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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빗살무늬토기가 보여주는 도시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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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교과서의 오자 발견. 국사교과서를 펼쳐든 중학생의 사연이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줄문’이거나 ‘줄무늬’로 표기되어야 했을 단어인 ‘즐문’이었다. ‘빗살무늬’로 풀어 표기되는 그것. 물론 그 위대한 발견은 곧 자존심 붕괴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중학생에게 곧 국사는 기이한 단어들만 울창한 단순저급 암기과목으로 임의분류되었다.

해석하기 어려운 모습의 토기 #강물에 꽂아놓고 사용했을 듯 #최고의 디자인도 결국 대체 대상 #도시 미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

그러나 그가 훗날 고등창조 작업이라며 직업으로 선택한 건축인들 국사의 테두리 밖에 있는 건 아니었다. 이 땅에 지어진 선사시대의 집 모습은 집이 아니고 토기로 남아있다. 집모양 토기를 알현하려면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에 가야 한다. 지금 전시장 한복판을 도도히 점거하고 있는 것이 다시 그것이다. 빗살무늬토기.

기이하게 생긴 저것은 과연 무엇이냐. 발레리나도 아닌 그릇 주제에 바닥은 뾰족하여 혼자 서 있을 수도 없다. 길죽 날씬한 비례는 보기 우아해도 뭔가를 담고 꺼내기 불편했겠다. 바깥면에는 바로 그 ‘줄무늬’가 줄 맞춰 새겨져 있다. 게다가 심술 난 중학생이 연필로 분풀이한 듯 아랫단에 구멍도 숭숭 뚫려있다. 곡식을 담으면 술술 새기 십상이니 그릇으로는 치명적 결함이다. 물건이지만 나이가 수천 살이므로 정중히 여쭈자면, 댁은 누구십니까.

선사시대 유물의 정체규명 방법은 문자탐구가 아니고 논리적 추측이다. 그래서 훗날 건축학과 교수가 된 수모의 주인공은 고등하고 창조적인 건축 논리를 이 토기에 들이대기로 했다. 출토지가 모조리 강가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한다. 강은 백화점이나 마트 식품코너가 아니다. 물고기가 아무 때나 잡혀주지 않는다. 운수 좋은 날은 그날 다 먹기 어려운 양의 물고기가 잡힐 수도 있다. 잉여 발생의 순간이다. 물고기를 보관하는 최선의 방법은 산 채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건 물고기를 강물에 담가 두는 걸 말한다.

이 토기들은 모두 낮은 강물 속에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강바닥은 대개 퇴적연질지반이니 꽂아서 세우려면 바닥이 뾰족해야 한다. 그러면 수심 따라 높이 조절도 가능하다. 수압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날씬해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고기를 살려놓으려면 강물이 유통되어야 하는데 아래쪽에 통수구멍이 필요하다. 토기는 수면 위로 상단이 살짝 노출될만한 높이가 되어야 한다. 물에 몸통이 거의 잠긴 토기들을 구분하려면 수면 위의 노출부에 서로 다른 문양들을 새겨넣어야 한다. 토기가 어떤 방향으로 꽂힐지 모르므로 테두리 전체에 새겨야 한다. 그래서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는 수면 높이 따라 모두 수평방향이다. 그 무늬는 사적 소유의 증거일 것이다.

추측이 맞는다면 빗살무늬토기는 국사 외에 미술 교과서에도 실릴 기능주의 미학의 모범 디자인 사례다. 그런데 빗살무늬토기는 멸종했고 밋밋한 토기가 등장했다. 돌의 소진으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닌 것처럼 물고기 멸종으로 빗살무늬토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강으로부터 먼 곳에도 살기 시작했다. 농경이 시작되고 토기가 곡물을 담았다. 토기 모양과 출토지가 달라졌다. 놓일 바닥이 달라지자 토기 밑면이 평평해졌다. 물을 담으면서 마구리 모양도 바뀌었고 옆면의 손잡이는 토기의 운송을 설명한다. 거주지가 수원지로부터 멀어진다는 이야기다. 장기보관을 위해 토기 뚜껑도 덮였다. 가야토기 하단의 구멍은 아랫면에 지피던 숯불의 흔적을 유추하게 한다. 합리적 저장과 유연한 유통 요구가 토기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래서 기술적 진보가 필요했는데 그건 토기, 도기, 자기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잉여를 담는 데서 발생한 토기가 건축으로 번역되면 창고가 된다. 창고에 빗장이 채워지고 거기 토기가 보관되면서 소유자 구분의 무늬가 불필요해졌다. 창고의 잉여를 교환하면서 인간의 거처는 서식지에서 도시로 발전했다. 죽은 자들의 알 수 없는 장도를 위해 챙겨줘야 할 것은 충분한 곡식이었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만나는 조그만 집모양 토기들은 다 곡식창고 모양 부장품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바꾸는 도시 미래에 관한 질문이 건축계의 유행병인 것 같기도 하다. 바이러스가 도시의 변화방향을 특별히 달리 규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강요된 실험은 더 높은 도시 변화 속도를 요구할 것이다. 미래가 재촉될 뿐이라는 것이다. 잡은 물고기 때문에 강가에 묶여 있던 인간은 물고기를 수조차에 넣어 도시로 운반하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인간은 물고기를 입에 넣으러 횟집에 가는 단계다. 지금은 물고기가 인간의 입으로 좀더 가까이 오기를 요구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더 자유로운 저장과 유통의 가능성은 여전히 미래 기술의 가치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예컨대 20세기의 도시를 바꾼 것이 자동차인데 그 자동차의 미래연료가 수소일지 전기일지 빗살무늬토기에게 정중히 묻는다면 조용히 답을 내줄 것 같다. 미래는 과거와 맞닿아 있으니 그 접점을 역사라 부르더라. 그것은 저급 암기대상이 아니고 창조의 출발점이었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