬 쿠팡이 노동환경 혁신도 이룰지 지켜볼 일이다.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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