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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가족이 내 불편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94)

최근 SNS에서 훈훈함을 전하며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 영상이 있었습니다. 영상은 피곤해하며 힘없어 보이는 걸음으로 복도를 걷는 한 남성이 등장하며 시작됩니다. 교실 앞에 멈춰선 남성은 심호흡을 하고 안경을 고쳐 쓰더니 옷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입 운동을 하더니 얼굴에 씨익 미소를 짓고 교실 문을 엽니다.

영상의 주인공은 중국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인 ‘첸 롱창’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준다고 생각하는 그는 즐거운 수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가장 먼저 교실에 들어서기 전 힘든 기색을 없애고 미소 가득한 표정을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표정과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있었죠. 영상 속 선생님의 기운을 받은 아이들의 표정도 반짝반짝합니다. 교실 앞에서 스마일 연습하는 선생님의 영상은 많은 네티즌에게 훈훈한 감동을 전하며 뉴스에도 등장했습니다.

리더의 표정은 직장의 일기예보와 같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일기예보를 확인하죠. 오늘 날씨가 어떠할지 확인하고 어떻게 옷을 입을 것인지, 우산을 챙겨야 할지 등을 결정합니다. 출근길 사무실에 들어서는 리더의 표정이 그날 구성원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무실의 분위기를 화창한 봄날로 만들 수도 있고 우중충한 장마철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리더의 표정에 따라 구성원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는 것이죠.

영상 속 선생님은 잠시 멈추어 심호흡을 하고 미소를 만드는 것으로 반 학생들의 기분을 햇살 반짝으로 만들어 준 셈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 집을 나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가족과 다시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요?

안전지대라 여겨지는 가정에서 나의 표정과 표현을 상대적으로 덜 신경 쓰며 지냅니다.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하는 생각과 집에서까지 신경 쓰며 지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합니다. 스트레스라 여겨지는 상황이 닥쳤을 때 감정을 정리하기보다는 더 쉽게 화로 표출하기도 합니다. 표정과 표현이 날 것의 거친 상태로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전해집니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가족이 내 불편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잠시 멈춰 심호흡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살짝 스마일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사진 pixabay]

잠시 멈춰 심호흡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살짝 스마일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사진 pixabay]

잠시 우리의 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인간의 뇌는 3층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죠. 가장 안쪽에 위치한 파충류의 뇌라고 불리는 뇌간,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 가장 바깥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영장류의 뇌라 불리는 대뇌피질의 3층 구조입니다. 파충류의 뇌인 뇌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합니다. 호흡, 삼키기, 심장박동, 체온 등 생존에 꼭 필요한 기능 등을 맡고 있죠.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는 시간, 공간, 감정, 의미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기억과 경험을 처리합니다. 변연계 가운데 편도체(amygdala)는 공포나 불안, 두려움의 감정을 담당하고 있어 위험신호가 감지되면 몸과 뇌에 신호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영장류의 뇌로 불리는 대뇌피질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이성과 사고를 관장합니다.

뇌 이야기를 꺼낸 것은 ‘변연계 과다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입니다. 이는 과장된 반응상태를 유발해 사고의 명확성을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이라고 감지했을 때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벗어나 과도하게 반응해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것이죠. 쉽게 흥분하고 화로 표출되는 겁니다.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지하며 나의 상태를 잘 표현하기 위해 ‘호흡 알아차림’을 권합니다. 잠시 멈춤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나의 감정을 인지하고 점검하는 거죠. 전문가들은 2~4주간 매일 10분, 분당 여섯번의 숨을 쉬는 의식적인 호흡기술을 연마할 것을 권합니다.

결혼이란 어쩜 이렇게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며 시작했다가 어쩜 이렇게나 나랑 안 맞을 수가 있을까 확인하는 과정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맞지 않는다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서로가 노력합니다. 그러다 또 어쩜 이렇게 안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순간 교실 문 앞에 잠시 멈춰선 중국의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잠시 멈추어 심호흡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살짝 스마일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아닌 나의 건강을 위해서 어쩌면 더 필요한 과정입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의 ‘오늘 하루 매우 흐림’을 내가 만들고 있진 않을까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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